2010년 2월 17일 수요일

영계<靈界>의 수기<手記> 四次元의 世界의 '영계의 수기' 스웨덴보르그 Swedenborg 著




영계<靈界>의 수기<手記>

四次元의 世界의 '영계의 수기'
스웨덴보르그 Swedenborg 著



목차

스웨덴보르그의 인물과 업적

1. 영계로 가는 사자(死者)의 길
영계와 이승은 동전의 안팎이다
죽음의 기술
죽은 사람도 생각은 한다
죽은 뒤에 시작되는 영과의 대화

정령계(精靈界)로 가는 길
정령의 세계 정령계
정령계에서 영계로

2. 영계의 모든 것
영계란 어떤 세계인가
영의 상념의 교류
무한히 연장되는 영의 상념
영계 생활의 여러 가지
영의 불가사의한 관념
영계의 언어와 문자
영계에서 만난 역사상의 인물
지하의 영계는 지옥
어떤 영계로 가는가

3. 영계와 인간계와의 관계
다시 태어난 병사
되살아난 처녀
증발의 수수께끼와 그 진상
죽음의 통지(通知)는 정령계에서 전달된다
당신도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
당신도 영과 대화할 수 있다
이승도 영계의 일부이다
유령은 왜 사건 현장에 나타나는가
나의 교령술(交靈術)
고텐버어그에서 본 스톡홀름의 화재


영계와 이승은 한 세계 속의 두 부분
육체 안의 인간과 영은 어느 쪽이 본질인가
어째서 인간은 영을 알 수 없는가
나의 죽음을 예고한다




[靈界의 手記] 스웨덴 보르그에 대해


■ 본서는 세계 최대의 기서 중 하나로서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현재도 관심을 끌고 있는 '스웨덴보르그의 靈書'를
우리나라 독자가 알기 쉽도록 편역한 것이다.
여기서는 이 원저를 저술한 수수께끼의 인물, 스웨덴보르그의 인물과 본서가 이루어진 유래, 그리고 기타 알려드려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 스웨덴보르그의 인물과 업적

스웨덴보르그는 유럽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가장 신비스러운 수수께끼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백과사전에는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 신비사상가. 등으로 간단히 분류하고 소개되고 있으나 그리 간단히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며, 실제에 있어서도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위대한 인물이다.

스웨덴보르그에 관심을 쏟고 있는 오늘날의 유럽과 미국 사람들도 이런 면에서는 동감인 듯하며 결국은 먼저도 말한 바와 같이
위대한 인물이며 불가사의한 사람으로 다루는 모양이다.

스웨덴보르그는 1688년 스톡홀름에 있는 경건한 그리스도 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닌 듯하여, 열 살도 채 되지 않아서 교회의 목사들과 신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기를 좋아했고
또 그 언행에는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요소가 많았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 말을 시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우프살라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오래도록 스웨덴 광산국 기사로 근무했고, 1719년에는 귀족(貴族)에 서임되어 이후 수십 년에
걸쳐 귀족원(貴族院) 의원으로 정계에서도 활약한 것으로 보아 실제가 실무가로서 활동하는 한편 과학자, 수학자. 발명가로로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학문상의 업적이 얼마나 폭넓은 것이고 위대한 것이며 또한 그 시대를 훨씬 앞지르는 수준이었던가를 보려면 다음 한 가지
일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가 죽은 것은 1772년, 체류 중이던 영국 런던에서였지만, 그의 사후 140년이 지난 1908년에 모국인 스웨덴 학술원(學術院)은
국왕에게 청하여 군함을 보내서 이 위인의 유해(런던 교외에 매장되었다)를 모시러 간다는 유래 없는 장례를 거행했다.

그의 학문상의 업적이 그 시대를 앞선 것이었고 20세기에서도 가치가 높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던 까닭이다.
또한 1910년, 런던에서 개최된 국제 스웨덴보르그 회의에서는 세계 각국의 학자, 종교가 등 400여 명이 출석한 가운데
각기 전문 분야별 20부분으로 잘라서 그의 업적을 20세기의 학술 수준에 입각해서 토의 검토한바 있다.

이것만 보더라도 그가 학술상의 업적이 얼마나 큰 것이었던가를 알 수 있지만 그의 저술 중에는 현대 수준으로 분석해도 가치가
인정되는 것이 적지 않다. 일일이 그 예를 들 수는 없으나 발명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보더라도 제염기(製鹽機), 피아노라,
잠수정에서 비행기까지 발명하는 등 거인다운 힘을 과시했다.

그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는 르네상스기의 거인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능가하고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가 업적에 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만큼 알려지지 않은 것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림을 통해 사람의 눈을 쉽게 끌었음에
비하여 그는 너무나 수준이 높은 서적을 그것도 방대한 량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의 동 년대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은 크며, 온 유럽에 걸친 것이었으나, 특히 유명한 것은 독일의 철학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괴테의 유명한 “파우스트”는 만약 스웨덴보르그가 없었던들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파우스트'주인공인 파우스트는 스웨덴보르그의 생애 바로 그것이라 해도 좋으리만큼 비슷하다.]

□ 신비가 영매로서의 스웨덴보르그

스웨덴보르그가 거장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불가사의한 사람으로서 알려진 것은 그의 후반기의 생활과 그 시절에 남긴
방대한 '靈界 著述'의 내용이 수수께끼에 쌓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84세까지 장수를 누렸으나 그 후 반생의 30년이란 모든 학문을 내던지고 그가 말하는 하늘의 계시에 따라 영적 생애적(生涯的)
생활을 보냈으며, 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유럽에 큰 화제를 던졌던 것이다.

스웨덴보르그의 교령 능력이라든가 천리안(千里眼)의 능력이라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철학자 칸트가 직접 저서
'Traume eines Geister Sehers'를 펴서 이를 보증할 정도였으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칸트는 스웨덴보르그의 비상한 능력에 관하여 '인류 사상에 이러한 인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장래에 있어서도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 않으며 그 수수께끼 같은 능력에 대해서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라고 경탄한 바 있다.

□ 스웨덴보르그의 '영계의 저술'

스웨덴보르그의 '영계의 저술'은 몇 천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것인데 그 대부분은 런던의 대영 박물관에 지금도 소중히
보존되고 있다.

그의 '영계의 저술'이 다른 작품과는 비교가 안 되는 특이한 점은 그가 '이 모두를 스스로 영계에 들어가서 보고 들었으며,
혹은 영들과 사귀면서 깨달은 지식을 토대로 했다'고 공언하고 있는 점이다.

이처럼 보통사람으로서는 좀처럼 믿을 수 없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서로 취급되고 있지만, 단순히 믿기 어려운
기서라고만 해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관심을 끌리는 없을 것이다.
그 비밀은 역시 보통 사람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점을 근거로 삼은 저술이라는 데도 있겠으나, 그 내용을 읽은 사람으로 하여금 단순히
부정만 할 수 없는 진실의 측면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계의 저술'에 대해서는 과거에도 영국 시인 '엘리지베드 브라우닝(1806-1861)'이나 일본의 '스스키 다이쎄스(禪學子 1870-
1966)'를 비롯하여 호의적인 비평이 많았고, 브라우닝은 '영계의 일을 분명히 밝힌 저술은 스웨덴보르그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없다'라고 말하였다.

저자인 '콜린 윌슨(1931- )'도 스웨덴보르그의 저서에서 받은 인상은 ‘틀림없는 듯한 신빙성’이라고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 그 인물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외국에서는 그의 사후 2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영국 스웨덴보르그 협회(Sweenborg House, 20 Bloomsbury Way London
W. C. 1) 등이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의 저술과 인물에 대한 평가를 알고도 남음이 있다고 할 것이다.

초인(超人) 스웨덴보르그는 그 경력부터가 복잡하다.
처음에는 과학자. 광산기사로 활약하고 뒤에는 종신의 상원의원이 되었으나, 마침내 심령학 연구에 몰두하였다. 세계적으로는 철학자.
신비주의자로서 알려졌다.

2세기에 걸친 긴 생애를 통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은 1688-1772년에 걸친 시기였을 것이다.
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로서 유럽 대륙 특히 영국에서는 그의 이름을 떨쳤고, 라틴어로 씌어진 저서는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서에 대한 해석은 이론이 분분한 바 있다. 과학방면의 저서는 그대로 비교적 용이한 편이라고 하지만,
그의 종교 철학을 이해하려고 하면 우선 30권 이상에 달하는 그의 신학관계 저서를 통독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저작들은 뉴욕의 스웨덴보르그 재단이나 기타의 공공 도서관에서 영문 번역서로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가장 이해하기 쉬운 전기의 하나인 지그스뎃트 저작의 '스웨덴보르그의 서사시 : 이마뉴엘 스웨덴보르그의 생애와
업적'이 그의 영능적 경험을 잘 설명하고 있다.

스웨덴보르그의 생애를 논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남과 다른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영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는 영능력자라는 말에서 연상되듯이 신경 과민한 성격은 결코 없었다. 그의 건강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같은 시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항상 자신의 안팎에 충실했으므로 모든 면에서 매우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독신이었으나 장년이 되기 전까지는 결혼하여 가정을 가져야겠다는 희망이 없지 않아 가끔 결혼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가 분명히 독신으로 지내고자 결심한 것은 '하늘의 소리'를 들은 후부터였다.

스웨덴보르그는 영능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다른 영능력자들과는 달라서 모든 면에 천분을 발휘했다.
그는 루터 교회파의 목사 '예스텔 스웨덴보르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종교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보이지 않았으며, 그 대신에 과학자
가 되고자 결심했다. 그는 매우 우수한 학생이어서 21세에 우프살라 대학의 지질학과 학위를 땄다.

얼마 동안을 스웨덴 국외에서 연구를 계속했으나 귀국하자 스웨덴 광산 대학의 특별 보좌역으로 임명되었고 얼마 안 가서 일류 야금
학자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1719년에는 발명을 통해 국가에 공헌했다는 공적으로 작위를 받아 이름을 바꾸어 스웨덴보르그 남작이 되었다.
다음에는 스웨덴 상원의원이 되었으며 경제 방면의 권위자로서 여기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차지했었다.
다시 파리로 가서 2년 동안 해부학을 수업함으로써 그의 학문적 분야를 더욱 넓혀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천거되었다.

이처럼 다망한 사회적, 문화적 활동을 계속하는 가운데, 그 다방면에 걸친 전문 분야에서 각기 대작인 저서를 내 놓았다.
그의 많은 저서의 내용을 분석한 20세기 학자들은, 스웨덴보르그는 과학자로서 시대를 훨씬 앞지른 곳을 걸어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비엔나의 어느 대학교수는 1910년에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스웨덴보르그의 시대에 공통된 결점, 오류, 불완전한 증명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개념이나 미래를 멀리 예견한 그의 사고방식은 스웨덴보르그의 정신적 특성을 형성한 것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소방식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는 것이 현대 과학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예컨대 인체의 임파선이나 뇌의 기능에 관한 그의 추론은 현대 과학에 의해서 비로소 알려진 학설과 매우 공통된 점이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해부학 관계의 저작을 가명으로 발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비판에 관한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만일에 그가 자기의 연구 및 고찰한 바를 모조리 발표했더라면, 당장에 논란의 소용돌이를 불러일으켰을 것이 틀림없다.
1740년대에 이미 그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논문을 발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과학의 영역을 훨씬 벗어난 것이었음은
확실했다.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연구의 공표를 망설였다. 그 가운데에는 뇌, 감각기관, 생식기관에 관한 연구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심리학에 관한 이론은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출판되지 않았다.

아마 스웨덴보르그는 그러한 혁명적인 학설을 동료 학자에게 귀뜸조차 안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종래의 학설을 초월한
인식방법을 동료들이 따라오지 못할 뿐 아니라 공감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영혼을 연구한다는 유일한 목적으로 이 해부를 실시했다. 이 작업이 해부학 또는 의학의 분야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이 나는 만족스럽겠다.

하지만 만약에 영혼의 연구에 어떠한 광명을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나로서는 더욱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약 10년 동안에 걸쳐 스웨덴보르그는 자기의 연구 자료로서 자신이 꾼 꿈을 기록했다.
처음으로 해부를 하려고 집도했을 때 그는 정신을 잃고 깊은 혼수상태로 빠졌는데 그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믿었다.
1744년에는 꿈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대는 약속한 바를 수행하라'는 계시를 받았다.
1745년 4월에는 사람의 환영을 보고 자기의 사명을 역력히 깨달았다.

'그 사람의 그림자는 말하였다. 자기는 우주의 지배자요 만물의 창조주, 구세주인 하느님이라고. 그리고 성서의 영적인 취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나를 선택했다. 하느나님은 이 문제에 대해서 글을 나에게 쓰라고 하셨다.
이윽고 그날 밤 영의 세계가 뚜렷하게 내 앞에 전개되었다. 나는 그곳에서 생명에 관한 모든 상황에 대해서 인식할 수가 있었다.
그 날부터 나는 현세적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적인 것에 모든 노력을 바치기로 했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스웨덴보르그는 57세였다. 이후 84세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저작 활동의 전부를 종교 관계의
주제에다 쏟았다. 그의 성서의 해설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한 자동필기로 쓰여 진 것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육체가 멸망한 뒤에도 영혼은 생존한다는 현상을 구명한 결과 저승을 가끔 방문하게 되었다.
정령계란 사자(死者)의 영혼이 영계 혹은 지옥계로 가기 위해 대기하는 곳이라고 했다.

그가 오랜 세월을 두고 쌓아올린 종교적 신념의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모든 사람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리라고 그가 바라던
'뉴 예루살렘'의 관념이라는 것은, 프로테스탄트, 카토릭을 불문코 종래의 그리스도교의 교의와는 극단적으로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와 같은 시대 사람들은 그를 이교도라고 보기보다는 미친 사람이 아닌가 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실제로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모두가 그의 뛰어난 정신과 인품에 다른 의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

삼위일체 설을 부정하는 스웨덴보르그의 대담한 종교 이론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또한 영계에서 독일의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를 만나 신앙에 의해서만 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루터의 교리에는
승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다.

스웨덴보르그의 설에 의하면, 인간이 구제 받기 위해서는 선행을 필요로 하며, 악을 회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사자(死者)의 영이 지옥으로 가는 것은 신(神)의 재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죄로 더럽혀진 영혼 스스로가 자신의 뜻으로 그곳에 간다는
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구원이 되었다.

영계에서도 결혼할 수 있고 이승에서 배우자의 선택을 잘못한 자는 저승에 가서 새로이 배우자를 고를 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한 사람들도 많다.

생애 최고의 저작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탈고했을 때 스웨덴보르그는 82세의 고령이었으나, 암스테르담의
인쇄업자에게 넘겨주기 위해서 네델란드까지 여행할만한 여력이 있었다.
더구나 그의 가장 충실한 신봉자들을 만나기 위하여 영국 런던에 여정을 연장하는 정력을 보였다.
그는 조국인 스웨덴을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런던에서 죽는다는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1771년 크리스마스가 가까왔을 때 스웨덴보르그는 중풍으로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었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그는 착한 영혼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오랜 세월동안 교회에는 간 적이 없었지만 스웨덴인 목사가 방문하는 것을 거절은 하지 않았다.
목사가 그의 저작물 가운데 그 진실성을 부정할 것은 없느냐고 묻자 스웨덴보르그는 벌떡 몸을 일으켜 앉더니 격하고 열렬한 말투로
말했다.

'당신의 눈앞에 내가 있는 것이 진실인 것처럼, 내가 쓴 것은 모든 것이 진실이오. 허락한다면 더 할말이 있소.
당신이 저승으로 들어올 때가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니. 그 때는 좀더 천천히 이야기합시다.'

1772년 3월 29일 스웨덴보르그는 죽었다. 유해는 런던의 스웨덴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1908년에 스웨덴 정부는 순양함을 영국으로 파견하여 그 유해를 모국으로 맞아들여 우프살라 대성당에 안장했다.
1910년 구스타프 5세의 후원으로 스웨덴보르그의 국제회의가 영국에서 개최되어 각국 학계인 다수가 참석한 가운데 이 스웨덴의
위대한 철학자의 영예를 찬양했다.

그의 교리를 신봉하는 뉴 예루살렘 교파에 속하는 교도는 스웨덴, 기타의 나라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자만 꼽아도 3,000명을 웃돈다고
한다. 저 미국의 삼중고의 여성 헬렌 켈러는 이 교리의 열렬한 대변자의 한 사람으로 그의 저서 '나의 신앙'에서 스웨덴보르그 주의에서
비상한 영감과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눈, 귀, 입의 삼중고의 세계에서 스웨덴의 위대한 예언자의 가르침을 궁리한 그녀는
이렇게 경고했다.

'우리들의 문명은 스웨덴보르그와 같은 철학자의 교리,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선견지명에 무관심하다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천사들이 그의 교사요 인도자였다. 그는 그의 영혼을 천상에 머물게 했다. 그는 끝없는 하느님의 섭리를, 영원한 생명의 가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하늘 나라를 원을 그리는 별들의 길을 걷도록 허락 받았다.

' 이 여성의 위대한 처세훈에 어떠한 시사를 던져 준 인간 스웨덴보르그를 우리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계속-
1. 영계로 가는 사자(死者)의 길.

영계와 이승은 동전의 안팎이다.

나는 인류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가 없는 이 수기(手記)를 써 내려가기 전에,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 두어 가지를 전제 삼아 소개하기로 한다.

기가르트라고 하는 이름의 이 사나이는 17xx년 어느 날 암스테르담에 있는 시장 안에서 부산하게 일을 열중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의 중매인이 없으므로 장터의 소란과 법석쯤은 매일의 일과여서 예사로 여기는 터였다. 그는 이 틈바구니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손을 들어 시장 특유의 손짓을 하며 다른 중매인과 거래하고 있었다.

삥 둘러 서있는 중매인들 가운데 바로 마주 보이는 건너편 중매인이 꼽는 손짓에 따라서 그도 손가락을 꼽으려는 순간이었다.
상대하던 중매인의 손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체의 광경이 그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졌을 뿐 아니라, 술렁거리던 시장의 소음도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그의 놀라움은 어떠했으랴? 그러나 그의 놀라움도 그 다음에 펼쳐진 광경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시장이 통째로 사라져 버린 그의 시야에는 다음과 같은 광경이 나타났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요. 온통 시뻘건 광채였지요.
그것이 눈앞에 가득히 피어올랐어요. 그런데 다음 순간에 그 빨간 놈이.... .”
말문을 닫는 그는 슬픔을 못 이겨서 흐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기가르트는 그 시뻘건 빛깔 너머로 바다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차츰 모습을 드러낸 그 바다에는 이제 막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려는 난파선이 보였으며, 그 배에는 몇 만 명을 헤아리는 많은 사람들이 매달려 최후의 안간힘을 다하여 바둥거리고 있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 바로 그것이지요. 몇 만 명을 헤아리는 그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보이질 않아 도무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죠. 다만 우리 집 아들놈은 겨우 일곱 살밖에 안되었습니다만, 이 녀석의 얼굴만은 또렷이 보였고 그 얼굴은
슬픔에 젖어 나에게 구조를 애원하고 있었지요.”

기가르트의 장남이 바다에서 익사한 것은 그가 시장 안에서 이 환영(幻影) - 필자에게는 결코 이것이 환영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지
만, 아직 여기서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을 좇아 환영이라고 말하여 둔다. - 을 본 바로 그 시간이었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약 10년 전에 영국의 농촌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직도 젊디젊은 청년이 죽었다. 부모는 물론 마을 사람들도 한창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그를 가엾게 여겼다.
이틀 후 그의 시체는 마을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장사를 치른 뒤 사흘이 지나자 젊은이를 잃은 어머니는 남편과 마을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놀라운 일을 알렸다. 어머니는 미친 듯이 이렇게 외쳤다.

“내 아들이 살아있어! 이제 막 되살아나고 있어. 무덤을 파헤쳐 구해 내야 해요!” 남편과 마을 사람들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어머니가 실성해서 발광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무덤을 파기로 작정했다. 막상 무덤을
파헤치자 사람들은 놀라움에 몸을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눈에는 파헤쳐진 무덤 속에서 어머니의 말대로 이제 막 되살아나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 왔기 때문이다.

아직 그 젊은이의 모습에는 살아있는 인간의 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죽음의 심연, 그 어둠 속에서 차츰 소생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젊은이의 얼굴에 감도는 생기만으로도 분명히 알 수가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일 것이다.
머니는 어떻게 해서 아들의 소생을 알았던 것일까?

여기서 소개한 두 가지 예는 흔히 있는 이야기이므로 세상 사람들도 이러한 이야기의 하나 둘쯤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이 지니고 있는 참다운 뜻을 이해하는 사람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한, 인류 역사상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내가 앞에서 든 예는 모두가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와 이승이라는 두 세계가 접촉되는 경계 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나는 이러한 사건이 지니고 있는 참된 뜻을 설명함과 더불어 내가 어떻게 해서 영(靈)의 세계, 사후의 세계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는가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의문을 풀어주고자 한다.

기가르트는 어떻게 해서 난파선에 매달려 구조를 애원하는 아들의 모습을 느닷없이 보게 되었는가?
영국의 어느 마을에 사는 어머니는 어찌하여 죽음의 수렁에서 아들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았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알아둘 일이 있다.
아직 영계(靈界), 즉 사후 세계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지만 , 영계에 있는 영들은 상념(想念)의 교류를 자유
자재로 하고 있다.

상념의 교류란 어떤 영이 다른 영에 대하여 자기의 생각과 느낀 바를 알린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두 영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또 벽이나 장애물이 있건 없건 그런 것에는 아랑곳없이 거침없이 행하고 있는 것이
다. 말할 나위도 없이 이것은 영과 영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영과 육체를 갖고 있는 인간 사이에서는 행하여 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로 하여금 영과 영계의 존재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죽음의 통지라든가, 기가르트나 영국의 한 마을의 어머니의 경우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머니의 경우, 그리고 인간이 죽음의 통지를 받는 경우는 그 모두가 죽어가는 사자의 영이 상대할 수 있는 인간에
게 상년의 교류로써 알려주는 것이다”라고 여기서 우리들은 큰 의문을 품게 된다. 그것은 영들끼리의 상념 교류가 어찌하여 영과 인간
의 사이에서도 행해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이렇다.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느 어머니는 실로 죽어 있었던 것이다. 죽어서 영이 되어 있었다.”
기가르트의 경우나, 영국의 어머니의 경우도 사실을 말한다면 육체를 지닌 인간이 아니라 죽어서 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기가르트가 난파선에서 아들의 모습을 본다거나, 어머니가 아들의 소생을 알게 된 순간에는 두 사람 다 같이 죽어서 영으로
되어 있었던 까닭에 자식들의 영으로부터 통지를 받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

이 아들의 영들은 가장 친한 기가르트나 어머니의 육체에 깃든 영에 대하여 상념의 상통(想通)을 구하였으며, 기가르트나 어머니는
그 순간 영의 세계에 눈뜨면서 육체의 인간은 순간적인 죽음을 경험했던 것이다. 나는 한 가지 더 거론하고 나서 '죽음의 기술(技術)',
'죽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한 설명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어쩐지 등 뒤에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은 시선을 느끼고 뒤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다만 돌아다 본 공간에서는 평소와는 다른 그 무엇인가가 느껴져서 잠시 눈여겨보았다.

이러한 경험은 누구나가 겪었을 것으로 안다. 너무나 순간적이고 막연한 경험이기 때문에 우리의 주의나 공포심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지만, 바로 이때 당신의 등 뒤에는 영이나 영계 혹은 사후세계가 땅거미처럼 자취 없이 다가와 모습을 드려내려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은 당신도 기가르트나 앞서 말한 어머니의 경우처럼 순간적으로 죽어서 영계를 어렴풋이나마 엿본 것이다.

영계가 이승의 하늘을 날아가는 참새처럼 지상에 드리우는 순간적인 그림자는 너무나도 미미하다. 그러나 그 그림자가 아무리 엷다고
는 하지만, 엄연히 그곳을 날아간 참새가 실존(實存)하는 이상 영계는 이승의 뒤안길에 찰싹 붙은 채 실재(實在)하고 있다. 영계와 이승
은 떼어내려고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동전 한 닢의 안팎과 같은 것이다.

나는 스스로의 육체를 자신의 의지로 죽음의 상태로 끌어들임으로써 영의 세계로 들어가 영계 또는 영들의 소식을 알아냈다.
마치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머니가 격은 그 순간처럼 말이다. 이 일을 표현하는 데 우선은 '죽음의 기술', '죽는 기술'이라고만 말하겠다.
내가 말하는 죽음의 기술이나 죽음의 상태가 어떤 것인가는 이 수기를 읽어 나가는 동안 차츰 알게 될 것이다.

죽음의 기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서 영계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를 말하겠으나, 이에 앞서 나를 영의 세계로 이끌어 준 최초의 계기가 된 이상한
경험을 소개하기로 한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20여 년 전 여름날 어느 저녁때 일이다. 그 무렵 나는 볼일이 있어 고국인 스웨덴을 떠나 바다 건너 영국의 한
객사(客舍)에서 40에 접어든 몸으로 혼자 씁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거리로 나온 나는 늘 다니던 음식점에 들러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 그 때 가게에는 다른 손님이라곤 한 사람도 없었다. 식사를 마친 나는 좀 과식 했구나 생각하면서 포오크를 놓고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괴상한 경험은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났다.

내가 식사를 하던 방안 마루바닥에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뱀과 두꺼비가 득실거리며 갑자기 땅에서 솟은 듯이 수없이 나타났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정신이 아찔했으나 잠시 후 기분 나쁜 그 생물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곳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인물이 이상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나타났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대여! 과식(過食)하지 말지어다” 그 인물은 이 한마디를 남기고서 홀연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섰던 곳에는 구름이나 안개처럼 희미한 것이 떠돌아 나 자신도 그 속에 감싸이고 말았다. 그리고는 곧 안개는 걷히고 방안에 혼자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급히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주인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에 들어박혀 방금 격은 그 기괴한 경험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처음엔 심신(心身)의 피로나 그런 류의 어떠한 변화에서 온 환각(幻覺)인가 생각했으나,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건강했을 뿐더러 일에 쫓기어 바쁜 나날을 보내던 때의 일인지라 심각히 생각한다든지 고민할 나위도 없이 곧 잠이 들었다. 이튿날 밤에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나리라곤 꿈에도 모르고 ....... .
이튿날 밤 내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에 또 다시 그 괴상한 인물이 이번에는 내 침대 머리에 현신(現身)한 것이다. 나의 놀라움과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에게 더욱더 기막힌 말이 떨어졌다. “나는 그대를 인간 사후의 세계, 영의 세계로 동반하리라. 그대는 그곳에서 영들과 사귀고, 그 세계에서 듣고 본 바를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

이 불가사의한 인물과는 그 뒤 이승에서는 물론 영계나 사후의 세계에서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현재로서는 그 인물이 세상에서 말하는 신(神)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한 마음속에 숨어 있던 영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보았지만 어떤 것이라고 집히지가 않았다. 다만 확신한 것은 이것이 인연이 되어 인간이 죽은 뒤의 세계, 영의 세계를 출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지금 이렇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그 예가 없는 이 저서를 남기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나는 죽음의 기술을 스스로의 육체에 베풀어 육체를 죽음의 상태에 둔 채 인간 사후의 세계로 들어갔다고 했다. 이제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가에 대해서 적어 보기로 한다.

우리가 죽음을 통지를 받았을 때, 비록 짧은 시간이나마 사람은 영의 존재나 영계의 존재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인간은 원래 육체만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보다도 더 깊고 보다 본질적인 영과 그 영의 도구로서 활동하는 육체가 서로 둘로 갈라진 것처럼 보여준다. 이 점은 앞에서 말한 몇 가지 예를 보아도 누구나 곧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육체에 깃들고 있을 때의 영은 육체라는 기둥에 묶여 있으므로 해서 영이 지니고 있는 가장 영다운 성질이나 작용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으로서의 원래의 면모를 나타낼 수 있다면 극히 한정된 경우뿐이다. 앞에서 예를 든 기가르트나 영국의 어머니처럼 “죽음과 경계를 마주칠 때”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때 사람들은 비록 순간적이긴 하지만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 그의 영은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영계의 문안을 넘보게 된다.

내가 영계에 들어가 영들과 사귀게 된 것은 나 스스로의 의지로 나의 영을 나 자신의 육체로부터 벗어나게 한 까닭이었다. 나는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영들과 어울린 것이 아니라, 육체를 지니지 않은 하나의 영으로서 어울린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는 또한 육체를 가진 인간이었음에 틀림없었다. 그것은 인간에게 영들이 보이지 않듯이 영들에게는 인간의 육체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영으로서의 나를 보았고 나를 영으로서 대우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육체와 영을 분리하여 영계로 들어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나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소개함으로써 대신 하겠다.

영이 육체로부터 이탈하는 초기에는 실상 잠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또렷하게 깨어있는 상태도 아닌 특이한 감각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때 나 스스로는 자신이 완전히 깨어 있다는 의식이 뚜렷하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이 깨어 있다는 감각은 육체적인 인간이 흔히 느끼는 그러한 각성(覺醒)이 아니라 영으로서의 감각차원에서 느끼는 각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사로운 눈과 귀, 코를 통한 외형적인 육체적 감각은 모두 잠들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가 육체로서의 인간에 속하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앞서 말한 영혼으로서의 감각은 더욱더 밝아져서 뚜렷해진다. 영으로서의 의식 속에서 느끼는 시각과 청각 더구나 촉각에 이르러서는 보통 때의 50배 1백배나 날카로워진다는 것을 나 자신이 알아차린다.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이러한 감각은 전혀 육체적인 감각에서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금 설명한 그대로이다. 만약 이러할 때의 나를 누가 본다면, 나는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완전히 잃고 죽은 것이라고 밖에는 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심장의 고동이나 맥박도 멎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런 상태를 가리켜 나는 죽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같은 말이 되겠지만 다음에서 서술하려는 이유로 말미암아 영의 상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죽음의 상태, 즉 영의 상태에 들어가면 자기 자신의 영이 자기의 육체 속에 있는 것도 또 육체 밖에 있는 것도 그 어느 쪽도 아닌 상태에 놓여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들의 모습이나 영계의 분위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더군다나 영들의 말을 들으면 그 말을 이해 할 수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영들을 만질 수 있을 듯한 촉각을 느끼기도 한다. 이것은 영과 나 사이에 육체라고 하는 방해물이 없어진 까닭에 직접 영들과 어울리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이런 상태가 더욱 길어지면 영의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하며 다른 영들과 마치 인간을 사귀는 것처럼 사귈 수 있게 되는데, 거기에는 또 하나의 단계가 놓여 있다.

육체를 이탈한 뒤 아직 그 육체와의 거리가 멀어지지 않는 단계에서는 나의 영은 방금 이탈한 스스로의 육체를 역력히 볼 수가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육체에 대한 지배력을 지속한다. 그 상태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나의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서 20-30미터 가량의 높이로 나직이 떠 있었다. 아래를 굽어보니 침대에 누워있는 나의 육체가 보였다. 내가 육체적 시각에서가 아니라 영의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이 사실 만으로도 알 수가 있을 것이다. - 육체적 시각이었다면 지붕 밑에 있는 나의 육체나 침대는 볼 수가 없었을 게 아닌가? - 나의 육체는 그때 침대 모서리에 목덜미가 닿아 있었다. 영으로서의 나는 허공에서 생각했다.

“저래 가지고는 목이 아플 텐데, 혹시 질식이라도 하는 것이 아닐까? 몸이 틀어져 바로 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나의 영이 그렇게 생각하자 나의 육체는 몸을 틀어 목덜미를 침대 모서리에서 벗어나도록 움직였다. 이 순간의 나의 육체는 누구의 눈에도 죽은 시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혹 누군가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죽은 시체로밖에 보이지 않던 육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대경실색하여 심장이라도 얼어붙을 지경이었으리라. 이 상태로부터 다시금 더 나아가서 나의 영이 나의 육체를 거의 의식할 수 없게 되면 나의 영은 완전히 육체에서 이탈하여 영계의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드나들며, 많은 영과 자유로이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내가 살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들과 사귀고 영계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일들을 보고 듣고 해서 돌아오게 된 것도 이러한 방법으로서였다.
<역자주> 스웨덴보르그가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고 자기 방에 들어박힌 채 며칠씩 식사를 걸렀다는 사실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런던에 머물고 있을 때 그의 하숙집 주인은 그러한 그를 무척 수상하게 생각했음인지 그 기록이 현재에도 남아 있다. 또 그가 방에 들어 박혔던 기간은 2-3일에서 10일에 걸친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 순서를 밟아 영계나 영들에 관한 일을 적어 나가기로 한다.

죽은 사람도 생각은 한다.
영원히 잠든 사자(死者), 말하자면 인간으로서의 모든 활동을 마치고 고요히 죽음의 자리에 몸을 뉜 죽은 사람, 사자라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지만, 이 사자도 실은 고요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긴다고 한다면 누구나 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어디인지 잘 모르지만 자기를 부르는 인기척을 느꼈다. 그것이 어디에서 부르는 것인지 왜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웠다. 그러나 여전히 그를 부르는 인기척은 계속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세차게 느껴졌다. 알 수 없는 그 부름은 그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도무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는 점은 마찬가지였다.

그가 기묘한 인기척에 이끌리어 찾아간 곳은 어떤 집 방안이었다. 그는 그 자신도 까닭을 모른 채 찾아간 그 방안을 둘러보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방에는 가족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열 명쯤 모여 있었다. 다만 그가 알아차린 것은 방안 사람들의 표정이 모두 깊은 슬픔에 잠긴 표정이었다는 점이다. 침울하고 구슬픈 분위기로 꽉 차있었다. 누구 한사람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이따금 들려오는 것은 사람들의 목구멍에서 새어나오는 꾹 참으려는 듯한 흐느낌뿐이다.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그는 더욱 불안하기만 했으나, 그래도 그 이상한 모임의 진상을 알아보려고 차분히 방안을 훑어보았다. 그러자 사람들이 둘러싼 한 복판에 침대 하나가 놓여 있고 거기에는 한 인간이. 즉 죽은 사람이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사정을 겨우 알아차린 그는 이번에는 침착하게 다시금 사람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가 알만한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 이때서야 그는 겨우 깨달았다. 자기가 하나의 영으로서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을. 그렇게 깨닫자 새로운 불안에 휩싸였다.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사람들이 나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나 않을까?”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방안에 바람이 스쳐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 그때까지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람의 그림자가 희미하나마 방안에 떠올랐다. 다음 순간 그 그림자처럼 생긴 희미한 것은 소리도 없이 시체가 있는 침대의 머리에 다가앉았다. 그는 놀란 나머지 어안이 벙벙하여 꼼짝도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 그림자처럼 엷은 침입자의 출현은 아까부터 마음에 걸렸던 한 사실에 대한 의미를 꼭 꼬집어서 얘기할 것은 못되지만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는 이방에 처음 들어 왔을 때부터 가느다란 숨소리가 마음에 걸려 의아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사자(死者)의 가슴 언저리에서 새어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물론 그것만으로 의문은 풀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사자의 숨결인가하고 여겼으나 곧 자신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부정했다. “사자가 호흡을 할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은 그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가 처음에 생각한 바와 같이 죽은 사람의 숨결, 다시 말해서 사자의 호흡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사람의 그림자가 방안에 들어 왔을 때 그의 뇌리엔 섬광처럼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저것이 사자의 호흡이라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것은 없잖은가?”

이윽고 더욱 놀라운 사태가 일어났다. 그것은 사자의 몸에서 아까 침대 머리에 다가 앉았던 이상한 그림자와 같은 것이 문득 일어나 앉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다음 순간에는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사자의 몸에서 빠져 나온 그림자와 먼저의 그림자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앉은 것이다. 그 모양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밖에는 느껴지질 않았다.

잇달아 일어난 이 무서운 사태의 진전으로 그는 자신의 존재조차 잊고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궁리해 보아도 그의 머릿속은 혼란하기만 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르나 약간 마음이 안정되는 듯하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슬픔에 잠겨있고, 두 그림자의 대화도 계속되고 있는 듯했으나, 그 순간 그가 비로소 깨닫고 놀란 일이 있으니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두 그림자에 대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으며, 두 그림자 역시 사람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상식을 초월한 현상이었다.

시간은 다시 흘러 두 그림자는 사라지고 사람들도 죽은 사람을 밖으로 운구(運柩)하여 옮겼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은 육체의 죽음은 곧 모든 것의 끝장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이승, 물질계요 자연계의 광명 속에서 사물을 보고 느끼고 하는 이상은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나 스스로 영이 되어 영계에 들어가 영의 세계를 보고 오는 나로서는 그러한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 것인가를 일일이 사실을 들어 지적해 보일 수가 있다. 이제 그것이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점을 지적하기 전에 우선 인간의 죽음이 실제로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말해보기로 한다.

앞에서도 잠깐 말한바와 같이 인간의 육체의 죽음이란 이승에서 모든 일에 대한종말을 의미한다는 것은 물질계와 자연계의 관념으로 본다면 분명히 옳은 일이다. 그러나 죽음은 영의 입장이나 영계의 측면에서 본다면 단지 육체 속에 깃 들고 있던 영, 즉 육체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도구로써 사용해온 영이 육체의 사용을 그치고, 육체를 지배한 힘을 잃었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영은 그 뒤에 영계를 향해 여행길에 오른다. 죽음이란 영으로 볼 때에는 영계에 오르는 여로(旅路)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 이런 견해에 대한 예를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해 보기로 하자. 인간이 죽으면 그 육체에 살고 있던 영은 영계로 여행길에 오르게 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는 보통 이승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보통 2~3일이란 시간이 걸린다. 죽음과 동시에 육체 속의 영은 비로소 눈을 뜨는데, 이 일을 알아차리고 영계로부터는 다른 영(안내 역할을 하는 영)이 사자의 영을 찾아온다. 이는 영끼리의 감응(感應)에 따라 일어나는 결과이다. 그리하여 영계로부터 찾아온 인도하는 영과 사자의 영은 죽은 사람의 육체가 있는 장소에서 서로의 상념(생각)의 교환을 시작한다. 이 교환에 관한 일은 따로 자세히 말하겠으나 어쨌든 이 교환은 죽은 사람의 새 영이 장차 영원한 삶을 보내기 위한 매우 중요한 준비의 한 단계를 이룬다.

앞에서 말한 사후 2~3일간은 죽은 사람의 영이 아직 육체에 남아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상념의 교환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그 동안에 죽은 사람의 영은 죽은 육체 속에서 조용히 소리 없이 영의 호흡을 지속하며 또한 영으로서의 생각에 잠기게 된다. 죽은 자도 생각을 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영과 인도하는 영과의 상념의 교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는 다음에서 말하기로 한다.

죽은 뒤에 시작되는 영과의 대화.
제프는 가족의 정성어린 간호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저승길로 떠났다. 슬픔에 한숨짓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의 시체는 이승에서 모든 일을 마쳤다는 듯이 고요히 영면(永眠)하였다. 제프가 이 세상을 하직한지 몇 시간이 지났다. 제프의 둘레에는 그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눈물을 흘리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제프. 죽은 자가 된 제프는 이 때 불현듯 무엇인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조금 전에 죽었을 것인데? 사람들이 내 손을 잡고 마지막 이별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가? 그것은 꿈이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가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의 모습도, 그가 오래 살아오던 낯익은 방도 그의 눈에는 보일 까닭이 없었다. 분명히 방에는 사람들이 함께 있건만 제프는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죽은 자로서 누워 있어 이미 별개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프의 의식 속에 이러한 마음이 솟아난다는 것은 제프의 영으로서의 깨달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제프는 자기가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는 그 육체의 눈을 뜨고 둘레에 서있는 사람들을 본다든지 입을 열어 말을 건다든지 하는 일은 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가 영으로부터의 조용한 호흡을 소리 없이 계속하고 심장도 고동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 분명하다.

이윽고 제프는 영으로서의 의식 속에서 놀라움의 소리를 지르고 숨막히는 일을 겪었다. 그는 눈앞에서 아직 희미하나마 그 때까지 보기는커녕 상상조차도 못했던 세계가 펼쳐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무언가 지금까지의 세계와는 전혀 별도의 세계로구나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이것이 바로 사후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그는 죽음의 수렁에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의 시야에는 희미하지만 넓은 평원처럼 보이는 경치 그리고 건너편 기슭이 보이지 않는 큰 강, 엷게 하늘에 빛나고 있는 태양 같은 것, 어쩐지 인간을 방불케 하는 생물 - 그러나 아지랑이처럼 희미한 모습이지만 - 이 자유롭게 그 세계의 하늘을 날고 있는 듯한......... 그런 불가사의한 세계가 보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얼마 후 제프는 몽상이라고 할까, 환상이라고 할까 도무지 분간할 수 없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는 자기 바로 앞에 그 때까지도 상상도 못했던 두 그림자가 나타나 바로 앞에 다가앉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계로부터 인도하는 영이 나타난 것이다.
이끌어주는 영은 제프가 자기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을 알자 제프의 얼굴을 지그시 눈 여겨 보았다. 이에 응해서 제프 안에서 눈을 뜬 영 - 정확히는 아직 정령(精靈)이지만 - 도 제프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지도 모르지만 인도하는 영에게 얼굴을 돌렸다. 영끼리의 사이에서는 얼굴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념의 교류가 되는 법이지만, 제프의 정령은 아직 그렇지가 못하다. 그래서 인도하는 영은 제프의 정령을 영으로서의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했다.

제프의 정령은 왼쪽 눈 위의 엷은 천이 천천히 벗겨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왼쪽 눈에 희미하게나마 조금씩 빛이 비쳐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그것은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려고 할 때에 가느다랗게 뜬 눈꺼풀 사이로 바깥세상을 보는 때처럼 매우 어렴풋하고 희미한 상태였다. 다음에 제프의 정령은 얼굴 전체를 뒤덮였던 부드러운 엷은 천이 차차 말려 올라가는 듯함을 느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영으로서 눈을 뜨기 시작한 제프의 정령은 그 마음속에 여지껏 육체의 인간이었을 때에는 상상도 못했던 영으로서의 상념이 한꺼번에 밀려 스며온다.

왼쪽 눈 위에서 혹은 얼굴 전체에서 차츰 말리어 걷히는 얇은 천은 인도하는 영의 손으로 말려 올려지는 것은 물론 아니며 실제로 이러한 일이 이루어질 까닭이 없다. 이것은 제프의 정령으로서의 생각이 육체의 정령으로 있었을 때의 생각에서 벗어나 영의 상념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상징이요 표시인 것이다.

영으로서의 상념을 스스로 받아들인 제프의 정령은 이 때에 분명히 자기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에 이른다. 인도하는 영은 이 때에 제프의 정령에게 영계의 말을 전했다 “그대는 이제 정령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영으로서의 영원한 삶을 영위하라” 이제는 제프의 정령도 자기를 안내하러 온 영의 말뜻을 역력히 알아듣게끔 되었다. 인도하는 영과 제프의 정령 사이에 상념의 교환이 이루어진 것은 이 때부터였다.
인도하려온 영이 물었다. “그대는 인간으로 있을 때에 어떠한 생애를 보냈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제프의 정령은 육체를 가진 인간 시절의 생애를 더듬어 두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족했다.

“영계에는 허다한 단체가 있다. 지금 그대에게 이를 보여 주리라” 안내를 맡은 인도하는 영은 이렇게 말하자 지금까지 제프의 영이 볼 수 없었던 영계라든가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보내고 있는 많은 영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인도하는 영은 제프의 정령이 짓는 얼굴의 표정을 응시하고 조그마한 얼굴의 변화도 놓치지 않을 세라 눈여겨보고 있었다.

영계에는 뒤에 언급하겠지만 수없이 많은 단체가 있다. 영들은 빠짐없이 자기에게 가장 알맞은 단체에 소속되어 영원한 삶을 누린다. 인도하는 영이 나타나 사자의 영과 상념의 교환을 갖는 것도 실은 그 사자의 영이 인도해 주는 영과 같은 단체에 속할만한 성질을 지니고 있는가를 알고자 함에서였다.

그러므로 이 상념의 교환을 통해서 동일한 단체에 속할 성질을 지녔다고 판단이 되면 인도하는 영 스스로의 손으로 사자의 영을 영계 - 단 최초의 정령계이다 - 로 이끌어 간다. 또한 이와는 반대로 그 사자의 영이 다른 영계의 단체에 속해야 옳다고 생각되면 곧 사자의 영을 육체 속에 둔 채로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되면 사자의 영은 그 뒤를 이어 잇달아 나타나는 안내하는 영에 의해서 자기가 장차 소속할 만한 단체를 결정할 때까지 육체 속에 남아서 영으로서의 삶을 보내게 된다. 따라서 이 동안에는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사자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제프의 예에서 말한 “사자의 영과 인도하는 영과 상념의 교환”에 관해서 설명을 보충해 보기로 한다.
우선 우리가 첫째로 의문을 품게되는 것은 영계의 말을 익혔을 까닭이 없는 제프의 정령과 영들 사이에 이미 말을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비밀은 다름이 아니라 영계의 말은 영들이 배워 익히지 않더라도 마음에 생각이 떠오르면 저절로 말이 되어 상대방에게 통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도하는 영이 인간으로서의 제프의 생애에 대해서 질문한 것은 인간세계에서의 생애 속에는 영이 된 제프의 성질을 알 수 있는 많은 열쇠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며, 인도하는 영은 그것을 알아야만 장차 제프의 영이 속해야 할 영계의 단체를 판단할 수 있는 참고로 삼을 수 있게 된다.

또 우리가 가장 괴상하다고 느낀 것은 앞의 예를 든 가운데 두 번 정도 나온 표상(表像), 즉 심볼이라고 생각한다. 표상이라고 하면 한 가지 일을 무엇인가 공통점을 암시하는 다른 심볼로 나타내는 것이며, 가령 붉은 색은 정열을, 흰색은 순결이라고 하듯이, 표상은 이승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또 제프의 얼굴에 덮여 있던 엷은 천을 벗기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함으로써 제프의 정령이 이미 인간계를 벗어나 그 생각이 영적인 것으로 바뀌었다고 가르쳐준 인도하는 영이 취한 표상 등은 아직도 이승에서 사용하고 있는 표상 방법이다.

그러나 영계의 표상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표상이 많다. 방금 든 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제프의 정령에게 영계의 모습이나 영계 단체가 뚜렷이 보인 것도 인도하는 영이 표상이라는 방법으로 볼 수 있게 한 것이지만 영계의 놀랄만한 표상에 관해서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제프의 영은 이렇게 하여 어느 영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어느 영에 의해서 인도되어 간다. 사자의 영(정령)은 영원히 삶을 보내게 될 영계로 떠나기 전에 우선 정령계로 안내되는데 그 정령계로 인도되는 과정에 대해선 다음에서 말하기로 한다.

정령계(精靈界)로 가는 길.
나는 방금 죽은 사자의 정령이 인도하는 영의 안내로 정령계로 인도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이제 또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무렵 인도하는 영과 정령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어떤 교외의 흐르는 강가를 걸어가고 있었다. 강변에는 포도밭과 보리밭 그리고 목장과 축사(畜舍) 등, 그리고 갖가지 모양을 한 집들, 게다가 언덕 위에는 성이 보이고 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은 이승의 것이어서 그들의 눈에는 뛸 리가 없다. 그들의 대화를 드문드문 들었다.

“그대는 저 건너편에 펼쳐진 빙원(氷原)이 보이는가? 그대가 이제부터 가려는 정령게는 저 빙원 너머 아득히 먼 저쪽 산골짜기에 있다.” 영이 말하는 빙원 같은 것은 그들이 지금 걷고 있는 이 세상의 풍경에는 전혀 없는 존재이다. 그들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같은 공간에는 없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비치는 것은 모두 이승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 즉 영계의 그것이다.

정령은 의아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다. “도대체 어디에 있소? 또한 정령계라는 것도 나에게는 어떠한 곳이라는 개념조차 분명치 않소. 그대의 말은 모두가 어둠과 같아서 나로서는 하나도 없는 거나 같으니 어떻게 할 것이요?”
인도하는 영들끼리는 서로 마주 보고 빙그레 웃는 듯이 보였다.“아직은 좋소. 그대는 염려하지 마시오. 멀지 않아 그대도 우리의 말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게 될 것이오.”

정령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에게 빙원은 보이질 않으나 다른 것은 눈에 보입니다. 그것은 바다처럼 보이며, 그 해변엔 큰 바위가 있고 거암(巨巖)위에는 마치 사람의 그림자처럼 보이는 것이 수없이 보입니다. 또 큰 바위 옆에는 큰 고래와 같은 물고기가 있어 큰 입을 벌리고 바위를 삼키려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여기까지 말하자 인도하는 영은 정령의 말을 가로막고 말했다. “그대는 정령으로서의 눈이 차츰 뜨이고 있는 것이오. 그대는 그 바다라고 하는 것을 잠시 눈여겨보시오.”

그들은 여전히 강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보리밭 언저리까지 가자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강 건너편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다리가 놓여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공중을 보이지 않는 다리라도 걸려 있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걸어간 것이다. 강 건너편으로 걸어가자 마치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을 때처럼 서슴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가 곧장 성벽을 아랑곳없이 통과하여 빠져나와서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영에 의해서 인도되었던 나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지난날 어떤 시가지를 지나 교외로 걸어가고 있었다. 도중에 나는 눈을 뜨고 있었으며 평소와 조금도 다름없이 감각을 가진 것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눈을 뜨고 각성한 상태였다고 생각한 그 자체가 환상이었다. 나는 걷고 있는 도중에 숲이라든가 집, 강, 사람 등 늘 보던 인간계의 풍경을 모두 다 보았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은 인간계에 있는 숲이나 가옥이 아니라 영계에 속한 것이었다. 나는 실상 그때에 영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상태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육체로 되돌아 왔다. 그러자 내 주위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지금까지 보고 온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고 아찔했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영의 인도를 받아 걸어가고 걷고 있던 시간이 어느 정도였는지, 혹은 얼마나 날짜가 지났는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전혀 피로를 느끼지 않았다는 것과 내가 인간계로 돌아온 순간 서 있던 자리가 전혀 낮선 고장이었다는 두 가지 사실 뿐이었다.

인도하는 영에 의해 인도를 받는 이 새로운 정령은 멀지 않아 정령의 세계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때까지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상상 조차도 하지 못했던 정령의 세계, 즉 정령계를 직접 눈여겨보게 되는 동시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에는 나는 영계 중에서도 가장 흥미 있는 세계, 즉 이 세상의 인간과도 관련이 깊은 세계인 정령계의 여러 가지 일을 말해 보기로 한다.

정령의 세계 정령계.
이 세상의 인간이 죽어서 가는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정령계(精靈界)이다. 인간은 죽은 후 즉시 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들어간 후 다시 영계로 올라가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보내는 영이 된다. 정령이 인간과 영과의 중간적인 존재인 것처럼 정령계도 인간 세계인 이승의 물질계, 즉 자연계와 영계사이의 중간이 되는 세계이다.

정령계는 얼마나 넓고 큰 것인지 그곳을 드나든 나 자신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넓고 큰 것이어서 매일 매일 몇 만 아니 몇 십만이라는 인간이 육체의 삶을 끝마치고 정령계를 들어가는 것만 보아도 그 광대함을 가히 짐작할 것이다.

정령계는 그 둘레를 둘러싼 거대한 산맥 곳곳에 영계로 통하는 길이 있는데, 이 통로는 정령계에 살고 있는 정령들의 눈에는 띄지 않는 법이다. 다만 그들이 정령계에서 영계로 옮겨갈 준비가 끝났을 경우에만 눈에 띄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령계에서 사는 정령들은 영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으며, 이 세상 사람들이 마치 이승만이 세계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정령계만을 온 세계인 것으로 알고 생활한다.

그렇다면 정령계에서 정령들이 어떠한 과정과 준비를 거쳐서 영계로 갈 수 있게 되는지 또 그 영계로 가기위한 준비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그 설명을 하기 전에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독자들이 생각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하려한다.
정령계는 영계임은 틀림없으나 아직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이승과 비슷한 점이 많다. 사흘 전에 정령계로 들어온 정령과 죽기 전에 그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으로서 이날 처음으로 정령계로 들어온 정령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새로 온 정령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의 장례 준비를 보고 왔다. 그대의 육체는 곧 땅에 묻힐 것이다.”

이 말을 듣자 또 하나의 정령은 나자빠질 듯이 놀란 표정으로 눈을 크게 뜬 채 말했다. “내 육체가 파묻히다니 무슨 말인가? 나는 아직도 이렇게 살아 있는데, 세상 사람들이 미친 모양이로군. 장사를 지내는 것을 곧 중지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휘저어 미친 듯이 외치는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해 나는 그들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하여 떠들어대는 정령을 보고 말했다. “그대는 이제 정령이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아니란 말이오. 그대는 이 사실을 잊어선 안 되오. 그대는 정령계로 인도될 때에 이 말을 못 들었단 말이오? 그런 일은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오.”

내 말은 그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성을 되찾게 해주었는지 그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나는 깜박 잊었었소. 이젠 내가 정령이라는 것을 생각해 냈소. 그렇다면 나의 볼일을 다 마친 육체의 매장은 추호도 관여할 일이 못되오.”
정령계는 적어도 정령들의 의식 속에서는 인간계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엇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령의 경우처럼 아직 자기가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고 착각하는 정령은 상당한 수에 이르며, 정령계로 안내되기 전에 인도하는 영으로부터 정령이 되었음을 통고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일단 정령계로 들어서자 잊기 일쑤인 것이다.

정령계가 너무나 인간계와 비슷한 까닭에 자기가 죽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시 인간계에서처럼 살아 있는데에 놀라는 정령도 매우 많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정령계와 인간계가 비슷함에 놀라는 자와 죽었다고 생각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와하는 자의 두 가지가 있다. “나는 죽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처럼 살아 있구나, 이 어이된 일일까?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었단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살아있는 이 자체가 환상이란 말인가?” 이러한 정령은 영락없이 이러한 자문자답에 스스로 괴로워했다. 이러한 정령에게는 영계로부터 온 지도하는 영 - 말하자면 정령의 입장으로 볼 때 이들은 영계의 경험이 풍부한 선배가 된다 - 이 가르쳐 준다.
“그대는 정령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죽음이라는 것은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서 죽은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죽은 그대는 이제 정령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대가 죽었음은 사실이요 그대가 이제 살아 있음도 또한 진실이다. 불필요한 망상으로 헤매지 말라 그대는 정령으로 살아 있음이니 이는 만에 하나라도 거짓이 없는 진실이다.”

그리고 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령에게 알려주었다. 인간은 원래 영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음으로 육체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가 죽으면 영은 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안내되어 그곳에서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준비가 끝나면 영이 되어 영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영원히 영의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그 때를 위한 준비 기간이라는 사실 등을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에 대해서 놀라움을 표시하는 정령이 많다.

“나는 인간 세계에 있을 때 그런 얘기를 전혀 들은 바 없고 또한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다. 나는 처음 듣는 말들뿐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 듣고 보니 눈앞이 어둠으로 덮인 듯한 생각과 눈앞이 훤히 열리는 듯한 생각이 엇갈리어 마음만 어지럽다. 내가 세상에 있을 때는 어리석었던가?”

말하자면 인간은 육체가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장난 것으로 안다. 그리고 영계라든가 영이라든가 하는 것은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죽었다고만 생각했던 자기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되면 어차피 자기의 종전까지 생각이 단순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간으로 있을 때엔 상상조차도 못했던 일이 잇달아 일어나므로 마음과 정신은 혼란할 뿐이라는 것이 이 정령들의 솔직한 감상이다.

이러한 정령들도 정령계에서의 나날을 보내는 동안에 정령들로서의 삶에 차츰 확신을 갖게된다. 내가 만난 많은 정령들은 내가 이승의 육체를 지닌 채 찾아온 이상한 나그네임을 알자, 너 나 없이 이승에 남겨둔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갈을 부탁했다. “나는 죽은 것이 아니다. 정령으로서 살아 있으니 이 사실을 가족에게 전해 달라” 거의가 이러한 부탁이었다.

나는 이 기회에 인간 세계의 학자들과 종교 관계자에게 한 마디 충고하고자 한다. 정령계에 들어간 정령들이 자신은 죽은 것으로만 알고 있던 그들이 그토록 놀라움과 의혹에 휩싸여 괴롭게 번민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학자나 교회의 목사로 불리는 사람들이 인간의 본체(本體) 및 영이나 영계에 관한 일을 하나도 사람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릇된 생각마저 부식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상 ----- 내가 말하는 자연계와 물질계의 태양 아래서만 물체를 보고 또한 자연계와 물질계에 뿌리를 둔 사고 방식만을 고집한다. 그리하여 자연계의 빛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물체나 자연계적인 사고방식으로서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은 모조리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멋대로 단정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진리인 양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영계의 빛에 의해서 영계의 사고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 전부를 부정해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정령계는 인간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정령들은 모두가 하나의 인체(人體) -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의 인간과는 약간 다른 점이 있으나 - 를 갖고 있고, 얼굴의 생김새도 정령이 된 얼마동안은 이 세상의 인간이었을 때나 별다른 점이 없다. 또 정령계에는 이승에 있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산이나 강 그리고 숲과 집 등 무엇이든지 있다. 게다가 정령들은 인간이 지닌 온갖 감각도 그대로 갖추고 있다. 다만 감각상으로 인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영으로서의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이 영적인 성격이 차츰 정화되어 물질계의 티가 사라지면 영적인 면이 들어나 영계로 갈 자격이 생긴다. 정령계는 이러한 과정을 위한 시련과 수양의 광장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다.

정령들의 영적인 감각이 뛰어난 예로서 그들의 놀라운 기억의 능력을 들어보기로 한다. 영계에서 찾아온 검사(檢査)의 영 앞에 한 사람의 정령이 서 있다. 검사의 영은 우선 정령의 얼굴을 뜯어보았다. 이윽고 시선을 옮겨 가슴과 배 그리고 다리와 손끝까지 정령의 전신을 훑어본다. 정령계에 있는 다른 영들도 주위를 둘러싸고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자 어떻게 된 셈인지 기묘한 일이 일어나 다른 정령들을 놀라게 했다. 검사의 영 앞에 서있는 정령의 머리 위에 안개처럼 엷은 구름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구름은 차츰 모양을 가다듬어 한 채의 집으로 변했다. 그 집 입구에는 한 사나이가 나타나 주변을 살펴보면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정령 - 즉 지금 검사를 받고 있는 정령 - 은 나쁜 일을 하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정령들이 놀란 것은 다음에 일어난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그 정령의 머리 위에 빚어진 광경에 시선을 빼앗겼던 다른 정령들은 땅위에서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려 지면에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검사하는 영 앞에 서있던 정령의 발 앞에 한 권의 비망록처럼 생긴 수첩이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갑자기 나타나 한 장 한 장 넘겨지고 있었다. 이 비망록이 언제 나타났는지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이 비망록에는 그 정령이 인간계에 있을 때 저지른 죄상이 낱낱이 적혀 있었다. 거기엔 뇌물을 받고 부정행위를 한 그의 인간계 시절의 상세한 행동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놀라웁게도 그 기록 속에는 그 자신이 인간계에 있을 때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일까지도 적혀 있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이 책은 내가 세상에 있을 때 저술한 것이요. 그런데 어떻게 해서 여기에 나타났단 말이요?” 한 정령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외쳤다. 검사하는 영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그대의 기억 속에서 이 저술을 끌어내어 여기에 재현 시켰다. 그대는 조금도 놀랄 것 없다.” 그러자 그 정령의 놀라움과 흥분은 더할 뿐이어서 다시 이렇게 외쳤다. “이 불가사의한 일을 어찌 이해할 수가 있겠소? 이 저술은 분명히 내가 인간계에 있을 때 쓴 것이오. 그러나 이토록 세밀한 대목은 미처 기억하질 못하오. 그런데 내가 잊고 있는 일까지 적혀 있음은 어찌된 조화요?”

이 정령은 인간 시절에는 학자였다. 그런데 그가 쓴 책이 정령계인 이 곳에서 다른 정령들의 눈앞에 재현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가 외친 것처럼 그 자신이 인간이었을 때에 잊고 있던 자세한 대목까지도 나타나 있어 한 자 한 획도 틀림이 없었다. 이런 현상은 검사의 영도 말하고 있듯이 검사의 영이 학자인 정령의 기억 속에서 이끌어내어 정령들이 보는 앞에다 재현시킨 것인데,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계의 학자일 때 잊고 있었던 일도 정령이 되면서부터는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령이 되면 인간 시절과 같은 육체적인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기억, 이성, 지혜 등 영적인 능력이 인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나게 발달한다는 좋은 일례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든 예에 덧붙여 말할 것이 있다. 검사의 영은 정령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을 그의 얼굴과 온몸을 훑어보고서 이끌어 냈다. 이것이야말로 영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능력이며,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정령의 기억 속에서 이끌어 낸 것을 다른 정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현시킨 것이다. 다만 나타내는 방법은 인간세계에서처럼 저작이나 비망록이나 물질적인 형태를 갖추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다른 정령들의 영적인 시력으로만 볼 수 있는 형태로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영적인 시력의 발달 없이는 정령들이라 할지라도 보지를 못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했을 때에 가족들이 한꺼번에 정령계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가족들은 얼굴이 닮은데다가 정령계에서도 한 곳에 뭉쳐 있으므로 얼른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족이라 할지라도 정령계에서 나날을 보내게 되면 날이 갈수록 조금씩 얼굴 모양에 변화가 생기고 그에 따라 이리저리 흩어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친구나 아는 사람 사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세상에서는 한 가족이었을망정 지금에 와서는 이미 얼굴 모습이 서로 갈수록 달라지는 이들 정령들의 대화를 들어 보기로 한다.

인간이었을 때 아버지였으리라 짐작되는 정령의 말이다. “당신은 어느 단체로 가겠소?” 어머니였으리라 짐작되는 정령의 대답이다. “내가 가려는 단체는 당신의 단체와는 다른 것이오.” 정령계를 졸업한 정령은 영이 되어 영계로 간다는 것은 이미 말한바 있으나, 어떤 영이든 가장 자기의 본성에 맞는 영계의 단체에 들어가 그 후의 영원한 영의 생활을 보내게 된다. 영계에는 영의 성격이 다양함에 따라 수없이 많은 단체가 있으나, 지금 얘기를 나눈 두 정령이 지적한 단체 역시 이 영계의 단체를 말한 것이다. 아들로 짐작되는 정령의 답은 이렇다. “저의 희망은 아버지와 같은 단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저의 희망이 영계에서 받아들여질지는 불안입니다.”

딸의 정령도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모님 그리고 오빠와도 떨어져 전혀 다른 단체를 희망해요. 그 까닭은 제가 인간으로 있을 때부터 부모님이나 오빠보다는 그 사람을 사랑했기 때문이죠. 그 사람은 아직도 인간 세계에 있으나 언젠가는 영계로 와서 제가 기다리고 있는 단체로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또 아직 몇 살 안 되는 어린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갈래요. 어느 단체이건 어머니가 가고파 하는 단체라면 따라 갈래요.”

이 세상에 있을 때 설사 가족이었다 하더라도 정령계에서는 모르되 영계에서는 일단 별도의 단체에 속하게 되면 그로부터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 가족의 경우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어린이 그리고 딸은 장차 영계로 오게 될 애인과 함께 같은 단체에 속할 것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결국은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각기 다른 영계의 단체로 가고 말았다.
이상의 얘기를 인간 세계의 인정이나 상식으로 비추어 본다면 너무나도 슬픈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영계의 규정이다. 나는 영계의 율법을 설명하기위해 조금 더 인간과 영의 차이점에 대해서 설명하기로 한다.

원래 인간이란 영계에 속하는 영과 자연계에 속하는 육체로 성립되어 있다는 것은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인간을 두 부분으로 분리할 경우, 어느 부분이 영이고 어느 부분이 자연계에 속하는 육체의 영역에 포함되는 것일까? 이러한 구분은 다음과 같이 밝힐 수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의 마음의 본성, 즉 마음 그것 속에서도 가장 내면적인 것, 진실한 뜻에서의 지혜, 이성, 지성, 내심의 요구 등 그 인간을 가식 없이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영의 영역이며, 이러한 현상은 모두가 영의 작용이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육체는 말할 나위도 없이 눈, 귀, 코, 혀, 몸의 감각 따위의 육체적이고 표면적인 감각은 모두가 물질계 및 자연계에 근본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죽은 뒤 정령이 되어 정령계로 가거나 영이 되어 영계로 가거나 그 영은 차츰 원래의 영 그 자체로 되돌아간다. 정령이라고 할지라도 처음엔 아직 외부적 감각의 잔재나 외부적 기억을 떨치지 못하나 차츰 이에서 벗어나 원래의 영의 모습으로 돌아가 영적인 감각이 두드러지게 빼어난다.

원래의 영의 모습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르나 비근한 예를 든다면 만약 우리가 사회나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털어버리고 한밤중에 자기 방에서 명상에 잠기고 자신의 진정한 마음속을 들여다본다고 하면, 바로 그것이 우리가 원래 지니고 있던 마음의 본바탕이요, 영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 하겠다.

우리가 항간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도덕, 법률, 예의, 타인에 대한 배려, 습관 그리고 이해타산 등 그물코처럼 외면적인 것에 얽히게 되고, 혹은 지식이라고 하는 표면적인 기억에 사로잡혀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이러한 번잡한 것은 일체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차차 뿌리치고 영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정령계가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가족의 경우도 정령계에 들어간 무렵에는 서로가 얼굴도 닮아 있었다. 그러나 정령계에서 나날을 보내는 동안 인간 세계에 있었을 때의 가족의 혈연 관계 같은 외면적인 인연을 차츰 불식하고 자기 자신의 참된 영의 모습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에 이제는 먼저처럼 얼굴 생김새도 닮은 데가 없다, 그리하여 제각기 단체가 다른 영계로 들어가 마침내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이다. 비록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어린이가 아무리 같은 영계의 단체를 희망했을 지라도 정령계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갈수록 멀어져 가는 것은 뻔한 일이다.

정령들은 이렇게 해서 처음 정령계에 들어간 상태 - 이를 제1 상태라고 한다 - 로부터 차츰 영에 가까운 상태 - 제2 상태 - 로 진화하는 것이다.

그 정령은 풀밭에 앉아 하염없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으나 꽤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다. 게다가 쉴 사이 없이 무엇인가 혼자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미쳤는지도 몰라. 그렇잖으면 내 지성과 두뇌가 모조리 파괴되었나봐. 아무리 해도 세상에 있었을 때의 지식을 생각해 낼 수가 없으니 이제 나의 장래는 완전히 암흑으로 뒤덮였어. 아아.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그러자 영계의 영이 나타나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그렇게 슬퍼하오? 그대의 슬픈 까닭을 들어 충고하리다.”
이에 정령이 슬퍼하는 까닭을 설명해 들려주자 듣고 있던 영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정령은 웃고 있는 영을 원망스러운 듯이 쳐다보았으나 그래도 아직 의혹에 싸인 표정은 가시지를 않았다.

영은 말했다. “그대는 그 일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소. 그대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 시절의 표면적인 지식에 불과하오. 예컨대 학자의 지식과 같은 것은 영계에서는 모두 불순물이라고 부르오. 그대가 상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정령으로서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오. 그러한 표면적인 지식은 단 한 가지도 영계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이오. 따라서 그대가 슬퍼할 까닭이 없지 앉소?”

정령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듣고 있었으나 불현듯 느끼는 바가 있었는지 밝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말을 듣고 모든 것을 알게 되었오. 지식에 대한 기억이 쇠퇴 되면서부터 나에겐 이상한 다른 능력이 주어지는 듯한 느낌이 가끔 들었소. 이는 곧 육체적 인간이 퇴보인 동시에 영적인 성격의 진보를 의미하는 것이란 말이오? 이제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소.”
그는 요즈음 그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영계의 모습과 영계의 움직임이 때때로 보게 되었고 또한 다른 정령들의 얼굴에서 그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 것 같은 짐작이 들었으며, 때로는 인간 시절의 친구를 생각하면 그 친구의 영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는 이상한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가 인간이었을 때의 지식은 점차로 생각나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설명했다.
영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시종 미소를 짓고 듣고 있더니, 이윽고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그대는 정령으로서의 제1상태를 거쳐 제2상태로 들어간 것이오. 그대가 영계로 떠날 날은 그리 멀지 않으리라”

다음 얘기는 정령에게서 들은 것이다. 그는 어느 날 정령계의 광장 비슷한 곳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홀연히 몸에 탄환이 박힌 듯한 아픔을 느끼고 주춤 걸음을 멈췄다. 무심코 왼쪽을 바라보자 그가 세상에 있을 때, 잘 아는 사이었던 한 사나이의 정령이 그 당시와는 많이 변모한 얼굴을 하고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원한을 살만한 기억이 없으므로 이상히 여기면서 이번에는 오른쪽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왼쪽 사나이의 아내였던 정령이 역시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는 몹시 무서운 생각이 들어 곧 그 자리를 빠져 나왔는데, 뒤를 돌아보자 그 두 정령은 이 세상의 척도로 따져서 10만 미터나 떨어진 간격을 두고 아직도 눈을 뒤집어 깐 채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아직도 그들은 서로 노려보고 있으리라. 그러나 그 이유가 전혀 알 길이 없다.”

그는 방금 보고 온 해괴한 광경에 흥분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그의 말을 들어 보면, 이 부부는 세상에 있었을 때 무척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세계에서의 부부란 도시 세상의 관습, 평판, 이해타산 등 외면상의 끊기 어려운 정분과 인연 때문에 맺어지고는 있으나, 마음속으로는 서로 미워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정령계에 들어선 당초에는 아직도 그러한 인간계의 기억이 남아 있어 정령계에 와서도 서로 같은 곳에 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정령계 제2상태로 들어갈 무렵에는 두 사람의 영적인 본성이 종래의 외면상의 본성에서 벗어나 감추고 참던 미움이 노골적으로 들어난다. 아미 이 부부의 경우도 그런 예가 아닌가 한다. 하여간 이러한 예는 정령계에서는 그다지 신기한 예가 못된다.

이러한 예는 그 영적 본성이 흉악한 정령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인간 세계에서의 타산이나 법률에 얽매이지 않는 탓인지 제2상태로 들어갈 무렵이면 흔히 이승에서의 흉악범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흉악해져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뒤로 미루기로 한다.

정령계에서 영계로.
정령계에서 영계로 가는 길목은 참으로 기괴한 현상이 기다리고 있다. 나 자신이 경험한 바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 날은 인간 세계의 표현을 빌린다면 산들바람이 부는 화창한 봄날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정령계에 있는 어느 들녘의 나무 그늘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들판과 그곳에 있는 정령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상도 못할 기묘한 생각이 들게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바로 화창한 날씨가 무르익을 때였다.

갑자기 나의 시야에서 들판도 정령들도 그 모두가 순식간에 사라져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어디서 광대한 정령계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산봉우리의 연봉(連峰)이 어느 때보다 무서울 정도로 뚜렷하게 시야 가득히 들어와 박혔다. 그리고 그 산맥은 평소에 보던 것과는 달리 무척이나 가깝게 보였으며, 마치 산봉우리들이 사방에서 발걸음을 맞추어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나는 “산봉우리 틈에 눌려 죽는다!”고 생각했다.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산맥 가운데서도 뛰어나게 높이 솟은 두 봉우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좌우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문짝이 좌우로 조금씩 열리는 형상이었다. 다음 순간 그 곳에 산맥 너머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저런 산이 움직이다니?” 나는 목이 바짝 말라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나는 기절을 했는지 혹은 정령으로 죽었음이 분명했다. 흡사 이 세상에 육체를 가진 인간이 죽듯이...... . 그 뒤로는 아무 것도 몰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나에게는 몇 만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주위가 온통 붉은 흙처럼 적갈색으로 싸여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눈을 뜨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간신히 기억을 더듬어 움직이는 산과 산맥 사이에 길이 열렸던 으스스한 광경을 생각해 냈다. 그런 뒤로 현재까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일들이었다.
...... 나는 그 산맥 사이에 있는 거대한 통로를 통과한 성싶다. 웬일인지 내 몸 전체가 공중에 떠올라 어떤 방향으로 비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 비행 속도는 매우 느린 것 같기도 했고 또 반대로 맹렬한 속도로 날아간 것 같기도 하였다.
처음 나는 큰 강 위를 날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강은 동양의 성스러운 갠지스 강이나 중국의 양자강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은 강폭이었고 물줄기는 유유히 흐르고 있는 듯 했다.

강 위를 지나자 눈 아래에 넓은 바다가 보였다. 바다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아니 상상도 못할 짐승과 물고기가 눈에 띄었다. 바다 위를 날으며 나는 내 자신이 가는 방향 저쪽 캄캄한 하늘에 반짝이는 하나의 조그마한 별과 같은 것을 보았다. 바다 위를 한동안 날았을 때 조금 전까지도 작게 빛나던 별이 느닷없이 거대한 불빛의 덩어리가 되어 나를 불살라 버리려는 것을 느끼고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나는 여기서 또 한번 기절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적갈색의 세계에서 두렵긴 했지만 눈을 떠보았다. "나는 살아있지. 틀림없이 살아있구나!" 이것이 내가 최초로 느낀 감회였다. 눈을 뜬 뒤에 비로소 적갈색에 휩싸인 듯했던 느낌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내 앞에 눈익은 정령계의 광경이란 흔적도 없었으며 보이는 것은 끝 간데를 알 수 없는 적갈색의 광막한 세계 - 그것은 사막 같기도 했으나 분명히 사막과는 다른 것이었다. - 가 펼쳐져 있고 나 홀로 그 어슴프레한 공간에 서 있었다. 이 세계에는 전혀 아무런 생명도 존재하지 않는 듯 그 흔적을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다. 그야말로 영원한 죽음의 세계였다.

그러나 이윽고 묘한 일이 일어나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적갈색으로 뒤덮힌 죽음의 사막 같은 광막한 세계 저편에 희미한 빛을 발하는 태양 비슷한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만 이 태양이 뜬 높이가 나의 가슴 높이 밖에는 되지 않을 정도여서 이상야릇한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이 태양의 희미한 빛을 통해서 보니, 사막의 끝인 시계(視界)선상에 모나고 딱딱한 바위가 드러난 산들이 보였고, 그 산들의 주위에는 고대 이집트의 벽화나 피라밋 내부 현실의 벽에 그려져 있는 것과 같은 전설적인 기사(騎士)라든가 사람들 그리고 환상의 세계에서나 볼 수 있는 동물 비슷한 것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공중을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내가 영계 - 이곳이 영계라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지만 - 에 들어가 최초로 영의 소리를 들은 것은 이 때였다. “그대는 영원한 영이다. 여기는 영계이다” 나는 그 소리가 아득히 먼 사막 저쪽에 보이는 바위산으로부터 들려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소리는 되풀이하여 들려왔다 “그대는 이제 영원한 영이다. 여기는 영계이니라” 그러자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는 사람의 모습을 한 하나의 그림자처럼 희미한 것이 나를 향하여 서 있었다. 그 순간의 놀라움이 어떠했는가는 상상에 맡긴다. 나의 기억은 놀라움 속에서 소용돌이쳐 주마등처럼 회전하기 시작했다.

죽음의 사막과도 같은 적갈색의 광막한 세계 그리고 태양처럼 생긴 광채의 출현, 사막의 지평선에 늘어선 험한 바위산, 전설에 나올 듯한 인물이나 동물의 움직임 게다가 이제는 이상한 소리와 느닷없이 나타난 그 소리의 임자......... . 내 마음은 잇달아 벌어진 기묘한 사건의 연속으로 압도당하고 말았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러한 사건과 주위의 상황이 지닌 의미를 알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의미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얼핏 깨달았다. 험한 바위산과 환상 속의 인물이나 동물들 그리고 죽음의 사막 같은 세계마저도 어느새 나의 시야에서 사라져 없어진 것이다. 나는 무엇인가 알아내려고 하던 노력을 잠시 그치고, 앞서 나타난 소리의 임자에게 이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는 아직 영계에 익숙하지 않았소. 영계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얼마든지 있소. 그러나 머지않아 영계에 익숙해지리라.” 그 영의 말은 나의 놀라움이나 흥분 따위와는 관계없는 듯이 차분하였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또다시 아까 보던 광경이 시야에 나타났다.

이상은 처음으로 영계에 갔을 때의 경험을 그대로 말한 것이다. 나는 그 뒤 다른 영들에게 들은 바, 어느 정령이라도 처음으로 영이 되어 영계로 갈 때에 겪은 일은 매우 사소한 점을 빼 놓고는 대략 나의 경험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 경험은 모든 정령이 영계로 들어갈 때 다 같이 겪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내가 처음 영계를 경험할 때 만난 영계에서 들은 영계의 예비지식에 관한 대략을 다음에 소개함으로써 영의 안내를 가름할까 한다. 앞서 말한 그 영은 대체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우선 영계의 태양 - 그는 이에 대비해서 이 세상의 태양을 자연계의 태양이라고 말했다. - 아래에 존재하는 영원한 세계가 영계라는 것. 그리고 그 태양은 바로 내가 처음 보았던 가슴 높이 밖에는 안 되는 태양이 그것이라는 것이었다. 영계의 태양은 영계의 전체에 비치어 태양처럼 빛과 열을 뿜어서 생명을 유지시킬 뿐 아니라 자연계의 태양에서는 볼 수 없는 영류(靈流)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수한 흐름을 영계에 방사한다는 것이다. 또한 영계가 이 세상과 특히 다른 점은 표상(表像)의 세계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불가사의한 체험도 표상의 세계인 영계에서는 극히 평범한 일상사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의 설명은 계속 된다.

먼저 내가 최초로 본 적갈색의 사막과 같은 세계라든가 아득히 보이던 바위산, 환상 속에 나오는 듯한 인물과 동물들은 어느 것이나 내 스스로가 무의식중에 그것을 보고자 희망했기 때문에 보이게 된 것이며, 그것은 현실에 존재하는 것이긴 하지만 보고자 하는 의사가 있고 볼 수 있는 능력 - 그는 이를 영시력(靈視力)이라고 했다 - 이 없는 영에게는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내 눈에도 사막 비슷한 세계 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다음에 바위산 들이 보이게 된 것은 조금이나마 나의 영시력이 영계에 다소 익숙해졌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알려 주었다. 또 도중에 이러한 광경이 한번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내가 다른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아직 발달하지 못한 영시력이 흐려져서 그렇게 된 것이니, 별로 이상히 생각할 것은 없으며, 마지막으로 이 광경을 다시금 보게 된 것은 실상 자기가 보게 해준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그 까닭을 말해 주었다.
영은 상대방 영의 머리 속에 있는 생각, 상념(想念)을 마치 자기의 생각처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그는 내가 보고 있었던 광경을 자기 시야에 복사해 둔 것이다.

그리고 나의 시야에서 이러한 여러 가지 광경이 사라진 뒤에는 또다시 자기의 시야에 간직하였던 광경을 나의 상념 속에 투사하여 나로 하여금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라고 말하였다.
거기다가 그는 영계의 태양만은 변함없이 나의 시야를 떠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것은 영계의 태양만은 다른 사물과 다른 존재이어서 표상의 대상이 아니라 모든 영계에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의 설명 전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의 설명을 듣고 있을 때엔 반쯤은 알 듯 했고, 반쯤은 이해하지 못한 채 머릿속이 혼란하고 초조해질 뿐이었다. 나는 이 일이 있는 뒤 바야흐로 영계의 불가사의한 수수께끼 속에 깊이 말려들게 된 셈인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에서 소개하기로 한다.

2. 영계의 모든 것.


영계란 어떤 세계인가?


내가 최초로 영계에 들어간 이튿날 아침이었다, 어디서인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 잠을 깼다 “그대 새로운 영이여, 새로운 영이여....... .” 그 목소리는 어제 영계에 들어서서 처음 들었던 목소리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득히 먼 곳에서 들려 왔었다. 나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인공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어제와 같았다. “새로운 영이여! 눈을 떴는가?” 별안간 귓전을 울리는 큰 소리가 떨어지자 난데없이 그 영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는 그러한 갑작스런 출현이 비위에 거슬려 쏘아붙였다.
“당신은 내가 신참자(新參者)라고 너무 놀리지 마시오. 당신은 어찌하여 처음엔 먼 목소리로 멀리 있는 것처럼 속이고, 다음에는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나곤 하니, 장난이 심하지 않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그토록 화를 낼 것은 없소. 나는 사실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이오. 비록 지금 당신의 눈앞에 서 있긴 하나, 방금 아득히 먼 곳에서 당신에게 말을 건 것은 사실이오. 나는 방금 수천억 킬로나 되는 먼 거리에서 급히 달려 온 것이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한 내 눈에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 따위는 늘여놓지 말라고 비난하는 낌새를 보았는지, 이렇게 말하며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했다. “멀지 않아서 이 이상한 일을 알게 될 것이오. 지금은 당신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겠소. 그럼 이제부터 당신을 영계의 여러 곳으로 안내하리다.”
어느새 그와 나는 영계의 큰 산봉우리 위에 서 있었다. 그가 이 곳으로 데려다 준 것이다. 나는 처음 보는 영계의 장관에 숨을 죽이고 서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면 눈 아래 펼쳐진 광경을 소개하기로 한다.
그것은 참으로 웅장한 경치였다. 내가 서 있는 왼쪽 저 멀리,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은 빙산은 줄지어 시계(視界)를 가로막고 버티고 있었으며, 그 산봉우리의 높이라든가 한없이 뻗어나간 산맥의 광경에서는 내가 일찌기 상상조차 못했던 거대하고도 장엄한 것이었다. 이 줄지은 산봉우리가 왼쪽으로 볼 수 있는 시계에서 가장 먼 경치었는데, 그 곳까지 거리는 내가 인간계에서 쳐다보던 반짝이는 별 보다도 훨씬 먼 거리라고 짐작 되었다.
이 연봉은 왼쪽에서 시작해서 시계의 중앙으로 뻗어 내가 바라보는 정면에서 끊어졌다. 그리고 그 산맥이 끝난 자리에서 훨씬 더 멀리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바다와 같은 것이 퍼져 있었으며, 어디까지 널려있는지 더 멀리는 시력의 한계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바다 오른쪽으로는 사막인양 광막한 대지가 펼쳐지고, 그 사막의 한가운데에는 바위산이 혹은 높게 혹은 낮게 옹기종기 천태만상으로 솟아 있었다.
사막이 나의 시야 정면에서 오른쪽까지의 중간에서 끝나자 다시 그 곳에서부터는 하늘을 찌를 듯한 험한 산이 솟아 있었다. 하지만 이 산들의 높이는 아까 말한 얼음산처럼 높았으나, 한결 부드러운 윤곽이 보이고 있었다. 그 산에는 인간계의 산처럼 나무나 풀이 자라고 있음인지 녹색을 띠고 있었다.
이상이 나의 시야에 들어온 경치였으나 나와 이들 경치 사이에는 혹은 멀리 혹은 가까이 별별 모양의 사물을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곳이 영들이 사는 세계였다.
그곳에는 강도 언덕도 조그마한 산도 그리고 초원이나 계곡도 있었다. 숲이 우거진 지역도 있고 붉은 흙이 보이는 곳도 있었으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있었다. 더구나 거리처럼 보이는 곳도 또 마을처럼 보이는 곳도 있어 거기에는 영들의 주택이 즐비하게 혹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도 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영들의 모습도 얼마든지 볼 수가 있었다.
수많은 영들의 모습을 보게 되자 별안간 내 마음에는 그때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의문이 생겼다. “영들이 형체를 지니고 있다니 과연 사실인가, 내가 환상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불현듯 솟구치는 이러한 의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것은 참으로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 어엿한 영이 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제부터 나를 이곳에 안내해준 영도 내 눈으로 역력히 보아 온 터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어 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묻기도 전에 네 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품고 있는 의심은 당연한 것이요, 그러나 당신이 보아온 사실은 모두가 진실 뿐 당신의 환상의 소치는 아니오. 우리들 영은 모두가 인간과 동일한 형체를 갖추고 있으며, 이는 조금도 이상한 현상이 아니오. 새로운 영인 당신이 이런 의문을 갖게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간 세계에 있었을 때 잘못된 생각을 해 왔기 때문이오,”
그는 이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영은 인간과 같은 형체를 지니고 있다. 다만 영계는 인간계에서처럼 물질계 속에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영이 지닌 형체는 인간의 그것처럼 물질적인 육체의 형상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영을 마치 공기나 에테르 도는 정기(精氣)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엉뚱한 생각이다. 이 일에 대해서라면, 당신 역시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또한 영은 인간의 육체가 가진 기능인 눈, 귀, 코와 같은 감각도 다 갖추었고, 입이나 혀를 통해 말을 할 수 있는 점도 같다는 것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설명하자 그는 다시 말을 이어 내가 정령계의 항목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세상 사람들을 잘못 깨우치고 있는 인간 세계의 학자나, 교회 관계자의 영에 대한 인식 부족을 나무랐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지금 내가 말한 것 외에도 영에게는 영적 감각과 능력이라는 것이 갖추어져 있으며, 이는 인간에게는 없는 것이오. 그렇지만 이 마당에서 더는 얘기하지 않겠소. 당신이 영계에 익숙해짐에 따라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니까.”
그는 이렇게 말을 맺자 미소를 지으며 이왕이면 마저 얘기해 주겠다는 듯이, 앞서 그가 무한히 먼 곳으로부터 느닷없이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던 일도 실상은 영능력(靈能力)의 하나이며, 영계에서는 일상다반사라고 변명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에도 줄곧 눈 아래에서 펼쳐지는 경치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차츰 알게 된 것은 마치 인간계의 도시나 거리 그리고 촌락처럼 영들이 이리저리 하나의 집단을 지어서 생활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같은 시가지나 마을 안에 있는 영들의 모습이 어딘가 인간 세계의 그것과 공통된 특징을 지닌 듯이 보였고, 또한 같은 시가지나 마을에 사는 영끼리 주고받는 대화의 친밀성에 비해 도시나 마을 경계에서 목격된 각기 다른 거리나 마을의 영들 사이가 그다지 친밀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만 하더라도, 도시와 촌락 사이에는 눈에 보이게 큰 차이가 드러남을 보았기 까닭이다.
나는 그를 따라 대 여섯 군데 도시와 마을 - 이것이 영계의 단체라는 것을 후에 알았다. - 을 구경했다. 거리는 이 세상의 거리와 비슷했으나 다른 점이 있다고 하면, 하나의 도시면 도시. 마을이면 마을이 제각기 전체의 주택과 동일하다는 것, 즉 마을 전체가 석조면 석조, 목조면 목조, 토벽이면 토벽이라는 식으로 같은 재료를 썼고 게다가 같은 구조로 지어져 있는 점이다.
같은 거리나 마을에 사는 영의 얼굴 모습이나 성격에는 설사 생김새가 다르다고 해도 전원이 어딘가 모르게 공통된 성질을 갖고 있으며, 인간세계의 어버이와 아들 그리고 형제 자매 보다도 친밀성이 그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특히 눈에 띤 것은 어는 거리나 마을이고 간에 원형으로 널려 있어 그 중심부에는 그곳에 가장 권위도 있고 덕이 높은 듯한 영이 살고 있으며, 중심부에서 원의 바깥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질이 떨어지는 듯이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면 거리나 마을을 거닐고 있을 때 일어난 사소한 사건을 두 가지 정도 소개하기로 한다.
어느 거리를 찾아갔을 때였다. 나는 그 거리에 들어서기 전부터 웬일인지 이상야릇하게도 내 고향을 찾는 기분이었다. 거리에 들어서자 영들이 집안에서 혹은 거리 모퉁이에서 쏟아져 나와 나를 둘러싸는데, 영들의 용모나 모습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어느 얼굴을 뜯어보아도 내가 이미 몇 천 년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친숙한 얼굴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한 나를 보고 아주 그리웠던 사람을 만난 듯이 반겨주었다. 어느 얼굴에도 환영의 기쁨이 넘쳐 있었다. 나는 마냥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향이 그리워 몇 만 년 만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또 하나의 사건은 다른 마을에서의 일이다. 그는 나를 안내해서 마을 안을 걷고 있었는데, 안면이 있는 영을 만났는지 어느 영과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어느 영의 뒤로 돌아가 그 어깨 너머로 마을의 상황을 구경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의 시선이 날카롭게 나를 쏘아 보았다. 다음 순간 나는 영문을 모른 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는 내 손을 잡아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영의 등 뒤에 서는 행위는 영계에서는 가장 무례한 짓이요. 앞으로는 주의하시오.”
영계의 거리와 마을을 두루 돌아보고 나서 우리는 다시 먼저 올랐던 산꼭대기로 되돌아왔다. 산 아래와 굽어보이는 거리와 마을을 가리키면서 그는 영계의 단체에 관한 설명을 대충 다음과 같이 늘어놓았다.
영계에는 많은 단체가 있고 그들은 하나하나 거리와 마을 단위로 형성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영계에 있는 단체의 수는 아마도 수천 억 아니 훨씬 더 될지도 모른다. 영계에 이렇게 많은 단체가 있게 된 것은 영이 되어 육체의 속박을 벗어난 뒤의 인간이 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서 참된 영적 성격을 되찾은 결과인 것이다. 이는 영원한 삶을 보내게 될 영계에서는 자기를 속여서는 안 되고 또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서지 않으면 삶을 이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본래의 성격이 서로 맞는 자라야 함께 모여서 단체를 이루고 생활해 나가는 것이므로, 성격의 다양함에 따라 무수한 단체가 생기게 마련이다. 한 구역의 거리나 마을이 꼭 같은 지음새의 집을 가졌고,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영의 성격이 서로 같기 때문이다.
이렇게 풀이한 그는 나의 의심을 풀어 주려는 듯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영들이 원형을 이루고 사는 것은 영계의 질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 중심에 살고 있는 영은 중심영이라고 이름 하여 혼자서 단체의 질서를 유지하는 구실을 맡고 있으며, 권위와 힘도 지니고 있다. 또한 내가 어느 한 단체에서 환영을 받고 나 자신도 고향에 돌아 온 듯한 따스함을 느낀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 나는 바로 그 단체에 소속되어야할 영으로서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영의 등 뒤로 다가서는 것이 무례한 짓이라는 이상한 영계의 예절에 대해서는, 그러한 짓을 하면 앞의 영이 영계의 태양으로부터 받은 영류(靈流)의 흐름을 흩뜨리며, 그 영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 까닭은 영류란 것이 각 영들의 얼굴로 흘러들어, 등 뒤로 흘러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설명하자 그는 영류라는 말에서 생각되었는지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영계에서 알아둬야 할 일이 많소. 아까 말한 중심령의 힘이라든가 이제 말한 영류 얘기 따위는 모두가 영계의 태양을 모르고서는 올바른 이해를 할 도리가 없소. 언젠가 나는 영계의 태양에 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오. 그러나 그 보다 앞서 당신에게 또 보여줄 것이 있소”
“저쪽에서 수평의 막(幕)과 같은 것이 보이지 않소?”
그는 먼 하늘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나는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는 하늘 뿐이었다. 그야말로 공(空)이었다.
“당신의 영적 시력이 아직 트이지 않았소. 내가 표상(表像)으로써 당신에게 보여 주리다”
그렇게 말하자 하늘 한 구석에 아주 엷은 공기의 막과 같은 것이 수평으로 떠 있고, 그 위쪽으로 우리가 있는 세계와 같은 세계가 또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흡사 그것은 하늘 가운데 둥둥 떠 있는 세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내가 놀라는 것을 모른 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말을 이었다.
“저 세계에서 당신은 이 세계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오. 또 수많은 영의 모습과 거리와 들도 그리고 산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세계도 영계입니다. 영계에는 세 개의 세계가 있으니, 이제부터 그것을 가르쳐 주겠소.”
그의 말을 따라 그 세계의 온갖 것을 내 눈앞에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의 놀라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가 그 세계 위쪽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기 때문이다. “저 세계의 공중에서도 엷은 하늘의 막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 막의 위쪽을 다시 한번 보시오.”
놀랍게도 공중(空中) 세계의 위쪽에도 똑같은 공기의 막이 수평으로 끝없이 이어졌고, 그 위에 또 다른 세계, 즉 들과 산 그리고 바다와 촌락이, 또 영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여기까지 보여준 후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영계에서는 세 개의 세계, 즉 상, 중, 하의 3세계(三世界)가 있다. 3세계는 영계라는 점에서는 모두 똑 같으나 세 영계는 사는 영의 성질은 영의 인격적 높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상 세계(上 世界)에 사는 영은 영으로서 마음의 창문이 가장 활짝 열려있고, 중 세계는 그 다음이고, 하 세계는 중 세계보다도 열등하다. 이 영의 성질의 차이에 따라 3세계의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자세한 것은 스스로 직접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광경을 본 일은 없었다. 그곳은 상 세계인데, 그를 따라 거대한 궁전과 궁전을 둘러싼 거리에 와 있었다.
이 궁전은 이 세상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리만큼 웅장함과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이 궁전과 비교할 만한 건조물은 과연 이 세상에 찾아볼 수 있을까? 지붕은 금(金)기와로 이은 것 같이 찬란하고, 벽과 바닥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어 졌으며, 궁전 안의 방들과 복도 등의 장식에 이르기까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훌륭한 것들이었다.
궁전의 남쪽에는 낙원이라고 생각되는 정원이 있고, 그 정원에 있는 모든 것들도 궁전처럼 휘황찬란한 것뿐이었다. 정원 안에는 은과 같은 나무에 금처럼 빛나는 영매가 열려 있기도 하였으며, 꽃들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은 흡사 천국에 온 것 같은 황홀한 것이었다.
궁전 주위의 거리에는 영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거리의 영들이 사는 집들도 궁전만큼이나 훌륭한 것들이었다. 주택에는 방이 많았고 안방과 침실 등도 따로 있었다. 주택 주위를 둘러싼 정원은 꽃이 만발하였고 수목이 울창했으며, 논밭도 있었다. 영들의 주택은 도시의 거리처럼 질서 정연하게 배열되었고 길도 정리를 잘하여 아름다운 거리를 조성하고 있었다.
영들의 입은 옷 역시 새하얀 눈처럼 빛나는 것이었다.
궁전도 거리도 빛이 가득 차 밝았으며 영들의 얼굴도 행복에 넘쳐 있었고, 그들의 눈에는 높은 이성과 진리를 터득한 대오(大悟)를 나타내는 빛이 깃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에 취해 넋을 잃고 있을 때 그는 말했다.
영계의 3세계 중 상 세계(上 世界)는 이와 같이 아름답고 대오(大悟)로 빛나는 세계이다. 상 세계의 영들은 이와 같이 아름다운 세계 안에서 영원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삶은 진실로 천국의 행복에 가득 차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의 즐거움을 즐기는 방법은 지상에 있는 인간과 다르다. 인간들은 이와 같은 세계에서 행복한 삶을 보내게 될 때 무엇보다도 그 눈을 즐겁게 하려고 한다. 그러나 영들은 눈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물에 의해서 표상되는 영의 마음을 즐기는 것이다.
내가 그를 따라 다니며 터득한 3세계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영계의 중(中), 하(下) 세계에 오자 궁전을 비롯하여 거리와 주택 등 모든 것들은 상 세계의 그것들만큼 찬란하지 않았으며, 영들이 느끼는 행복도 그에 상응(相應)하였고 태양빛조차도 상 세계만큼 밝지 못하였다. 상, 중, 하 3세계는 공기의 막(幕)과 같은 것으로 막혀 있어서 영들끼리의 교류나 교통이 없고, 이 점은 각각 그 사이에 교류하고 교통하는 같은 세계 안의 단체끼리의 경우와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영계의 태양에 대해 말하겠소. 태양은 우리들에게 신과도 같은 존재이며, 영계의 모든 것의 기초는 태양이오. 영계는 태양이 있으므로 해서 존재 가능하니 나는 이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하겠소.”
내가 처음으로 영계에 들어갔을 때, 가슴정도의 높이에 떠 있었으며 움직이지 않는 태양을 보고 놀란 것은 앞에서 말한 바가 있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생명의 원천(源泉)과 이어져야만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이며,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소. 원천과 연결되지 못하고는 생명은 있을 수 없으며, 영계의 영은 모두가 태양과 연결되어 영원한 삶을 향유하는 것이오.”
그는 이렇게 강조한 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영계의 태양은 그 빛이 영계를 비추어 사물을 보게 하고, 또 사물을 생각하는 이성의 기초가 되고있다. 그 열은 영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게 하고 있으며, 영류(靈流)라는 흐름은 영계 전체에 보내어 이것이 영계의 질서를 지키며, 영의 영적 능력의 기초가 되게 하고 있다. 이 영류야 말로 영계와 자연계(이 세상)의 성질을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드는 근원(根源)이다. 영류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직접 영류와 간접 영류이다. 직접 영류는 태양으로부터 각 세계, 각 단체의 영에 주입되어 영의 능력의 기초가 되며, 간접 영류는 태양으로부터 보내진 후 상 세계를 거쳐 중 세계로, 중 세계를 거쳐 하 세계로, 흘러 들어간다. 또 각 세계의 영은 각 세계에 흘러 들어온 간접 영류도 직접 영류와 함께 받아들인다. 간접 영류는 이와 같이 영계 전체의 각 세계, 즉 각 단체와 모든 개개의 영을 연결하여 영계의 질서를 유지한다. 만약 간접 영류가 없으면 영계는 산산이 분해 되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영계의 태양은 영의 생명과 영계의 생명을 지키는 기초이다.

영의 상념의 교류.
영계의 들판을 걷고 있던 그 영은 자기의 심장 속을 무엇이 툭툭 두들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 내부에 다른 생물이 있을 리 없는데, 마치 작은 생물이 그 곳을 손끝으로 툭툭 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생물은 그에게 무언가 말을 걸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는 그렇게 느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레를 휘둘러본 그는 멀리 떨어진 강기슭에 어딘가 기억이 있는 한 사람의 영의 모습을 본 듯 했으나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분명히 알 수는 없었다.
“나를 부르는 자가 저쪽 강가에 있는 저 사람일까?”
그는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잠시 저편 강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먼저 보았던 얼굴이 점점 뚜렷하게 나타나 얼굴을 잘 볼 수가 있었다.
“당신은.... .”
그는 놀라움과 그리움으로 강가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강가의 사람은 그가 죽어 영계에 들어오기 30년 전에 죽은 옛 친구였다. 이들 두 영은 서로의 얼굴을 열심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서로 간에 상대방 영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게 되었다
그는 상대방의 영이 생각하고 있는 일이 그 영의 중심부로부터 조그만 덩어리가 되어 몸속에서 올라가 그것이 얼굴에 나타나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다.
“당신은 어제 이 영계에 왔소? 어느 단체에 속해 있소? 또 그 단체의 영적 성질은 어떻소?” 라고 묻고 있었다. 그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 대답은 똑 같이 그의 얼굴에 나타나 상대방의 영에 전달된 것 같았다. 상대방의 얼굴에서 그것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 단체는 나도 알고 있소. 우리의 단체와 성질이 비슷한데 당신은 영계에 얼마나 익숙하오?” 상대방 영의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상대방 영의 머리 위에는 지금까지 전혀 본적이 없는 풍경이 떠올랐다. 넓은 사막과 그 안을 흐르는 구불구불한 강, 강의 상류에는 산들이 이어져 있었고, 강은 산 사이로 들어가 계곡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그 계곡엔 많은 영들이 살고 있었다. 상대방 영의 얼굴은 계속하여 그에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의 단체 표상(表像)을 나에게 보여 주시오.” 그는 이렇게 되물었다.
“표상? 난 그 뜻을 잘 이해할 수가 없으니,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 주시오.”
대답이 돌아왔다. “당신은 내 머리 위에 보인 표상을 보지 않았소.? 표상이란 바로 그것이요. 당신의 표상은 내게 보이지 않소. 당신은 아직 표상을 나타내는 것을 배우지 않았소.?”
비로소 상대방 머리 위에 보인 상(像)이 표상이었음을 알았다. 이 표상은 그가 어떠한 곳에 있는가를 알려 준 것이었다. 두 영은 상념의 교류를 계속하였다. 교류가 끝나자 그의 시야에서 상대방의 영은 사라지고 오직 강과 하늘만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상념(想念)의 교류라든가 표상이라는 말을 설명도 하지 않고 몇 번 썼다. 그러면 이제 그 말을 설명해 보기로 한다.
영계에서는 상념의 교류는 얼굴만 서로 바라보는 것과 말이나 글자를 쓰는 것 등이 있는데, 간단한 일은 얼굴을 보는 상념의 교류만으로 통할 수가 있는 것이 영의 세계이다.
상념의 교류는 이 경우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한 사람의 영 - 이 경우에는 그의 상대방의 영 - 이 다른 영과 상념의 교류를 하고 싶으면 그 영의 얼굴을 생각해 내면 그것만으로 상대방의 영의 얼굴이 눈앞에 보이게 된다. 그리고 상념의 교류를 요구받은 상대방은 그가 느껴지는 것과 같은 어떠한 부르는 소리 - 그는 심장을 두드리는 것으로 알았다 - 를 느끼고 교류의 요구에 응한다. 상념은 영의 표정 위에 보이는 형태를 취하여 나타나게 된다.
상념을 교류하는 보조수단으로 표상이 있다. 그것을 나타내는 영에게는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머리 위에 훨씬 더 뚜렷한 이미지가 나타나게 된다. 이것과 얼굴 표정에 의한 상념의 전달이란 두 가지 방법에 의해서 영은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알 수가 있다.

무한히 연장되는 영의 상념.
그 영은 그 때 시야에 있는 커다란 숲의 흔들림과 동시에 아지랑이와 같이 투시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해버린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숲의 저쪽에 하나의 광경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것을 이 세상의 것으로 비교한다면 몇 천 년이나 지난 고대식의 장대한 궁전과 이집트의 피라밋을 몇 십 배로 크게 한 것 같은 건축물이 그 궁전의 주위를 둘러싸듯 서 있는 광경이었다. 궁전의 입구는 하늘까지 닿을 듯한 큰문이 닫혀있었다.
어떻든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숲이 갑자기 투명한 공기의 막과 같은 것으로 변하고, 그 막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게 된 것은 웬일일까?.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어느 영의 일이 떠올라 그 영과 상념의 교류를 하려 하였다.
그 영과는 정령계에 있었던 때 이래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하였다. 그것은 2천 년이나 지난 옛날의 일이었는데,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러나 상념의 교류를 원하는 그의 희망에 비하여 그 영의 얼굴은 쉽사리 그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얼마 후 자기의 내적 능력에 의해 상념의 연장을 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얼마 후 그의 시야를 가리고 있던 숲이 아지랑이처럼 되어, 앞에서 말한 광경이 그의 눈에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곳에서도 상념의 교류를 원하던 그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한번 내적인 영능력의 강화에 힘썼다.
견고하게 보였던 입구의 문이 이번에는 먼저 번 숲처럼 흔들흔들 흔들리더니 반투명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반투명이 된 때문에 겹쳐서 그 친구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더니 그것이 차차 뚜렷한 것이 되어 갔다. 그 친구도 그가 상념의 교류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 차렸는지, 그의 얼굴을 좀더 잘 보려고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는 친구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물었다. “당신 요즈음 어떻게 지내시오? 또 지금 무엇을 하고 있소?”
그러자 물음에 대답을 하려는 듯이 그의 몸 안에 몇 개의 물체와 같은 것이 들어오는 것을 느꼈으며, 이윽고 그는 물체들을 몸 안에서 확실한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그 영상은 영계의 문자를 빈틈없이 써넣은 두꺼운 장부와 그 단체의 호적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가 알고자 원했던 것을 알기에는 너무나 부족했기에 마음속으로 다시 그 친구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궁전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궁전 바깥의 벽도 안에 있는 방의 벽도 모두 반투명이 되었다. 그는 궁전 안에 있는 모든 방안까지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친구가 거처하는 방은 특히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방안에는 그의 몸 안으로 전에 보내졌던 장부와 모래상자와 똑같은 것이 방안에 꽉 차 있었으며, 그 친구 이외에도 수십 명의 영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이 영들은 무엇인가 그림자와 같은 존재로 얼굴의 외형만 보일 뿐 얼굴 생김생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 수 없고 매끈한 공처럼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친구인 영의 머리 위에는 숫자와 같은 것이 춤추기도 하고 뛰어오르기도 하였다. 동시에 방안에 쌓여 있는 상자속의 수십 알의 모래가 번쩍번쩍 빛나면서 상자 밖으로 뛰어나와 친구인 영의 머리 위에서 빛나면서 뛰어오르고 있었다. 또 흡사 이것과 호응하듯이 그의 몸 안으로 전부터 보내져 있었던 상자 속의 모래알 몇 알도 그의 몸 안에서 빛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음 모래알은 그가 인간이었을 때에 알았던 사람들의 얼굴이나 역사상의 위대한 인물이 되어 그를 놀라게 했다. 이 빛나는 모래알은 전부 친구인 영과 같은 단체에 속하는 영 중에서도 그와 무엇인가 관계가 깊은 영들이었다. 계속해서 통신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상념 교류가 끝나자 궁전 안의 방도 친구도 장부도 그리고 모래 상자도 모두 사라지고, 그의 시야 멀리는 또다시 최초에 그의 시야를 가로 막고 있던 숲이 나타났고 그 역시 먼저 있던 장소에 되돌아와 있음을 알아 차렸다.
인간에게는 벽 너머를 투사하거나 물건에 손을 대지 않고도 찬 것 뜨거운 곳을 느끼며, 귀를 사용하지 않고도 소리를 듣거나, 더구나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표상으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이러한 일은 흔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영에게도 눈이나 귀가 있으므로 직접 보든가 듣든가 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할 때는 영은 내시력(內視力)이라고 하는 영 특유의 능력을 사용해서 보거나 듣거나 하게 된다.
지금 든 예에서, 그가 맨 처음에 상념의 교류를 이루지 못했던 것은 친구의 영이 숲 저쪽에 더구나 궁전 안에 있었기 때문인데, 그는 곧 이것을 깨닫고 내적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친구로부터의 상념이 그의 몸 안으로 뛰어 들어온 것은 그가 내적 능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영계에서는 이런 일을 그렇게도 쉽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영계에는 영류(靈流)라고 하는 인간계에는 없는 흐름이 있어서 영계 전체를 그 속에 포함 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영상은 이 영류를 타고 영류 안 어디에나 옮겨 간다. 영류는 물론 산, 바위, 궁전의 벽과 문등 모든 것을 자유롭게 통과한다.
영계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상념의 교류를 하고 있는 당사자인 영 이외의 제삼자에게 영류를 타고 옮겨지는 영상이 눈에 들어오는 일이 극히 드물게 있다. 나 자신도 단 한번 뿐이긴 하나 하늘을 날아가는 대 산맥을 보고 몹시 놀랐던 일이 있다. 이것은 대 산맥이 날아간 것이 아니라 영류를 타고 옮겨지는 영상이 나의 눈에 보였던 것이다.

영계 생활의 여러 가지.
그 두 사람의 영은 어느 쪽이나 이 세상에 살고 있었을 때 매우 유명했던 인물이었다. 한 사람은 덕망이 높은 목사였고, 다른 사람은 용감한 장군이었다.
목사는 영계에서도 이 세상에 있었을 때와 같이 열렬히 설교를 하고 영들에게 덕(德) 있는 생활이라고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다녔다. 그는 언제나 자기의 설교를 다음과 같이 말로 시작하였다. “너희들 죄 많은 영들아.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믿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너희들은 용서를 받고 구원을 받으리라.”
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설교를 하였다.
지금 영계에 와 있는 영들은 원래 죄 많은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있었을 때에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른 올바른 생활을 보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간이었을 때에 그들은 인간의 원죄를 속죄하는 일을 게을리 했다. 그래서 이제 이 영계에 들어온 것이며 천국으로 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회계를 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므로 이제부터라도 용서해주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내가 영계에서 설교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영계에서 덕 있는 생활을 하자. 그러면 너희들도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설명하기 위해서 특히 신에 의해서 이 영계로 파견된 것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미안하게도 그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이것을 슬퍼하고 동시에 다음과 같이 위협을 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갖지 못한 자들이다. 너희가 회계하지 않는 한 반드시 죄 값을 받으리라.”
그리고 그는 죄의 내용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그것은 멀지 않아 영계에도 노아의 대홍수가 일어나 회계하지 않는 자들은 전부 영계에서 추방되고 목숨을 빼앗기리라. 또 특히 죄가 많은 영들은 그 대홍수가 있기 전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큰 바위 밑에 깔려 멸망하리라는 내용이었다.
또 그는 산맥 근처에 있는 영의 단체에게 설교하되, 사람들이 그의 설교를 따르려 하지 않을 때에는 그 산맥을 멀지 않아 그의 기도의 힘으로 무너지게 하여 영들에게 벌을 내리겠다고 영들을 위협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영계의 태양을 향해서 영류의 힘을 내게 내려 주소서, 산을 허물고 물을 넘치게 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영들에게 벌을 내려 주소서 하고 기도를 하였다.
또 한사람의 장군은 이 세상에 있었을 때에는 특히 전술에 뛰어난 전략가로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영들과 만날 때마다 어떤 공기의 물질 같은 것을 상대방 영의 마음을 향하여 쏘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 물결과도 같은 것은 상념의 교류를 할 때에 영들이 사용하는 상념 전달의 수단과 같은 것이었는데, 조금 다른 점은 이 물결이 일반 영들의 상념을 전달할 때의 느낌과는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것이었다. 나도 실제로 이 장군의 영과 만나서 이야기(상념의 교류)한 일이 있었는데 역시 기묘한 구김살과도 같은 감촉이 어딘가에 있는 것을 항상 느꼈다.
그들 두 영은 영계에서 다른 영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고 비웃음의 대상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에게 불평불만을 더욱 일으키게 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더욱더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 두 인물에 대해 좀더 자세히 말해 보기로 한다.
인간이 죽은 후에 영으로 남아서 존재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것, 즉 그 인간의 참다운 성격으로서의 영적인 마음, 영적인 인격이다. 영계에 있어서는 그 때문에 영적인 인격의 높고 낮음이라든가 참다운 뜻에서의 이성의 고저(高低)라든가 하는 것 외에는 영의 영격(靈格)을 규정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영들은 그 영의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영으로서의 영원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으로 있었을 때의 기억도 참다운 영적인 심부(深部), 즉 마음 속 깊은 곳에 새겨진 것밖에는 남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 두 영의 경우는 좀 특이한 예라고 할 수가 있다.
목사의 경우는 교회의 목사로서의 그의 입장이 인간계에 있었을 때에는 사람들에게 권위로서 통용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설교를 들었을 것이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기억이 영계에 들어온 후에도 남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인간계에 있었을 때에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기를 좋아했고, 그것이 그의 영의 깊은 곳까지 이를 정도였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영계에 들어와서도 그 기억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정령계의 설명에서 말한 것처럼 정령에 있어서까지도 인간계에 있을 때 갖고 있었던 모습을 정령들은 차차 버리고 그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데, 하물며 영계에 있어서 이와 같은 외면적인 것이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밖에도 역사상에 저명한 인물. 그들은 세상에 있을 때에는 모두 다 덕망이 높은 사람이라든가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다든가 하여 높이 평가를 받았던 사람들인데, 영들에게는 경멸을 받고 있는 예를 몇 번 들었다. 그들은 예외 없이 외면적인 지식에 사로잡혀 영적인 창을 여는 것을 거부하고 아집(我執)에 빠져있는 불행한 자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보다는 “마음이 순진하고 곧은 사람” 편이 영계에서는 훨씬 더 크게 깨닫고, 지성과 이성 면에 뛰어난 영으로서 상위의 세계로 가게 된다.
그 영은 또 같은 시냇가에 와서 그곳에 펼쳐진 풍경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그것은 전날과 같은 행동이었다. 그는 며칠 전부터 이와 같은 일과를 되풀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 앉아서 매일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일에 특별한 뜻이 있다고는 그도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여기에서 무슨 일도 하는 것도 아니고 다만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으므로 더욱 더 그랬다. 그는 틀림없이 자기 자신조차도 여기에 매일 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깨닫고 보면 자기는 또 같은 장소에 와서 같은 풍경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그러한 일과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꽤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경사가 완만한 언덕이 연달아 있었고, 그 언덕까지의 넓은 공간은 전면이 초원이었다. 들판에는 여기저기에 수목이 우거졌고 또 거대한 숲이 울창하게 무성해 있었다. 냇물은 들판을 가로질러 흘러 내려가고, 그 흘러 내려간 끝에 그가 속해있는 단체가 있었다. 그러나 이 풍경은 그에게는 이미 익숙하기보다는 이제 싫증이 난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이 곳에 오기 시작한지 닷새째가 되던 날 종전과는 약간 다른 일이 생겼다. 그렇다고 별로 큰일은 아니었다. 다만 한 사람의 영이 와서 그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 - 그것은 이 세상의 거리로는 수백 킬로는 떨어져 있었다. - 에 그와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 그 영은 또 그와 똑 같이 같은 풍경을 주시하고 있었다. 변한 것은 오직 그 뿐이었다.
다음 날도 그는 전날과 똑같이 강가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약간 놀라운 일은 전날의 영도 역시 전날과 같은 장소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동안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므로 그는 그 영에게 말을 건네 보고 싶어 졌다. 그런데 그가 말을 건네 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 것은 또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가 나타나면서 그가 싫증이 나 있는 풍경 속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가 말을 걸고 싶다고 느낀 것과 동시에 그 영도 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는지 다음 순간 그들은 수백 킬로의 거리를 순식간에 날아와 서로 가까이 다가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가 상대편 영이 있는 쪽으로 간 것도 아니고 또 상대편 영이 그의 곁으로 온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가 앉아있는 곳은 그가 지금까지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자리였고 상대편도 자리를 조금도 움직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요즈음 며칠동안 이상하게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당신이 강가에 나타나면서부터 내가 보는 풍경 속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지요. 이런 일은 전에는 결코 없었습니다. 당신은 풍경에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신(神)인가요?”
그가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풍경으로부터 받는 인상에는 상대편 영이 나타난 날부터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언덕의 형태는 전보다 둥글어졌고, 나무와 숲은 지금까지의 녹색과 달리 봄의 새싹 같은 색깔과 부드러운 감촉을 더해갔고, 태양 빛까지도 온화하게 되었다. 상대편 영도 그에게 대답을 하였다.
“나도 이상한 일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강가에서 당신을 만날 때부터 생긴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내 눈앞에 가리고 있었던 것을 떼어낸 듯한 느낌이 들더니 먼 곳에 있는 것도 명료하게 내 눈앞에 비치는 듯한 생각이 요즈음 며칠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상대편 영이 하는 말의 뜻은 그를 강가에서 본 후로 시야가 넓어져서 먼 곳에 있는 것까지도 뚜렷이 볼 수 있게 된 것은 어째서일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대편 영은 작은 조약돌 하나를 집어 들더니 그것을 보이며 말을 하였다. “ 나는 요즘 며칠간은 이 돌 속까지도 보이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이상한 일은 처음입니다. 당신은 그런 기이한 일을 생기게 한 장본인인가요? 당신이 바로 신(神)인가요?”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그들의 몸 안에 지금까지도 없었던 무엇인가가 어디에선지 날아와서 뛰어 들어온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눈에는 부드러운 빛을 내면서 조용히 빛나는 조그만 보석 같은 것이 그의 몸 안에서 여러 개 춤을 추듯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또 상대편 영은 태양의 작은 분신(分身)이 힘차게 몸 안에 빛을 내 쏘고 있는 것을 자신의 몸 안에서 보았다.
상대편 영은 먼저 집었던 조약돌을 하늘을 향해 힘껏 던졌다. 순간 그들은 놀라서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조약돌은 금빛을 내는 기체와 다이야몬드 같은 빛을 내는 기체가 되어 증발하고, 그 기체가 두 영의 머리 위에서 감도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다음 날 강가에서 또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서로 공통되는 화제로서 천 년쯤 전의 역사상의 인물을 화제에 올렸다. 그는 그 인물과의 상념의 교류를 계획하고 그것을 시도하자 그 인물은 눈앞에 나타났다.
“나와 상념의 교류를 희망한 것은 당신인가?” 그의 시야에 나타난 그 인물의 온건한 가운데 위엄이 넘치는 용모는 세상에 있을 때와 별로 변한 데가 없었다.
“내가 상념의 교류를 희망했습니다. 당신과 더불어 잠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합시다. 또 내 곁에 있는 영도 나와 똑 같은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 인물은 상대편의 시야에도 나타났다. 그들은 함께 역사상의 인물과 상념의 교류를 시작했다.
역사상의 인물은 두 영의 몸 안에 같은 형태의 표상을 나타내고 또 그 머리 위에 똑같이 신화 중의 훌륭한 신의 조상(彫像)같은 것을 나타내게 했다. 그러자 잠시 상념의 교류를 하고 있는 사이에 두 영은 서로 같은 표상이 나타남을 알고 놀랐다. 그것은 상대편 영의 몸 안에 보내서 넣은 것이 아니라, 그의 몸 안에 보내진 형상이 그로부터 상대방의 영에 전달된 것이었다.
그리고 반대로 그가 역사상 인물의 머리 위에서 볼 수 있었던 표상의 많은 부분은 상대편 영의 눈에 비치는 것을 그에게 전달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역사상의 인물로부터 같은 상념과 감정을 받아들일 수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상 인물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처럼 내 상념이 잘 전달될 수 있었던 경험은 예전에는 드문 일이었소. 당신들은 상념을 교류하는 기술이 퍽 훌륭한 것 같이 보이는 군요.” 두 영에게 있어서도 전에 없이 이 역사상의 인물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계에서도 결혼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영계의 결혼도 남녀의 영 사이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인간의 결혼과 조금도 다름이 없으나, 많은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영계의 결혼은 영적 친근감, 친화감의 절대적인 극치에서만 이루어지며, 인간이 결혼하는 경우에 흔히 볼 수 있는 세속적인 생각 같은 요소는 전혀 없다. 이것은 영이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당연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영계의 결혼은 동일한 영계의 단체에 속하는 영 사이에서만 행해지고, 다른 단체에 속해있는 영과의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영적 친화감의 극치는 앞에서 말한 바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두 남녀 영의 머리 위에 다이야몬드나 금빛을 내는 기체가 나타나는 것으로 표상된다. 이 같은 남녀의 영 사이에서는 그 영적인 마음은 완전히 하나가 된다.
영의 경우도 남성은 이성과 지성이 뛰어나고, 여성이 정서적인 것은 인간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래서 영이 결혼하게 되면 남성 영의 이성과 지성은 그대로 여성의 영에게로 흘러 들어가고, 여성 영의 정서는 그대로 남성의 영 속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서 하나의 영격(靈格)이 이루어진다. 이 영격은 남녀의 영이 별개로 있는 경우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영격이 되고, 결혼한 남녀 두 영의 행복감도 영적인 능력도 영계에서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 된다.
영계에서도 남녀의 영이 결혼하게 되면 피로연을 열고 같은 단체에 속해있는 많은 영이 모여든다. 그 때에 모인 영들은 피로연 석상의 상공에서 이 세상에서는 상상 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소녀의 상(像)이 빛나면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영계에서 지복(至福)을 표시하는 표상으로 알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영계의 결혼이 이 세상의 결혼과 다른 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결혼한 남녀의 영은, 영계에서는 두 사람의 영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영으로 취급된다. 이것은 영적인 마음의 결합이 완벽함을 나타내는 것인데, 그 밖에도 영계에서는 결혼한 남녀는 서로의 영으로서의 몸이 모두 상대방 영의 몸 안으로 들어가 완전히 일체가 되어 버리는 데에서도 연유한다.
또 영계의 결혼에는 남녀 영 사이에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일은 없다. 이것은 영계에서의 결혼의 목적이 두 영의 깨달음이나 행복이나 이성, 영적 능력의 향상에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의 결혼처럼 자손의 번식을 목적으로 삼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낙타 등에 짐을 실은 대상(隊商)이 동양의 사막을 길게 열을 지어 서쪽을 향해 가고 있다. 넓은 사막에는 시야를 가리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대상들에게는 행길을 갈 때와 같은 목표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들의 진로를 표시해주는 것은 오직 하나의 시간과 태양의 위치나 높이를 보아 경험을 토대로 해서 산출한 서쪽 방향이라는 것뿐이다.
시간은 정오 때쯤 태양은 마침 남쪽 하늘에서 빛나며 그들에게 앞으로 나갈 방향을 표시해 주고 있다. 이 때 갑자기 먼 곳에서, 온 사막을 뒤흔드는 것 같은 천둥소리가 대상들의 귀에 들려왔다. 비를 희구하던 그들은 어느 방향에서 났을까 하고 각자 짐작되는 방향을 둘러보았다. 그들 사이에 무서운 공포와 이변이 일어난 것은 바로 이 때였다. 대상들은 각자 자기 생각대로 방향을 정하고 얼굴을 그 쪽으로 향했다. 그 각 방향으로 돌린 얼굴 정면에 전원이 똑같이 태양을 본 것이다.
대상들은 모두 다 자기가 태양을 본 방향이 남쪽이라고 생각하여 그것을 기준으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거요? 그 쪽은 서쪽이 아니란 말이요!” “아니 그렇게 말하는 당신이야말로 틀린 방향으로 가고 있소. 내가 가는 방향이 서쪽이요!” 이렇게 되면 대상의 행렬에 혼란과 착각이 일어나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만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멋대로 꾸민 이야기라고 웃을 것이다.
각자 얼굴을 돌린 방향이 어느 쪽이든 그 방향에 정면으로 태양이 보인다. 이러한 턱없는 일은 이 세상 사람의 인간적 경험의 범위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계는 불가사의한 일이 가득 찬 세계인데, 그 중의 하나가 영계의 태양이다. 영계에서는 사람들이 일소에 붙인 턱없는 일도 태양에 관한 한 가장 상식적인 일이다. 영계의 태양은 항상 영들의 얼굴을 향한 방향에 있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영계의 태양은 동쪽 하늘의, 그것도 영들의 가슴 정도의 높이에 항시 있으면서 움직이지 않는 태양이다. 이 태양은 아직 영계에 익숙치 못한 영들에겐 그 움직이지 않는 점이라든가 가슴높이에 있다는 점에서 매우 불가사의하다. 몇 천 억 년의 태고(太古)가 가슴 앞에서 항상 노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그러나 이 태양은 참으로 거리낌 없이 영들이 얼굴을 돌린 방향으로 움직인다.
영들은 그 얼굴에 의해서 빛이나 열, 영류를 받아 들여서 살고 있는 것이므로 이렇게 되는 것이 사실 당연하지만, 이 세상의 감각으로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는 태양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태양이 있는 방향이 영계에서는 항상 동쪽이라고 정해져 있으며, 이것이 영계의 방위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동쪽도 항상 움직이고, 더구나 각자 영에 따라서 동쪽은 달라진다. 이 태양의 불가사의만은 영계의 현자(賢者)라고 하는 영들도 풀 수 없으며, 지금까지 이 불가사의를 푼 영은 영계에는 없다.
그것은 어쨌든 간에 영들은 태양이 움직이든 동쪽이 움직이든 관심을 갖고 있지 않고 산다. 이것은 영들이 자기의 얼굴 정면뿐만 아니라 주위의 어느 방향도 분간할 수 있는 머리와 눈을 마음속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위의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에 의해서 방향 감각을 틀리지 않게 가늠할 수가 있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영계의 광장에 모여 있는 수많은 영들은 놀라 일제히 이렇게 외치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이변의 징조가 아닐까?” 영들은 누구나 다 동쪽 하늘에 그들이 본 이변에 눈을 못 박은 채 서로 이런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놀라움과 불안, 또 이제부터 일어나리라고 짐작되는 이변의 징조에 대한 두려움의 표정이 그들 전부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늘 그들의 가슴 높이에 있어야 될 태양이 조금 높은 하늘 가운데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영들이 불안과 공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을 때, 태양 둘레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조각구름 비슷한 것이 몇 가닥 나타나 태양 둘레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 구름 중에는 태양의 전면을 나는 것도 있어서, 그 때문에 태양의 빛은 가리워지고 영계의 지면에는 몇 줄기나 되는 검은 그림자가 비쳤다.
<구름이 태양을 가리고 있다> 영들의 불안은 더해 갔다. 구름이 태양의 둘레를 돌기 시작함과 동시에 태양은 더욱 빛나고 강렬한 빛을 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태양이 구름과 싸우는 것같이 보여 그들의 공포는 더해 갔다. 이 때 한 영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영들 앞에 나섰다. 그는 천년 전에 있었던 어떤 일을 기억해 낸 것이다. 그는 영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이제야 생각났다. 이것은 하늘나라 사람의 춤이며, 두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 경사이다. 나는 천 년쯤 전에 이와 똑 같은 일을 본 적이 있다” 그의 이와 같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각구름들은 수십 명이나 되는 영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주위를 질서 정연하게 원을 이루면서 돌기 시작했다. 태양은 한층 더 광체를 더해 갔다. 태양 둘레를 돌고 있는 영들의 모습이나 형태도 얼굴 생김새도 차차 뚜렷해져 갔다.
태양은 평소의 태양보다도 수십 배 수백 배나 밝게 빛났고, 또 빛 속에는 황금과 은(銀)빛 줄기가 섞여 이것이 반짝반짝 아름다운 빛을 영계 전체 위에 뿌렸다.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영들의 의복은 새하얀 눈처럼 빛나고, 그들의 표정은 이 세상의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지복(至福)의 상태로 빛나고 있는 것이 보고 있는 영들에게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하늘나라 사람들의 춤다웠다.
영계 전체가 평소의 수십 배, 수백 배의 밝은 빛과 황금과 흰 은빛의 광채 속에 있었으며, 영계 안에 있는 모든 영들에게는 태양 둘레에서 지복의 춤을 계속 추고 있는 “하늘나라 사람”들의 행복감이 그대로 전달되어 갔다. 이 때의 영계는 상 세계(上 世界)와 중 세계(中 世界)도, 하 세계(下 世界)가 모두 빠짐없이 행복의 빛 속에 젖어 있었다.
영계(靈界)에서 첫째가는 행복한 사건이란 하늘나라 사람의 춤이다. 하늘나라 사람의 춤이라고는 하지만 “하늘나라 사람”들은 실은 상 세계의 영들이다. 상 세계의 영들 중에서도 특히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러 새로 하늘나라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영에게 그 사실을 축하하는 뜻에서 하늘나라 사람의 춤이 허락되는 것이다.
즉 전 영계가 “새로운 하늘나라 사람”의 탄생을 축하하는 셈인데, 이것은 대체로 천 년에 한번쯤 있는 영계에서도 드믄 행사이며, 하늘나라 사람이 춤을 추는 것을 허락 받은 “새로운 하늘나라 사람”은 기껏해야 수십 명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늘나라 사람의 춤은 지금 여기서 말하는 대로 행해지는데 그들의 지복을 축하함과 동시에 전 영계의 영도 잠시 같은 행복을 나누어 갖게 되는 셈이다. 영계에 하늘나라 사람의 춤이라고 하는 행사가 있다는 것은 영들의 영계에 있어서의 생활 목적이 아무리 완만하다 할지라도, 영원한 영적 진보를 지향하고 있다는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라고 할 수가 있다.
영이란 공기라든가 정기(精氣)와 같은 것이거나 혹은 공중에 떠다니고 있는 에테르와 같은 것이다. 영에 대한 인식은 영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도 이 정도로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사실 영은 인간처럼 육체라는 형태는 갖고 있지 않지만, 일종의 영체를 갖고 있다. 그리고 지성과 이성이라든가 감정 면에서는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은 전부 갖고 있으며,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내가 이제 말하려고 하는 것을 들으면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영이 나에게 이야기해준 예를 들어 이야기하기로 한다.
그는 한 사람의 영과 영계 끝에 있었다고 알려진 "장엄의 숲"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라고 하면서 말하는 이 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먼데로 눈길을 던졌다. 그 날의 그는 퍽 기분이 상쾌하고 마음도 들떠 있었기 때문인지 그에게는 흔히 보아왔던 풍경이 다른 때보다도 훨씬 더 아름답고 생기 있게 느껴졌고 또 그의 눈에 비치는 태양도 평소보다 더 밝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눈길을 주고 있는 저편 - 그것을 아마 이 세상의 거리로 말하자면 수천 억 킬로 저편에 있었으리라. - 에는 길고 긴 성벽과 같은 것이 이어져 있고 그것이 그의 시야의 끝이 되어 있었다. 그 성벽은 그의 말대로 하자면 “시야의 끝에서 끝까지 모두 가로막고 이 세상에 있었을 때 들은 바 있는 동양의 만리장성 수천 배의 길이”였다.
그의 상쾌한 기분은 여전히 변함없이 계속되었고 그에게는 또 한 사람의 영이 말하는 "장엄의 숲" 모양이 한 마디나 두 마디의 말을 들은 것만으로도 눈에 생생하게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태양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평소보다도 밝게 빛나고 있던 태양이 차차 빛을 더해가고 엷고 붉은 색으로 보였던 태양은 조금씩 더욱 밝은 흰색으로 변해서 아름다운 은빛을 내기 시작 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 은빛 속에 황금빛 줄기가 섞여 그의 시야 전체를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는 광경으로 비추어 주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더욱 행복감에 가득 차고 또한 지복의 절정으로 올라가는 것을 그 자신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사물에 대한 이해력도 매우 밝아졌다.
그에게는 이제야말로 상대편 영이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장엄의 숲"의 이야기는 상대편의 입에서 말도 나오기 전에 벌써 눈에 비치게 되고, 그 모습은 상대편 영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먼 곳에 눈길을 돌린 그는 놀라서 소리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그 먼 저편에는 높고 길게 이어져 있는 성벽 같은 것이 그의 시야를 가로 막고 있었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로 막고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도 성벽은 틀림없이 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에게는 그 두터운 벽이 마치 엷은 공기의 막(莫)처럼 투시되었던 것이다. 성벽 너머에 있는 세계의 갖가지 모습이 그의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때 그에게는 영계 전체,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전 영계, 성벽도 성벽너머의 저편세계도, 영들에게 까지도 전설적인 존재인 "장엄의 숲"조차도 통틀어 혼연일체가 되어 조화를 이룬 음악으로서 영계의 허공에, 그 아름답고 생명에 가득 찬 음악의 전당으로서 울려 퍼지고 있는 듯하였다. 그때 갑자기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영계의 모든 것이 손 안에 쥔 듯 확실히 알 수가 있구나.” 영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과 모든 세계 그리고 그 곳에 사는 모든 영들의 생각이나 감정............ 이, 모든 것이 생명에 가득 차고 무한한 색채를 지닌 작은 "소리의 조각"의 뜻을 해독(解讀)하게 됨으로써 영계와 영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의 전부가 손에 쥔 듯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자기가 이 영계에서 지복의 절정에 얼마동안이나 있었는지 그 시간을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제 정신이 들어 깨어나 보니 태양은 이미 조금 전까지와 같이 빛나지 않고 보통 보던 때의 엷은 분홍색의 태양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또 그의 시야도 저편 벽에 가로 막혀 이제는 벽 너머의 광경을 볼 수가 없었다. 영계는 평범한 모습으로 되돌아 와 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끝이라면 사람들은 그가 꿈이라도 꾼 것이겠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행복에 겨운 세계에서 지극히 평범한 세계로 되돌아와 버렸으므로 환멸을 느끼고 심신이 피로해졌다. 곁에 있던 영은 또"장엄의 숲"의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그는 열심히 들으려고 하는 마음이 없어졌다.
그를 또다시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그는 한 순간 현기증과 같은 것이 일어나고 동시에 몸 안에 자기 것이 아닌 무엇인가가 갑자기 침입해온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이와 때를 거의 같이하여 그들 두 사람의 영이 서 있던 발아래 지면이 무서운 굉음을 내면서 두 개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은 순식간에 넓어져 커다란 암흑의 구덩이가 보이더니 그는 구원을 청할 틈도 없이 그 안에 빠져 들어갔다.
그런데 사실 그는 실제로 암흑의 구멍 속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그 자신의 마음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인데 이것은 그의 마음이 하강 상태를 향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이것을 고비로 눈에 보이는 세계는 어두워지고 또 시야도 좁아져서 조금 전까지 보였던 높고 긴 벽은 이미 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란 겨우 겨우 수백 킬로 정도의 범위 안에 있는 것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빛나던 태양도 조금씩 빛을 잃고 차차 검붉은 색에서 보랏빛을 띠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저녁의 어둠이 깔린 하늘에 탁한 빛을 내는 달이 되어 버렸다.
그의 행복도 이제는 허무하게 시들어 버리고 그의 마음에는 비애만이 남게 되었다. 그에게 말을 거는 상대편 영의 "장엄한 숲"의 이야기도 그에게는 조금도 장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저녁의 어둠 속에 영계의 다른 어느 곳엔 가에 있을 이 세상에 있었을 때의 친구의 얼굴을 생각해 내고 열심히 상념의 교류를 구했다.
그러나 친구의 얼굴은 전혀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고 또 그는 몸을 원래 있던 곳으로부터 이동시켜서 친구의 영 앞에 갈 수 있는 능력을 잃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한층 더 비참한 생각에 빠졌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아주 평범한 영에게 허락되는 행복도 허용되지 않았고 또한 그의 영적인 능력은 인간으로 말하자면 마치 폐인(廢靈)이 되어 버린 것으로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영의 세계에서는 이 이야기와 비슷한 영의 심적 상태의 변화라는 것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의 변화와 비슷한 점이 있는데, 이 상태의 변화라고 하는 사태가 영계에서 뜻하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한 면이 있다.
영원한 삶을 보내는 영들에게 있어서는 상태의 변화만이 그들이 살고 있다는 표적이 되며, 그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시키는 근거가 되어 있다. 이것이 없으면 그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일이 흔히 있기 때문이다. 영에 있어서 상태의 변화라는 것이 보통은 이 이야기만큼 극단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성질은 역시 같은 것이며, 행복함이나 이성이나 영적 능력이 상한(上限)에서 하한(下限)까지의 폭 안에서 변화가 되풀이되고 있다.
영의 능력에는 지금 기록한 이야기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시력 하나를 예를 들어보아도 영의 눈으로 보는 외적 시력과 영이 그 마음의 눈으로 보는 영적 내시력(內視力)과 같은 두 측면의 능력이 있다. 영의 마음의 상태가 상한에 가까울 때에는 내적인 영의 특유한 능력도 뛰어나게 되고 내시력도 위력을 발휘하여 아주 먼데 있는 벽 너머에 있는 세계까지도 극히 간단히 투시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영의 마음에 감응하는 영적 감응력, 사물을 표상으로 나타내는 표상력, 다른 영과의 상념의 교류 능력 등 일체의 영적 능력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영의 상대 변화는 그 영이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영류의 변화에 의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또 재미있는 것은 이 경우에도 알 수 있듯이 영의 상대 변화에 따라 태양의 빛남도 증감되고 그 최저의 상태에서는 태양이 “달이 되어 버린다.”는 현상까지도 일어나는 것이며,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기이한 생각을 안겨줄 것이다.
그 영은 주위의 모양이 평소에 늘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영계의 모든 집이나 모습 또 여기저기에 보이는 모습이나 형태도 외형은 어느 것이나 눈에 익었던 것과 다름이 없어 어디라고 꼬집어 말할 수 있는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거리와 영들도 그리고 이 모든 집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게 전체가 전보다 밝게 빛났으며 이런 것들이 엷고 투명한 막을 통해 보이는 듯하여 불안과 의심을 갖게 하였다. 그는 변두리에 있는 원시림으로 갈 작정으로 눈길을 돌렸다.
어찌된 영문일까? 숲이 없다! 그는 방향 감각에 이상이 있나 하여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숲은 없었다. 그의 불안과 의심은 더욱 심해져서 가슴이 설레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더욱 거리를 지나가는 다른 영을 불러 물었다. “원시림은 어데 있소? 나는 길을 잃은 것 같은데 나에게 원시림이 있다는 방향을 가르쳐 주시오.”
그러자 그 영은 매우 놀라며 되물었다. “원시림이란 도대체 무엇이오? 처음 들어보는 소리요.” 거리에 있던 많은 영이 모이자 처음에 질문을 받았던 영이 그들을 향해 물었다. “자네들 원시림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한 순간 술렁거렸다. 모든 영들은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이 영의 감응으로 곧 알 수가 있었다.
그의 불안은 더해갔다. 그는 불안의 밑바닥에서 생각했다.
원시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다니, 도대체 이들은 무엇일까? 이 자들도 나와 같은 영일까? 아니 영이 아닐 것이다. 영이라면 원시림을 알 텐데. 그런데 이들은 영이 틀림없어. 이렇게 말이 통하고 있지 않는가?
그는 점점 더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아아 나는 어떻게 된 것일까? 그런데 이 때 이렇게 고통 속에 빠진 그에게 또 그 이상의 고통이 찾아왔다. 그는 너무나 눈이 부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빛을 느끼는 한편, 마음속에서 외쳤다.
가슴이 죄인다! 숨이 끊어질 것 같다! 이러한 고통 속에 빠진 그의 눈은 주위에 있는 영들의 모습이 두 개 혹은 세 개로 찢기는 것을 보았다. 또 거리와 군중도 전부 엉망진창이 되어 그의 눈앞에서 맹렬한 속도로 빙빙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고통은 그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똑같은 고통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영 안에서도 일어났다. 그리고 차차 군중 전체에 파급되어 간 것이다.
이때의 상황을 멀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는 어느 영은 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해 주었다. 한 사람의 영이 발을 동동거리고 손을 뒤틀더니 고통을 참지 못해 땅바닥에 딩굴고 또 일어나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그러자 그와 함께 있었던 영의 군중이 그와 같이 머리를 땅에 박고 발을 공중으로 올리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또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을 때에는 그와 같이 뒤 섞여서 미친 듯 춤을 추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곤 했다.
이 광경은 영계에서 수천 년의 생애를 지낸 나에겐 몹시 무서운 광경으로 보였는데 그 원인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이 기괴한 소동은 끝났다. 그리고 이 소동이 진정된 후에는 모든 영들은 평소와 같이 침착해져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이 때 자세히 보니 군중과는 다른 한 사람의 영은 보이지 않고 무한히 먼 저편에 한 장의 투명한 막이 드리워지고 그 막에는 구멍 하나가 뚫리어 있었다.
그런데 이 소동은 도대체 무엇일까? 막에 뚫린 구멍은 무엇인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며, 그러한 기이한 광경은 그 이후 만 년이 지났어도 두 번 다시 보지 못했다. 또 보고 싶지도 않다. 정말 기분 나쁜 일이었다.
질서가 완전히 확립되어 있는 영계에서는 이 영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내가 방금 말한 것과 같은 사건은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도 몇 십만 년, 몇 백만 년 사이에 한두 번쯤은 이런 돌발 사고가 일어나는 일도 있는 것 같다.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영이 자기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 섞여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난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여기서 말한 한 사람의 영이란 중 세계(中 世界)에 사는 영인데, 그는 무슨 까닭에서인지 알 수 없으나 상 세계(上 世界)로 들어가 버리게 된 것이다. 천공에 드리워진 막에 구멍이 뚫린 것은 이 때문이다. 상, 중, 하의 3세계 안에서는 앞장에서 말한 바에 의해서 상상할 수 있겠지만 영류 중의 간접 영류는 각 세계별로 차이가 있고, 따라서 하나의 영이 간접 영류로부터 받은 영향에도 차이가 있게 된다.
간접 영류는 상 세계가 가장 많고 다음에는 중, 하 세계 차이로 적어진다. 그리고 상, 중, 하 3세계의 영은 모두 다 자기들이 속하는 세계의 간접 영류를 받아들이는 데 적합할 정도로 밖에는 영의 마음의 창이 열려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 경우와 같이 중 세계의 영이 상 세계에 들어가게 되면 그 곳의 간접 영류는 그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된다. 그가 받는 고통의 하나는 이것이며, 또 그에게 상 세계가 너무나도 지나치게 눈부신 세계로 비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세계로 영이 섞여 들어가게 되면 상, 중, 하의 3세계에서는 방위(方位)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 영 자신에게도 또 그 영과 상념을 교환한 영 안에서도 방위의 착란이라고 하는 혼란 형상이 생기게 된다. 이것은 참으로 죽음과도 같은 고통을 줄 정도로 심한 것이며, 그들은 물체를 보는 시력이나 시계, 사물을 판단하는 지성도 혼란과 착란 속으로 말려들고 만다.
영이 다른 영의 세계로 들어가면 방위 감각에 착란이 일어나 자기는 물론 다른 영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영계의 태양이 갖는 이상한 성질 때문이다. 즉 영계의 태양은 상 세계에서는 항상 태양으로서 상 세계의 영들 눈에 비치고 있는데, 하 세계에서는 항상 빛이 약한 달이 되어 하 세계의 영들의 눈에 비친다. 그리고 태양은 상 세계의 영의 오른쪽 눈에 보이는데, 그 사이에는 30도 각도의 간격 차가 있기 때문에 두 세계에는 방위 기준이 차이가 생긴다.
또한 중 세계의 영에게는 태양은 영의 영적 상태 여하에 따라서 태양으로서 오른쪽 눈에 보이기도 하고, 달이 되어 왼쪽 눈에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변화의 바다"라는 항에서 기술한 대로이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상, 중, 하 3세계의 사이에는 교통과 교류가 허락되지 않는다.
다른 세계와 교통은 허용되지 않으나 같은 세계의 다른 단체와는 교통과 교류가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다. 다만 이 경우도 영들은 다른 단체를 방문한다거나 다른 단체의 영과 교류할 때에는 자기 단체의 영과 교류할 때와 달리 잘 어울려지지 않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정도는 각 단체의 성격의 차이 정도에 따라서 달라진다.
성격에 아주 심한 격차가 있는 단체에 다른 단체에 속해있는 영이 섞여 들어갔을 때에는 그 양편에게 심한 고통과 고민의 원인이 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때에는 그 영의 단체는 영 전체가 마치 하나의 영처럼 뭉쳐서 다른 단체의 영을 배척하고 쫓아 내 버린다. 그 때에는 그 단체의 영 전원이 중심령의 지휘 아래 단 한 사람의 몸처럼 집결된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의 영은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영의 봉우리 같은 거인의 모습이 되고, 그 발아래에서는 배척당한 영의 얼굴은 시커멓게 질려서 숨이 넘어가듯 몸을 뒤틀어 뒹굴면서 고민하는 광경이 나타난다. 그리고 난 후 그는 자기의 본래 속해있는 단체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수백 수천의 벼락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전 영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영계의 지면에는 땅울림이 울려 퍼지고, 영계 안이 찌렁찌렁 울리면서 진동을 일으켰다. 영계의 지평선을 가르고 있는 산맥은 꼭대기로부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무너지기 시작하고 있다. 길게 뻗어나간 산맥은 그 한편의 끝에서부터 진동을 시작하여 차차 다른 쪽의 끝까지 파급되어 나간다. 산허리에 있는 거대한 바위도 산 아래로 굴러 내려가 산기슭에 있는 못이나 평지로 떨어졌다.
굉음과 진동, 땅울림은 차츰 더 심해져 갔다.
영계라고 하는 세계가 단번에 허물어져 버리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뒤에 더욱 무서운 사태가 계속 되었다. 떨어진 거대한 바위 근처에서는 몇 십만 아니 몇 백만의 영들이 그 목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이 아닌가 생각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고, 또 하늘을 향해 욕을 퍼부으며 발을 하늘로 향하고 머리는 땅을 향해 거꾸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거꾸로 떨어진 그들은 땅 속에 처박히고 땅이 그들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산들이 허물어져 가는 소리에 지지 않을 정도로 무섭게 요란했고, 그 으스스한 무서움은 산사태의 굉음보다도 더 켰다.
이 무서운 산사태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산들이 무너져 나간 뒤 그 근처에서는 한 사람의 영이 천천히 사라져 갔다. 그는 이 사태의 진행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 곳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사태는 전부 그가 혼자서 일으킨 것이었다. 그의 이 무서운 힘을 눈앞에서 보았다고 한다면 영은 단순한 정기(精氣)라든가 에테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천박한 생각을 틀림없이 단번에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영은 필요한 경우에는 이 정도의 무서운 힘을 과시하는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작은 개미 한 마리를 잡아 죽이 듯이 손쉽게 해 치운다.
영계의 그늘진 부분인 산이라든가 동굴이라든가 거대한 바위 밑이라든가 하는 곳에는 자주 흉령(凶靈)이라고 불리는 영이 무리를 이루어 정착하는 일이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부근에 있는 영의 단체는 이들을 격퇴하기 위해서 산사태를 일으키기도 하고 또 큰 바위를 떨어뜨리거나 혹은 가루로 만들어서 악령들을 쫓아 버린다. 지금의 무서운 사태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사태도 오직 한 사람의 단체의 중심령(中心靈)만으로 해치울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 방법은 두 눈에 기운을 집중시켜 산들이나 거대한 바위를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능하다. 이 기운과 한번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산이 붕괴하고 진동하며, 거대한 바위는 산허리를 굴러 떨어져 가루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영계의 서쪽 지평선 위에 한 사람의 거인이 모습을 나타내는 적이 있다. 그는 동쪽 하늘의 태양과 대응하는 위치에 그 커다란 얼굴만을 나타낸다. 그러면 영계 안에 있는 모든 영은 숨을 죽이고 계속해서 일어나는 사태를 지켜보려고 그를 응시한다. 거인은 드디어 커다란 팔을 영계 전체에 걸쳐 휘두르고 또 이마에서 강렬한 빛 같은 것을 내쏜다. 이 때에 영계는 산사태의 수천 배나 더 흔들리고 이곳저곳의 산들은 무너지고, 강이나 못도 매몰되며, 거목도 쓰러지고 강풍이 천지를 휩쓴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사태와 같이 그 수천의 흉령들은 무서운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땅 속으로 떨어져 간다. 이것이 영계 안을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이다.
선령(善靈)이 사는 영계에 대해서 흉령들은 항상 힘을 합해서 그 세계를 침식하고 어떻게 하든 붕괴시키려고 꾀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말한 것과 같은 두 가지 수단으로 영들은 대항한다. 그런데 그 근원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영계의 태양의 영류(靈流)인 것이다. 영계의 단체의 중심령이 그 두 눈으로 노려본 것만으로 산맥이 그럴싸하게 무너뜨려 버리고 마는 것은 그가 영류를 두 눈에 압축시켜 그것을 산맥을 향해 방사시키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의 힘이라고 하기보다는 영류로부터 빌린 힘인 것이다. 그 증거로 그가 이 힘을 그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면 그는 힘을 완전히 잃고, 수 백 만의 흉령에도 대항할 수 있었던 그의 힘은 단 한 명의 흉령에도 대항하지 못하게 된다. 앞서 말한 거인도 실은 영계 안의 중심령이 모여 한 사람의 거인을 형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거인은 머리 - 그것은 이마에서 영류를 방사하기 위한 것 - 와 두 팔 밖에 없지만 머리도 두 팔도 각기 하나하나의 중심령이 긴밀하게 자기들의 몸을 이어 맞추어서 형성한 것이다. 이것을 서로 이어 맞추는 것도 또 두 팔을 휘두르는 것도 전부 영류의 작용이 그 근원이 되어 있다.




[靈界의 手記] 2. 영계의 모든것


영의 불가사의한 관념.

사람들이 만년설(萬年雪)을 이루고 있는 대알프스의 연봉을 한 눈에 바라보거나 아프리카의 대사막이라든가 대삼림 속에
서 있거나 또는 끝없는 바다물만이 이어지는 대양(大洋)의 한 가운데에 있을 때에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자기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과연 이와 같은 경관(景觀)은 어느 것을 막론하고 정말 장대하다. 그러나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것은 이러한 경치만은 아니다.
물론 눈으로 본 장대함이라든가 익숙함도 있겠으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겨져서 사라지지 않는 것은 그 이상으로 이것을
전부가 영원한 태고로부터 존재하고 또 미래의 영겁에 걸쳐 그 존재를 계속할 것이라는 마음에 느끼는 영원한 시간에 대한 인식 때문이리라.

내가 지금 여기에 든 경관은 전부가 누구의 눈에도 영원한 상(相)으로 비친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자기도 영원한 태고로부터 이 세상에 살고 있으며, 미래도 영원히 바다 속에 있다고 하는 감회에 잠기게
된다.

영원한 상(相), 그런데 바꾸어 말한다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시간은 모조리 죽어 없어지고, 완전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고 사람들이 느낄 때에 그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 바로 "상"이다.

나는 시간에 대해서 영들과 토론한 일이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 세상에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
인간 세계에서의 태양이란 영계의 태양과는 달라 회전이라고 하는 운동을 한다.

인간은 이 회전의 결과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고 하는 계절의 변화를 경험한다.
봄에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새로운 생명의 싹을 돋우고, 여름에는 그 생명이 더욱더 왕성해지고,
가을에는 생명이 열매를 맺으며, 겨울에는 잠든다.
그리고 그 흐름은 항상 같은 차례로 흐르며, 역전하는 일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또 태양은 동쪽 하늘로부터 떠오르고 서쪽 하늘로 지는 것을 하루로 치고, 하루를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아침, 낯, 저녁,
밤으로 세분해서 이것을 시간이라고 하고 있다. 인간 세계의 귀중한 척도의 하나가 바로 이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영들은 때로는 고개를 끄덕여 이해한 표정을 지었지만, 때로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는군,
참으로 기묘한 세계도 있군! 그런게 정말 존재할까.” 이런 표정을 짓거나 두통이라도 나는지 이마를 짚기도 했다.

어떤 영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들은 적이 없소. 당신 정신에 이상이 생긴 게 아니요?
도대체 인간계의 태양이란 무엇이요? 만약 태양이라면 움직일 리가 없을 텐데, 나로서는 당신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소.

다만 당신 말 중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생명의 상태에도 변화가 있다는 말은 이해가 될 듯
하오. 그렇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오. 내가 느낀 대로 말하자면 당신은 반쯤은 정상이고 반은 미치광이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을 듣고 내 눈앞이 캄캄해진 듯한 생각마저 듭니다.”

앞에서 인간계에도 영원의 상(相)을 사람들에게 느끼게 하는 사물이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도 이 사실은 쉽게 인정하리라.
이와는 달리 영계의 사물은 모든 것이 영원한 삶을 나타내며 존재하고 있다.

인간계에서 영원한 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알프스산맥이나 대양(大洋), 대사막 등 특수한 것뿐인데 영계에서는 모든 것이 영원한 상 속에 있다.

한 포기의 작은 꽃, 한 개의 작은 돌이라도 그것은 태고로부터 영원한 미래를 향해 부동 불변의 것으로 존재하고, 엄연히 영원
한 모습을 그 작은 모습 안에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계가 시간이라는 기준을 초월한 시간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
다. 그 때문에 영들에게는 공간이라는 관념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과 같이 시간이라고 하는 관념도 없다.

나의 말에 대해서 영이 “그런 말은 들은 적이라곤 없소. 내 눈앞이 캄캄해진 것 같소.”하고 말한 것은 그들에게는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생각하지도, 아니 상상조차 할 수도 없는 일이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시간적인 관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기껏해야 상태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도이다.
이 점도 앞에서 말한 영의 이야기 가운데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에 따라 생명의 상태에도 변화가 있다
는 말은 이해가 될 듯 하오.”라고 한 말로도 알 수가 있다.

상태의 변화라고 하는 넓은 바다 안에서 조수의 간만(干滿)에 따라 상하로 흔들리며 살아가는 영들에게는 이 조수의 간만만
이 그들이 살고 있는 표적이므로 “시간”이 생길 수가 없다고도 할 수 있겠다.

또 영들에게 시간관념이 없는 것은 영의 생명이 영원하기 때문이라는 것과 함께 다음과 같은 타당한 이유가 있다.
즉 영계의 태양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항상 천공의 한쪽에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뒤에 공간의 항에서 말하겠지만 영들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멀다는 관념이 생길 리가 없고 따라서 시간의 관념
도 생길 여지가 없음을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영들의 시간의 관념에 관련해서 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여기에 두 사람의 영이 있다고 하자. 인간계적(人間界的)으로 말하면 한 사람이 20세를 조금지난 청년의 얼굴 모습이고
또 한 사람은 60세를 지난 노인의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의 영이 늙었다고 생각할 것인가?
이 세상의 표현 방법으로 말하자면 청년은 젊고 노인은 나이를 먹었다고 하겠지만 청년 쪽이 노인 보다 수천 년이나
먼저 죽어서 영계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년 쪽이 나이가 더 많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영계에서는 시간이 없고 따라서 연령도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은 인간으로서 죽은 얼굴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음에
지나지 않는다. 그 광경은 참으로 으스스한 기분 나쁜 광경이었다.

몇 십만, 몇 백만이라고 하는 영들은 일단이 되어 뒤에 뒤를 이어 어떤 방향으로 전진해간다.
만약 이들 영들에게 인간과 같은 육체가 있었다면 이 행진하는 발자국 소리는 기괴한 소리로 울려 퍼져서 공포를 일으켰을 것
이다. 아직도 계속 영들은 꼬리를 이어 전진해 갔다.

그리고 목적지를 삼고 나가는 방향에는 하늘 꼭대기라도 닿을 듯한 높은 산이 서 있었다.
영들의 선두는 이제 그 높은 산의 중턱에 닿으려 하고 있다. 그러자 기묘한 일이 일어났다.
선두의 영들, 즉 높은 산 중턱에 이른 영들의 모습이 갑자기 씻은 듯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누구나 다 자기 눈을 의심하고 한 번쯤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시초에 지나지 않았다.

높은 산의 중턱에 이른 영들은 그 앞에 가던 자들과 똑같이 산중턱에 닿기만 하면 잇달아 그 모습이 사라지고 말았다.
물론 이 산에 영들을 집어 삼킬만한 큰 동굴이 그 입구를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 영들의 집단 행진은 어떤 영의 단체가 영계의 다른 지역으로 자기들 단체의 거주 장소를 옮기고 있었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산 중턱에 닿기만 하면 사라지는 영들은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이 이야기의 결론은 보류하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하기로 한다.
어떤 영이 강폭이 무한히 넓은 강가에 앉아서 강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은 영원한 태고 때부터 지녀온 모양 그대로 조용히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강 저쪽 기슭은 너무 멀어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이런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이 강의 서쪽 기슭은 도대체 어디쯤에 있을까? 그 곳엔 무엇이 있을까? 그런 일들을 생각하며 수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는 그 자신 속에서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안개가 걷혔는가? 그는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바라보고 있었던 수면은 조금씩 멀리까지 보이게 되고, 아득한 곳의 물이 흐르는 모양까지도 보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저편 건너 기슭도 보이고 다시 그 앞에 성곽 같은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곽 앞에는 한 사람의 노인인 듯한 영 - 그 영은 땅에 닿을 정도의 긴 흰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 이 서서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윤곽만이 보일 뿐, 눈과 코도 없고 물론 표정 같은 것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저 영은 누굴까? 만나보고 싶은데!
다음순간 그는 무한한 강폭이라고 생각했던 이 강을 건너 그 노인인 듯한 영의 눈앞에 서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영계는 광대무변하다. 이 세상에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몇 백만 년 동안이나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 죽어서 영계로 돌아온
영이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해 보면 가히 그 넓이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면 이 광대무변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영들이 그 공간에 대하여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는가 하는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
말해 보기로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그토록 광대무변한 공간에 살고 있으면서도 공간이라는 관념을 전혀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 세계에서는 누구나 이상하게 생각하겠지만, 한편 곰곰이 생각해보면 실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라 영계에 사는
영의 입장으로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생각만 해도 어디에나 순식간에 자기가 마음먹은 곳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이점은 강가에 서 있었던 영의 경우로 미루어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가리라고 믿는다.
그가 노인의 영 앞에 서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이 노인을 만나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단숨에 무한한 거리를 날아 노인 앞에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그들은 스스로가 희망하기만 한다면 견고한 바위이건 산이건 또는 벽이건 수목이건 무엇이고 간에 자유자재로
통과, 즉 투과(透過)할 수 있는 점이다.

또한 영계의 결혼에 관해 말했던 것처럼 남녀의 영이 한 몸이 되는 것을 보아도 알지만 그 속으로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주로 이 두 가지 이유로 해서 그들은 공간의 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고 또한 가질 수도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역시 같은 이유로 해서 그들은 거리에 대한 관념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거리를 느끼는 일이 만약에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음속에 생각하는 대상물에 대한 욕망이 적을 경우이다.

그 소망이 강력한 것이라면 그들은 순식간에 그 대상물과 같은 위치에 서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영계에 거리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영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열의의 다소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조금 전에 말하던 집단 행진을 하는 영의 단체는 이미 그 높은 산의 중턱을 뚫고 지나서 산너머에 나갔을
것이다.


영계의 언어와 문자.

“나는 일찍이 그토록 놀란 적이 없었다. 영계에서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영계 들어 온지 얼마 안 되는 어느 영이 놀랍다는 말투로 영계의 기이한 언어에 대한 그의 경험을 나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옮김으로써 영계의 언어가 어떤 것인가를 논하는 전제로 삼기로 한다.

그는 다른 영 - 물론 그 보다 영계의 경험이 풍부한 영이었다.
- 과 그들이 각기 자기가 속해있는 단체와는 다른 단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나눈다고는 하지마는 그는 다만 선배가 되는 영의 말을 듣고 있는 편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방문한 단체의 수는 무척 많다. 그 가운데서 가장 기이하다고 느낀 단체가 하나 있었는데, 지금 나는 그 단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선배격인 영은 이렇게 서두를 꺼냈다. 그런데 그의 말을 들은 것뿐으로도 갑자기 격렬한 충격을 느꼈다.

“그 단체는 우리 단체가 있는 곳에서 남쪽에 위치해 있었고, 그 단체에 속해 있는 영의 수는 우리 단체보다는 몇 십 배나
더 많았다. 또 비교적 최근에 생긴 단체로서 십만 년 이내의 것이었으며, 이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 마치 하늘에 있는
성운(星雲)처럼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단체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영은 북유럽에서 시베리아에 걸친, 말하자면
지구의 북반구 지역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쇼크는 무어라 이유를 꼬집어 말할 수도 없으나, 이러한 얘기 내용이 그에게 즉각 확신을 안겨 준다는 데에 있었다.
선배격인 영은 아직 그 단체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얘기한 적인 없고, 영계의 일에 경험이 없는 그에게는 그런 내용의
일을 상상조차도 할 까닭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이해했다고 여겨지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는 등골이 오싹 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저도 모르게 상대편 영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상대편 영은 그의 심정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가 말한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분명히 그 단체는 그가 이미 이해한 것처럼 남쪽 방향에 있었고, 그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은 모두가 그대로였다.
그러나 그 영이 또다시 기이하게 생각한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 단체의 영들은 누구나 얼음집에 살고 있었으며,
얼음집은 그 단체가 있는 곳 도처에, 즉 산기슭과 중턱에도 그리고 강가나 들판에도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거리를 이루고 얼음집의 추녀가 반듯하게 잇달아 늘어선 곳도 있었다.

게다가 이상스럽게도 이 얼음집의 내부는 말할 것도 없이 산기슭이나 강변이나 들판이나 거리가 모조리 작열하는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이 뜨거운 열기도 그 단체의 영들에게는 조금도 괴로움을 주지 않는 모양이어서 그들은 모두가
시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따라서 뜨겁다는 것은 이 단체를 방문하는 외부의 영들에게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또 이 단체의 집 주변에 있는 나무나 산과 들에 있는 나무들도 한결같이 하늘을 찌를 듯이 거대하였고, 게다가 기괴한 모양을
하고 있어 도저히 나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 뿐이랴, 더욱 기묘한 느낌이 든 것은......... .

선배의 영이 이렇게 이야기 하자, 그는 또 한번 강한 쇼크를 받았다.
그의 눈앞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얇은 공기의 막(幕)과 같은 것이 나타나 거기에 여러 가지 광경이 비쳐졌기 때문이다.
그 막에는 얼음집이 늘어섰고 기괴한 모양의 나무 - 그것은 아무리 보아도 수목이라고 볼 수 없는 별세계의 이상한 생물을
연상케 했다 - 도 비치었다. 그런가 했더니 비쳐진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그 단체의 영들은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 기괴한 나무에도 달라붙는가 하면, 이번에는 나무도 또 영들과
마치 친구라도 되듯이 기괴한 모양의 가지를 흡사 사람이 손 놀리 듯 흔들며 장난치고 있었다.

영들은 아득히 먼 저 건너로 날아갔다가는 다시 막에서 뛰쳐나와 이쪽에 있는 그를 향해 날아오듯이 넓은 공간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야릇한 것은 이들 영들이 공간을 날아다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간은 흡사 그것을
비쳐주고 잇는 엷은 막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한 장의 투명한 막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숨 막히는 감동과 두근거리는 가슴 그리고 현기증조차 느끼면서 이 광경을 응시하고 있었으나, 이 광경의 불가사의한
것만이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선배의 영이 아직 얘기도 하기 전에 그 얘기의 내용을 이해하였을 뿐 아니라, 이번에는 눈에 비치는 형상으로
도 나타내 보인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 영의 이야기에 속으로 미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계에 와서 아직 경력이 적은 그가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실은 이러한 일들은 영계에서는 극히
예사로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대하는 것만으로도 영과 영 사이에는 상념의 교류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벌써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이런 것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인간들에게도 영이 말을 하는 경우에는 보다 더 쉽사리 상념의 교류가 잘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짐작이 갈 것이다.

영계의 말에는 이승에서의 말과 다른 특이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으나,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어라 해도 이승 사람들
이 수천 마디를 떠벌이지 않으면 말할 수 없는 것을 영들은 겨우 몇 마디 아니면 몇 십 마디로 통화가 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매우 적은 말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뜻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같은 말을 쓰는 경우일지라도 그 음절(音節)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그 말의 몇 배나 되는 많은 뜻을 표현
할 수가 있고, 또한 자기의 마음에 있는 상념을 음절의 구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에 나타나는 말 이상으로 몇 백배 아니 몇 천 배의 뜻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다.

방금 얘기한 영의 경우도 실은 이런 사연을 아직 잘 몰랐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선배의 영이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 이제부터 얘기해 주려고 생각한 상념이 음절의 구분을 통해 나타났고,
그는 이것을 처음에는 내적인 시각으로 알았고 나중에는 외적인 시각으로 보았던 것이다.

영계의 언어에는 이 외에도 말 그 자체가 엷은 기체의 흔들림처럼 눈에 보이고, 또 그 “보이는 언어” 속에 이야기의 내용이
비치어 영상처럼 두둥실 떠서 보이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이 밖에 영계의 언어에 대해서 말해둘 특징은 다음과 같다.
그 하나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화를 할 수 있는 반면에 마음에 없으면 귓전에서 얘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영계의 말은 인간의 말과 같아서 공기(단, 영계의 공기)를 타고 전달되어 상대방의 귀에 이르게 된다는 점
이다. 이것은 영이 인간과 똑같이 귀와 입과 혀를 갖고 있는 이상 당연한 것이라 하겠다.

젊은 영이 늙은 영에게 아득한 저쪽에 있다고 하는 영계의 황금빛 연못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연못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그 곳을 찾아간 영들 중 돌아온 자는 아직 한 사람도 없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돌아온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은 그 연못이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라고 하니까요.”

이 금빛의 연못이란 영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유명한 연못인데, 실제는 반 전설적인 것이다.
이 연못 - 해안의 높은 암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있다. - 은 황금빛 물결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매우 아름다운 곳이지만 자칫
한번 휩쓸려 들어가면 절대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가 굽이치고 있으며, 그 연못 주변에는 영들 스스로도 모르게 소용
돌이 속으로 끌어 들이는 유혹의 바람이 괴상하게 불어온다고 한다.

젊은 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연못을 다녀온 유일한 영이 꼭 한 분 있는데, 그 영은 여기에서 수천 억 킬로나 떨어진 단체에
있으며, 나는 일찌기 그를 찾아가 금빛 연못에 얘기를 들은바 있습니다.”

늙은 영 - 늙었다고는 하지만 실은 젊은 영보다 영계의 경험이 적으며, 불과 수 일전에 영계로 갓 들어온 영이므로 수백 년 전
에 영계로 들어온 젊은 영 보다도 영계의 경험으로 말하면 젊은 편이다. - 은 처음으로 듣는 연못 얘기를 열심히 귀담아 듣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이 늙은 영은 어쩐지 자기의 주의가 이야기 줄거리와는 다른 그 무엇인가에 쏠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 다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차차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야기 줄거리와는 관계없이 일어난 현상이었으나 젊은 영이 이야기하는 동안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그 말투 가운데
에 일종의 리듬이라고나 할까 끊임없이 미묘한 변화와 억양을 반복하면서 이어가고 있는 점이었다.
그는 여기에 신경이 쏠리자 그때부터는 선배의 영 - 영계에서는 수백 년이나 먼저 영계에 들어온 젊은 영이 선배가 된다.
- 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귓등으로 흘리고 그 리듬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다.

말 속에는 흐르는 리듬이 높아졌다 낮아지고, 그런가 하면 강해졌다가 약해지기도 했으나 그 고저 강약의 폭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을 뿐 아니라 이에 호응하는 것처럼 음색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 늙은 영은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언어의 운율 속에 나타나는 미미한 리듬의 변화와는 별도
로 말의 배열과 음절을 이어가는 격식에 무엇인가 나타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리고 음절에 있어서도 우, 오 등이 자주
뒤따라 나올 때와 이, 아 등이 나오는 두 가지 경우로 들리는 것 같았다.

늙은 영은 이 두 가지의 느낌, 즉 말의 리듬과 배열, 음정의 연결법에 마음이 쏠려 젊은 영이 이야기 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선
반은 흘리고 들었다.
틀림없이 이 속에는 어떤 뜻이 숨겨져 있다! 늙은 영에게는 그러한 느낌이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는데 급기야 다음 순간에
일어난 사태는 그의 이러한 공상을 단번에 날려 버리는 놀라움을 던져 주었다.

굉장한 진동과 함께 그가 서있는 지면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 갈라진 틈으로 그의 눈은 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영계의 끝까지 삽시간에 뻗어 나갔다.
그 틈바구니에는 깊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암흑의 심연이 깔려 있었다.

그는 기절할 정도로 놀랐으나 그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갈라진 틈에서 한 권의 두루마리 비슷한 것이 나타나 그의 발아래에 와서 멈추더니 스스로소리도 없이 풀리어 슬슬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처럼 큰 이변이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젊은 영은 전혀 모르고 있는 듯 여전히 아까부터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 두루마리에는 그 젊은 영이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일상의 기록과 이제까지 지내온 영계에서의 기록, 그리고 이제부터 그가 영계에 보낼 영원한 미래의 삶에 대한 기록까지도 적혀 있었다.

인간의 감각은 영의 그것에 비하면 수천 배 아니 그 보다도 훨씬 더 둔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약 영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영들 사이에서는 상대편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말하는 사람의 의사, 감정, 지성의 전부가 뚜렷하게 눈에 보이듯이
비친다.

의지와 감정은 그 말의 미비한 리듬의 변화 속에, 지성은 말과 음절의 무의식적인 배열 속에 나타난다.
이것은 1만 킬로나 떨어진 곳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것처럼 희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지만 영은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영은 그 말을 자기 마음의 상태 그대로, 스스로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소리 내어 이야기 한다. 거기에는 인간과 같이 여러
가지 번잡한 조심성이라든가 판단에 구애받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러한 사실로도 대개 짐작이 가겠지만 영의 말은 전부 순백의 눈처럼 그의 본심 그대로이다.
그리고 그 본심 속의 어떠한 미세하며 미묘하고 희미한 것일지라도 그는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과 인간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영의 민감한 감수성으로 말미암아 듣는 이는 말하는 영의 전부를 알 수가 있다.

의지와 감성과 지성은 영의 경우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본성을 결정하는 전부이며, 마음의 본성이 결국은 그 인간이나
일생을 결정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면 아까의 두루마리가 늙은 영 앞에 나타난 이유를 짐작하리라 믿는다. 그렇다.
늙은 영은 젊은 영이 이야기할 때, 이야기 내용을 듣는 것과는 다른 그의 마음 전부를 음성에서의 리듬의 변화와 음색 그리고
음절 및 말의 배열 속에서 느낄 수가 있었고, 다시 이것이 표상으로서 두루마리를 통해 젊은 영의 생애가 펼쳐진 것을 보았음
에 지나지 않는다.

영계에 언어가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듯이 문자도 또한 존재한다. 그러나 영계의 문자는 그 모양이나 사용하는
방법 등 여러 면에서 인간계의 문자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 가장 큰 차이점은 영계의 문자에는 곡선이 많고 문장을 통한 전체적인 인상 또한 그렇다. 또 하나는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
한 상징으로서의 숫자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며, 역시 영계의 언어가 그러한 것처럼 영계의 문자도 인간계의 문자에 비하면 적은 수의 문자 속에 어마어마한 뜻이 담겨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영계의 글자는 복잡, 미묘, 정묘해서 지금 인간계로 돌아와 지금 이 수기를 쓰고 있는 나로서는 정확히 그 전부를 기억해 낼 수는 없으나, 그 글자가 품고 있는 의미라든가 사용 방법에 대한 예를 들어서 인간의 글자로 고쳐 본다면 다음과 같이 표현
된다.

영계의 상례로 처음에는 숫자가 적히고 다음에 문장이 씌어진다. 숫자가 품고 있는 뜻은 퍽 넓으며, 수많은 복잡한 표시, 예를 들면 12, 25, ...... 104 등과 같은 것인데, 이 숫자가 문장 전체의 취지와 쓴 자가 누구인가, 언제 무엇 때문에 썼는가 등을 빠짐없이 나타낸다. 우리들은 여기에 적힌 11이라는 숫자가 어느 정도의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뜻을 간직하고 있으랴 하고 생각하지만, 영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다음 항에 가서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문장에 대한 것을 먼저 설명하기로 한다.
이 문장은 “마음의 상태 - 영의 상태를 말한다 - 가 양호할 때에 영과 상념의 교류를 한다. 이에 참가할 뜻이 있는가.” 라고 말하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이 문장 속에는 우리의 글자로 바꾼다면, 아마 한 권의 책이 될 정도로 많은 뜻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 문장을 읽은 영에게는 그것이 이해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앞서 숫자 속에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거나 마찬가지여서 그 선의 굽은 각도, 씌어 있는 위치, 앞 글자와 다음 글자와의 간격, 글자의 크기와 경사(傾斜), 같은 글자라도 그 모양의 사소한 차이 등을 이용해서 영들은 많은 뜻을 담아 상대편에게 이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든 예문을 보더라도 어느 단체에 있는 어느 영이 어느 단체의 어느 영에게 보낸 문장인가, 또 상념의 교류를 하고 있는 영은 어디에 사는 어느 영인가, 그것은 언제 하는가, 상대편 영은 어떤 성격을 가진 영인가, 왜 글을 보내는가 등 당면한 용건이 모조리 담겨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문장을 쓴 영의 단체는 어디에 있고 얼마나 많은 영들이 있으며 또한 어떤 상태에 있는가, 그 단체에 속해있는 영의 개개의 성격은 어떠한가에 대해서 낱낱이 적혀 있는 셈이다.
이런 일은 인간계에서는 도저히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이 많은 뜻이 먼저 말한 글자의 곡선이 굽은 모양이라든가 글자의 배치 등으로 틀림없이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 글자를 읽은 영은 이 글을 쓴 영의 얼굴 모습이 떠오를 뿐 아니라, 적혀 있는 글에 따라서는 이미지 조차도 그의 시계 속에 표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계의 글자에는 곡선이 많다고 말한바 있지만, 내가 영계에서 최초로 본 글자는 어딘지 모르게 이집트의 신성(神聖) 문자라든가 그리이스 문자를 닮은 것 같았고, 아니면 어린아이가 아무 뜻도 모르고 그린 장난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글자와 글자 사이가 영결되어 있기도 하고 혹은 일정치 않는 제멋대로의 간격으로 띄어 썼거나, 곡선이 큰가하면 작기도 하고, 또 동일한 문자이면서도 왼쪽으로 뚝 튀어 나왔는가하면 반대로 오른쪽이 불룩한 것 같이 보였다. 또 곡선의 굽어진 품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어서 이것 역시 그 속에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로서는 그저 걸맞지 않는 인상만을 받았다고 기억한다.
또한 영계의 문자가 이집트의 신성 문자와 그리이스의 문자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풍기는 이유는 아주 먼 태고적, 아직 인류가 문자를 갖지 않았던 옛날에 그들이 영계의 문자를 빌려 썼다고 하니까, 그 흔적이 신성 문자와 같은 고대문자에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영계의 글자가 영계의 말과 같이 많은 뜻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역시 언어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리고 또 표현상의 뜻으로부터 더욱 깊은 곳까지 이르는 영의 감정이나 의지나 지성까지도 표현하기 위한 것임은 말의 경우와 같은 것이다. 즉 곡선이나 글자의 모양, 배치로써 글자의 표현에 나타난 뜻 이상으로 뜻을 표현함과 동시에 문장 속에 포함되어 있는 리듬의 흐름 - 영계의 글자에서는 음악의 리듬처럼 음으로써 귀에 들리는 경우도 있다. 즉 글자가 소리를 낸다 - 이나 글자의 선택 방법에서 틀림없이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인 것이다.
나는 영계에 갓 들어와 아직 경력이 많지 않는 영을 상대로 다른 영이 글자에 대해서 설명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이 글자를 읽어 보라” 이렇게 말하면서 그 영은 새로 온 영에게 작은 종이쪽지를 주는 것이었다. 새로운 영은 영계의 글자는 물론 인간 세계에 있었을 시절에도 글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런데 그는 받은 종이쪽지를 들여다보고는 눈이 휘둥그렇게 떴다.
“내가 글을 읽다니,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 그러자 고참격인 영은 그 종이쪽지를 일단 도로 거두어 앞에 놓고는 그 위에 자기의 손을 얹은 다음 다시 그 종이를 새로 온 영에게 주었다. - 그래서 이제는 영의 글자도 쓸 수가 있다. - 아닌게 아니라 새로 온 영은 종이쪽지에 씌어진 것을 이렇게 읽을 수가 있었다. 다음엔 자기도 똑같이 종이쪽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손은 자유자재로 종이쪽지 위에서 움직였다. 물론 그의 경우에도 글자는 씌어져 있었다.
영계의 글자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글자를 쓰는 경우 영들은 손을 종이 위 공간에 가져가 자유자재로 그리고 무의식중에 움직인다. 그러면 종이에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거침없이 술술 적히는 것이다. 그 글자에는 그들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고 감정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글씨체나 곡선의 변화를 타고 그대로 표현된다.
마지막으로 덧붙여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인간계에서 쓰고 있는 말과 글자가 영계에도 있다는 것이다. 이 인간계의 말과 글자 외에도 몇 백만이라고 하는 말과 글자가 있으니, 이것은 인간계의 말이나 글자로는 표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영계에서는 인간계에 없는 사물이나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영들의 감각이나 마음의 움직임에 있어서 인간계의 말과 글자로는 마땅한 표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어와 문자만을 보더라도 인간계는 영계를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저급한 세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계에서 만난 역사상의 인물.
나는 영계에서 많은 역사상의 인물과, 세상에 있을 때에는 알지도 못했던 이방인들, 즉 아시아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많았다. 그리고 그들과 자유롭게 담화를 할 수가 있었다. 인간 세계에서는 서로 말이 달라서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었던 사람들과도 영계에서는 거리낌 없이 마음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
그 중에는 몇 시간에서 며칠에 걸쳐 이야기한 것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특히 나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몇 가지를 소개하기로 한다.
나는 어떤 영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 내용은 현대의 종교 관계자들이 영에 대해서 너무나도 인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군 이제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 현대의 교회의 관계자들은 고대 교회에서 볼 수 있었던 탁 트인 마음으로 대오각성한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소. 종교는 원래 아시아에서 일어나 점차 여러 나라로 전파되었으니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깨달은 사람이 많을 것이오."
나도 영에 대한 것을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는 내가 한 이야기를 듣자 매우 기뻐하면서 “당신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영적인 뜻이 담겨 있소. 어찌 현대의 종교 관계자들이 그 뜻을 알리요? 나에게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소.”하고 머리를 흔들어 가며 탄식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영계와 영에 대한 일을 인간 세계에 알려야 되겠소. 이것 말고는 세상을 구할 길이 없소.” 이야기하는 도중에 다른 영들이 끼어 들어 엉뚱한 소리를 주장하기도 했으나 그는 일체 개의치 않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엉뚱한 말을 하는 영도 많지만 별로 이상히 여길 건 없소. 이들은 육체적 생애를 보내고 있었을 때에 학자나 종교 관계자들로부터 잘못 배워 그릇된 생각에 젖은 사람들이오. 인간 세계에 퍼지고 있는 그릇된 생각을 일소하지 않고서는 그들로 하여금 진리를 깨닫게 하기는 어려우며, 모든 현대의 학자와 종교관계자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또한 배움이 부족한 것이오.”
<역자 주> 스웨덴브로그는 그의 생전에 사람들에게 역사상의 어떤 인물과도 영계에서 자유롭게 교신할 수 있다고 공언(公言)했다. 그리고 또 요구하는 대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실지로 해 보였기 때문에, 당시 온 유럽에서 불가사의한 인물이요, 영매로서 유명했다.
나는 그의 말에 일일이 맞장구를 쳤으나 이상하게 여긴 것은 그의 말투에서 어딘가 모르게 아름다운 라틴어가 섞여 있음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의 대화에서도 로마의 시이저에 관한 일을 가끔 비쳤고 또 그는 자객 때문에 암살당했다고 밝혔다. 나는 그의 생김새, 언어, 이야기의 내용 및 태도로 보아 그가 키케로(Cicero. B.C 106-43.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 철학자)였으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밖에도 고대 사람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정면으로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는데, 서로 얼굴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들의 생각이 훌륭했던 것은 그들과 얼굴을 마주쳤을 때 그들의 머리 위에 나타난 아름다운 표상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표상들은 그들이 나에게 말하려는 뜻을 그들의 마음을 통해 시각으로 비치게 된 형태로 나타낸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또 성질은 비록 이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순진한 이방인 - <역자 주>중세기에 있어서는 유럽인은 두 인종, 기독교와 그 밖의 이방인으로 나누어 생각했다. - 도 만난 적이 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유럽의 신화에서 골라 슬픈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그는 비탄에 빠져 고통을 참을 길이 없는 표정으로 넋을 잃다시피 되었다. 그는 무지했지만 그 바탕은 순진했다. 나는 어느 날 멀리서 들려오는 합창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는 암양(牡羊), 기장떡, 흑단(黑檀)의 비수 등이 보였다. 물론 마음의 눈으로 본 것이다. 그와 비슷한 동시에 하늘에 떠있는 누각도 심안(心眼)을 통해 나타났다. 이러한 표상으로 보아 합창의 주인공은 중국인이라고 깨달았다.
이윽고 그들이 가까이 오자 짐작했던 대로 일단의 중국인 영이었다. 그들은 나를 보자 마음속에 약간 혐오감을 느낀 것 같았으며,, 나 자신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혐오감은 그들이 인간 세계에 있었을 당시 그리스도 교도란 그들보다 착하지 않는 생활을 한다고 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과 중국에 관한 일과 아시아 지역의 여러 나라에 관한 일을 이모저모로 이야기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이상으로 소개한 것 외에도 나는 영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역사상 유명했던 사람이며 그의 행적과 인격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곧 그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또한 내가 인간계에서 교제를 하였거나 얼굴을 잘 아는 사람들로서 영계에서 만난 예는 수천 건에 달할 정도로 많았다. 그들은 영계에 와서 얼굴이 달라진 자도 많았고 또 반대로 인간계에 있을 당시와 별로 변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얼굴 모습이 변한 영들은 인간 세계에 있었을 때에 세상의 예의나 관습 혹은 이해타산이나 모략 따위로 자신의 이념의 본심을 속이면서 거짓 탈을 쓰고 있었던 자들이다.
나는 영계에서 성운(星雲)의 단체라고 불리 우는 단체를 방문하여 태고적 사람의 영과 만난 적이 있다. 이 단체는 영계 안에서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다른 단체와 현저하게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 단체의 영들은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중간 과정인 아득한 태고적 영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단체를 성운의 단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영들의 영시력(靈視力)으로도 확실히 볼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하나의 구름처럼 공중에 떠있는 희미한 덩어리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단체의 중심령은 태고의 영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영이며, 전 영계를 통해서 가장 오래된 영이기 때문에 영계에 관한 것이라면 모든 일에 통달해 있고, 특히 영계에서 일어난 과거의 일도 모조리 그의 기억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영의 영적 능력의 우수성은 영계 안에 있는 모든 영들을 상대로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일시에 상념의 교류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 그는 성운의 단체에 있는 여러 영들과 담소하고 있었다. 내가 찾아가자 둘러싼 여러 영들을 물러서게 하고 나를 곁으로 가까이 불렀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영들은 모두가 나를 환영하는 뜻으로 나에게 얼굴을 돌렸으나, 그 얼굴에는 한결같이 깨끗한 마음씨와 순박한 표정이 나타나 있었으며, 마치 동심이 그대로 얼굴이 되었을 것 같은 부드러움과 평화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대는 현대의 영이렸다. 그렇다면 내가 영계에서 경험한 옛일을 이야기 해주지.” 그는 내가 그에게 들어보고자 했던 일을 앞질러 짐작하고 말문을 열었다. 그가 영계에 들어온 후의 몇 백 만 년 전부터의 일을 여러 가지 들려주었는데 그 중에서 두세 가지만 골라 적어보기로 한다.
어느 때 - 그것은 몇 백 만년전의 일이었는지, 몇 십 만년전의 일이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다고 했다. - 그는 그림자처럼 영계를 방황하는 몇 사람의 영을 본적이 있었다. 이들의 몰골은 보통 영들과 달랐고. 그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영이 몇 사람씩 무리를 지어 있다는 것이 그의 주의를 끌었다. 그래서 그는 이 영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러자 그에게는 이 영들이 일시적으로 육체를 이탈하여 인간계를 떠났고, 게다가 정령계에서도 얼마 있지 않고 - 아마도 전혀 있지 않았다 해도 좋을 것이다. 그저 정령계를 지나쳤을 뿐인 모습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 불쑥 영계에 들어온 자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더구나 그들은 대홍수를 만나 죽을 영들임을 알았다.
과연 그의 눈은 정확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몇 백만이라는 인간의 영이 한꺼번에 영계로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영들 가운데에는 아직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자가 있어 그에게 물어 보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집트의 나일 강이 범람하여 밭과 집이 다 떠내려가 숨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으로 영계에 무리지어 나타난 영들은 특히 영적인 눈이 빨리 열린 자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홍수로 인한 죽음에 앞서 미리 이를 예감하고 그들은 육체를 이탈해서 영계로 나타난 자들이다.”
그는 다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인간계와 영계의 관계를 과거에는 황금시대, 백은(白銀)시대, 청동시대가 있었다고 말하고 현재는 철시대(鐵時代)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 이상한 무리 영들처럼 일어난 현상은 근래에 와서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철시대이기 때문이다. 황금 시대에는 물론이거니와 과거의 백은 시대만 해도 가끔 일어났던 일이었다.”
황금시대니 백은시대니 하는 말을 처음 듣는 나로서는 그 뜻을 전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즉, 과거 특히 태고의 인간이 아직 자연, 그대로인 마음의 소유자였을 때는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일을 한결같이 곧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태고의 인간들의 마음은 영계나 영의 일에 대해서 근래의 사람들 보다 훨씬 트여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태고의 사람들은 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세속적인 일이나 물질적인 일, 그리고 외면적인 지식과 학문 따위, 즉 영들의 말을 빌리면 “정도가 낮은”일에 쏠리었고 그로 말미암아 영계의 일과는 점차 멀어지게 되었다.
영계와 인간계의 관계는 태고로 갈수록 긴밀한 것이었으나, 시대의 경과에 따라 소원해지고 현재에 이르러선 전혀 관계가 없는 양 따로따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인간들은 영이나 영계조차 깨닫지를 못하게 되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태고시대를 황금시대 그 다음을 백은시대, 그리고 청동시대, 철시대라고 구분하여 부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계에 새로 들어오는 영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적인 각성의 정도가 뒤떨어져 그들이 영적인 각성을 터득하는 데 필요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도 알 수가 있다.
나는 그의 설명과 내가 앞서 설명한 키케로의 이야기에는 서로 공통되는 그 무엇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 무리지은 영들은 인간 시절에 이미 영적으로 상당한 경지에까지 눈떴던 자들이며, 따라서 그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알았고 또한 죽기 전에 그 육체를 벗어나 영계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하의 영계는 지옥.
많은 영들이 어느 영의 둘레를 동그랗게 감싸고 앉아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궁금하고 호기심에 끌려 가까이 가 보았다. 그것은 원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영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광경이었다. 열심히 귀를 기울려 듣고 있는 영들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아 그 이야기가 퍽 재미있는 내용이라 생각되며, 또 그들이 모두 흥분을 느끼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한 것이었다.
나는 그때 얼핏 사람(영)의 말소리를 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잠에서 깨어나 멍청하게 주위를 돌아보았다. 주위는 평소 때보다 꽤 어두웠는데,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려니 생각하고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잠시 후 눈을 비비고 보았으나 여전히 주위는 어두웠다. 이미 그 무렵엔 잠도 말짱히 가시었을 때이므로 참으로 이상하다. 어떻게 된 일인가 하고 문득 의심이 났다.
그러는 순간 나는 일찍이 보지 못했던 광경을 눈앞에 두고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랐다. 희미한 한 줄기 빛으로 밝혀지고 있는 어둠 속에서 많은 영들이 마치 여러 영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듯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한 복판에 몸집 큰 한 영이 서서 무어라 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만 이라면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를 놀라게 한 하나는 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하의 큰 동굴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과 그곳에 있는 영들의 얼굴 모습이나 몸짓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어서 각각 다른 얼굴이었는데, 한결같이 이야기에서 듣던 지옥의 흉악한 귀신을 생각게 하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자들뿐이었다. 지옥의 귀신이라면 옛 이야기에서나 듣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눈앞에 실지로 나타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들의 얼굴은 어떤 놈은 눈이 퀭하니 뚫려 해골처럼 어두운 구멍을 드러내고 있으며 볼에는 살이 없었다. 또 어떤 놈은 기분 나쁜 이빨을 드러내고 희죽희죽 야비한 웃음을 띄고 있으며, 어떤 놈은 얼굴 한쪽이 달아나 버린 반쪽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또 짐승을 방불케 하는 얼굴이나 망령으로밖에는 형용할 수 없는 모습을 가진 자 등, 갖가지 해괴망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한복판에서 떠들어대고 있는 영이었다. 그는 키도 다른 영들보다 배나 되어 보이는 거인이었고, 얼굴 전체를 뒤덮을 듯한 두 눈을 부라리었고 번뜩이면서 귀까지 찢어진 큰 입을 벌려 시뻘건 혀를 뱀처럼 널름거리며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나의 놀라움과 두려움은 도저히 설명할 도리가 없을 정도였으나 배에 힘을 주고 이를 악물어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역시 지하의 동굴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았다. 단지 보통 동굴과 다른 것이, 이 동굴은 얼마나 깊은지 그 안쪽의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무한한 깊이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나에게 확신을 주는 것 같았다. 또한 그 아늑한 안쪽에 작은 검붉은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다.
원을 그린 영들의 한 가운데에 서서 외치고 있는 영은 연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대략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이제야 너희들은 지옥계의 영이 된 것이다. 너희들은 지옥계에서 영원한 삶을 누릴 행운아들이다. 항상 지상에 있는 영들을 유혹해서 그들을 어두운 길로 이끌어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너희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더욱더 너희들 자신의 영원한 삶을 축복 받게 되는 것이다. 너희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나는 한 사람에 대하여 환영의 인사를 나눌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그는 괴기한 모습의 영들과 하나하나 기묘한 인사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영들과 인사가 끝나자 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떠벌렸다. “너희들은 저것을 보아라. 저것도 영이란 말이다. 그의 모습이 아무리 추하게 보이더라도 놀라지 말라. 저 영은 이제부터 너희들의 하인으로서 혹사를 당할 영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보고 외쳤다. “너는 이 둘레 안으로 나오라. 우리는 너를 조사해 봐야겠다.” 나의 공포와 굴욕은 더할 나위 없이 커졌다. 그러나 마침 이 때였다. 영계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땅울림이 일어나자 산이 무너져 큰 암석이 하늘에서 비오듯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실제로 산이 무너져 내려앉았고, 큰 바위덩이가 산기슭을 요란스럽게 굴러 떨어지는 광경이 보였다. 나는 두려움에 미친 듯이 소리쳤다. “나는 이제 끝장이다. 나는 산에 깔려 꼼짝없이 죽는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이제 여러분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영계로 돌아와 있었다. 그 산사태는 산밑에 틀어박혀 살고 있는 흉악한 영들을 우리들 단체의 주령이 퇴치해 준 산 사태였던 것이다. 나는 참으로 위기일발의 위험 속에서 살아난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하자 그는 그 순간의 무서웠던 생각이 되살아나는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지금 너희들에게 이야기한 것은 내가 보았던 지옥계의 모습이었다. 지옥계는 참으로 무섭고 불유쾌한 곳이다. 너희들은 마음에 새겨 지옥계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 영의 이야기는 나로서도 처음들은 지옥계의 실제 경험담이다. 그 후 나는 영계의 경험을 쌓아 올림에 따라 지옥계에 관한 일도 자세히 알게 되었으나 다음 몇 항에 걸쳐 지옥계의 갖가지 상황을 적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미리 양해를 얻을 것은 내가 앞으로 기록할 지옥계는 어디까지나 영계 속의 한 세계 - 그것은 추악한 세계지만 - 로서의 지옥계이며, 종교에서 말하는 공포 분위기라든가 사람들을 선으로 이끌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는 가공적인 지옥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정령계를 설명할 때, 인간은 죽은 뒤의 영은 처음 정령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일정한 기간을 보낸 뒤 어떤 자는 영계로 어떤 자는 지옥계로 간다는 것을 약간 비쳤다. 그러면 영계와 지옥계 그리고 정령계는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가?
영의 세계는 지금 말한 세 가지의 세계가 합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이 중에 정령계는 영의 세계에서는 중간 지대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세계이며, 영계와 지옥계는 각기 그 성질을 달리한 영들이 살고 있는 두 개의 다른 세계이다. 영계, 지옥계, 정령계, 그리고 인간계의 관계를 가령 그림으로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정령계로부터는 영계로나 지옥계로도 통로가 있으나 영계와 지옥계 사이에는 이러한 통로가 없으며, 두 세계는 일단 갈라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옥계는 영계의 땅 밑에 있다.
현세에서 나쁜 짓을 하고 부도덕한 생애를 보낸 자는 죽은 후에 지옥으로 끌려가 그 곳에서 영원한 벌을 받는다. 이것은 동양, 서양을 막론하고 온 세계의 종교에서 설교하는 “지옥의 교훈”이므로 새삼스럽게 여기서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교상의 필요에 의해서 지어낸 이야기이며, 전혀 근거가 없는 가공의 이야기라는 것이 나의 견해이다.
내가 말하는 지옥은 이것과는 전혀 다른 곳이며, 더욱이 현세의 죄업을 청산하는 인과응보로 던져지는 지옥도 아니려니와, 지옥에 살고 있다는 사탄 - 마귀의 대왕이나 흉악한 귀신 등 - 에 의해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는 그런 지옥도 아니다. 내가 소개하려는 지옥은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영계 안에 있는 하나의 세계로서 실제로 존재하는 지옥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은 후 정령이 된 자 중에서 어떤 자가 지옥으로 가는가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끝내 영으로서의 눈을 뜨지 못하고 영계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정령들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라고 해서 종교가 말하는 것처럼 현세에서 저지른 악덕 때문에 신의 심판으로 벌을 받기 위해 지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오직 그들이 원하는바에 따라 스스로 지옥을 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이들 영의 세계에 눈뜨지 못한 정령들 가운데에는 확실히 현세에서 악업을 저지른 자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이 점에서 본다면 결과적, 표현적으로는 종교의 교훈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이유는 종교에서 말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지옥으로 가는 정령은 인간으로 있을 때, 물질적인 욕망이나, 색에 대한 욕망, 속된 명예욕 또는 지배욕 등 인간의 외면적이며 표면적인 감각을 즐겁게 하는 일에만 마음을 쓰고 참다운 영적인 사항들은 극단적으로 경멸했던 자들이다. 이들은 영적인 면에서 전혀 눈을 뜨지 못했던 까닭에 정령계로 들어와서도 역시 눈을 뜨지 못하는 자가 많다. 따라서 정령이 된 뒤에도 그들의 마음은 태양의 빛이나 영류를 자기 내부에 흡수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정령계에 오래 머물러 있어도 영계의 태양 빛이나 열이 부여하는 행복이라든가, 영적인 이성의 찬란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그 중간에 있는 지옥계의 불빛에 마음이 끌리어, 심지어는 지옥계의 흉한 영들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의 희망에 따라서 자기 내부에 도사린 흉령적인 마음이 명(命)하는 대로 지옥계로 들어가게 된다. 이것은 인간계에서 말하는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는 현상과 꼭 같은 것이다.
지옥계의 흉한 영들은 영계의 빛이나 영류로 인한 영으로서의 희열과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대신에 자기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것을 기뻐한다. 이러한 욕망들은 다른 흉령들을 지배하거나 다른 영에게 악덕을 행하거나 혹은 다른 영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싶다는 따위의 외면적이고 물질적인 저속한 욕망에 지나지 않지만, 이러한 저급한 욕망을 만족시킨다는 것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것을 "빛"으로 삼고 영원한 삶을 보내게 된다.
영계의 영은 자기들의 생명의 근원과 행복의 원천도 모두 태양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사실은 태양이야말로 주인이며, 이 태양이 영계의 구석구석까지 비치어 다스리고 있는 영계의 질서에 따라서 삶을 영위한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지옥계의 영들은 영적 생명의 근원이 그들 자신의 욕망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 욕망만이 오직 그들의 빛이 된다. 따라서 그들의 주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며, 다른 어떠한 주인도 인정하려 않으려고 한다. 지옥계가 투쟁의 수라장이며 고통과 더러움에 가득 찬 곳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그들 하나하나가 자신이 최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데서 기인한 것이다.
종교계에서는 지옥계의 형벌을 신이 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 역시 전혀 틀린 이야기이다. 지옥계의 벌이란 그 곳에 살고 있는 흉령들 자신이 그 성질 때문에 스스로 불러 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다른 영을 지배하고 이를 학대하며 이들을 희생시킴으로써 자기의 기쁨으로 삼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세계에서는 질서가 없고, 있는 것은 오직 추악한 자기집착에서 빚어지는 대립뿐이다.
거기다가 그들의 악의 처절함은 법률이나 사회의 평판, 상호간의 이해타산 등 인간계에 있었을 때의 여러 가지 속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더욱 적나라하고 무시무시한 악을 거리낌 없이 발휘하여 내어 뿜는다.
얼굴이 반쯤 달아난 흉령, 해골처럼 눈두덩만 삐끔하게 뚫린 흉령 등 기괴한 얼굴 생김새는 그들이 본래 지니고 있던 악의 정체를 영이 된 뒤로부터는 숨김없이 노출 시켰다는 하나의 징표이다. 그들이 아무리 흉하다 할지라도 인간이었을 때에는 그토록 외면적인 용도가 흉측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흉령들이 영계의 태양 빛을 거부하고 있음은 그처럼 기괴한 몰골을 밝은 빛에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계의 태양 빛이 그들에게는 눈부시어 견디지 못한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나는 단 한 번 지옥으로 가는 정령을 따라 지옥에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여기에서는 그 때보았던 지옥의 양상을 자세히 말하기로 한다.
나는 어두운 땅굴 같은 통로를 따라서 지옥으로 들어갔다. 통로를 얼마나 들어갔는지 알 수 없으나, 이윽고 길은 비스듬히 꺽이고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층계는 20~30계단을 셀 수 있을 정도만 보일 뿐, 그 앞은 끝없이 아래를 향해 뻗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주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나는 두려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지만 한 계단 한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주위는 어두움에 쌓여 있었는데, 아주 희미한 빛이 언저리를 비춰주고 있었다. 그 빛이 어디에서 비치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한참동안 계단을 내려가자 똑같은 몇 개인가의 계단으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 중의 한 계단을 골라서 다시 내려갔다. 얼마동안 내려갔을 때, 시커먼 안개 속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러나 잠시 후 안개 속에서 눈이 익숙해지자 먼 곳에 붉은 색깔을 띤 작은 빛이 보였다. 그리고 그 시커먼 안개 밑에는 땅이 보인 듯 했다. 나는 땅에 내려서기 위해 층계를 밟아 내려갔다. 그러나 그곳은 계단의 층계참(層階站)처럼 조금 넓직한 장소였다. 여기에 서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빛이라고는 오직 아까 보았던 희미한 불빛뿐이었다.
희미한 불빛, 그것은 흡사 영계의 태양처럼 무한한 저쪽에 있었는데 밝기와 빛깔은 달랐다. 이 희미한 불빛은 의지해서 살펴본 결과 층계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은 그게 아니라 넓고 넓은 세계의 입구라는 것을 알았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짐에 따라 차차 그곳에 펼쳐진 세계가 영계와도 같은 광대무변한 넓은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곳에도 역시 영계에서처럼 많은 영이 영원한 삶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이 영들의 모습, 형상, 얼굴, 생김새는 앞서 말한 것처럼 너나 할 것 없이 추하기 짝이 없어 도저히 같은 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떤 자는 얼굴이 검고 추하며, 또 어떤 자는 얼굴에 온통 더러운 곰보자국이 나있고, 어떤 자는 무서운 이빨을 들이 내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역시 영들의 집과 마을 그리고 나무 등.........영계에 있는 것은 전부 있는 것 같았으나, 이것 역시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모습을 한데다가 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악취는 코를 찌를 듯이 풍겨오고 있었다.
나는 이 이상한 세계를 희미한 불빛 한 가닥에 의지해서 그 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면서 보아도 이 세계의 모습은 하나같이 기분 나쁜 것이었다. 어느 거리인지 꺽이는 곳에 다다르자 느닷없이 하나의 영이 뛰쳐나왔다. 그는 무엇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큰 소리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그러자 그를 쫓아온 듯 다른 흉령이 뛰어 나와서 역시 같은 소리를 지르며 악을 썼다. 놀란 내가 멍하니 보고 있을 틈도 없이 이번에는 이 골목 저 골목에서 한결같이 추하고 괴상한 얼굴의 흉령(凶靈)들이 몇 백 몇 천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추악한 얼굴을 더한층 추하게 일그러트리고 큰소리로 무엇인가를 외치며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물론 나로서는 그들의 떠벌리는 말뜻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말속에는 노여움과 미움과 복수의 집념과 거짓이 깔려 있었고, 그 말투도 차마 듣고 견딜 수 없는 것이어서 온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빳빳해졌다.
그러나 이어서 벌어진 사건은 나로 하여금 한층 더 견딜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그들 전원이 제일 먼저 길모퉁이에서 뛰어 나왔던 흉령에게로 덤벼들었다. 어떤 자는 그를 구타하고, 어떤 자는 돌을 던지고, 어떤 자는 밀어붙이고, 심지어는 눈이나 이 사이에 막대기나 손가락을 쑤셔 넣어 못살게 구는 자도 있었다. 고통에 못 이겨 내지르는 그의 비명소리와 그 괴로운 표정은 나에게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주었다. 그러나 그 수많은 흉령들은 그가 비명을 지를 때마다 신이 난다는 듯이 더욱더 잔악한 행위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끔찍한 참상에 눈을 가리고 그 곳을 벗어나 또 다른 조그마한 불빛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서 그 곳에서도 역시 앞서와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침착하게 이 세계 전체를 흝어 보았다. 그리하여 내가 발견한 것은 이 광대한 세계 도처에서 같은 사건이 몇 천, 몇 만이나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이것이 바로 지옥의 업보(業報)요 고통이라는 것을 이 때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얼마동안 걸어가던 나는 또 계단이 있는 곳에 다달았다. 이 추악한 세계에서 견디기 어려운 충격을 받은 나는 이 곳을 빨리 빠져나가려고 급히 걸음을 재촉하여 층계를 내려갔다. 그런데 거기에서 목격한 것은 아까 보던 세계보다도 더 한층 추악하고 기괴한 세계여서 나는 지쳐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다. 흉령들의 얼굴, 몰골, 외형이 더욱 추하고 무서웠으며,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이 마치 호응이라도 하듯이 아까 본 세계보다도 더욱 괴상하고 추하였으며 코를 찌르는 악취마저도 더욱 심한 곳이었다.
나는 이 추악한 세계로부터 어디를 어떻게 해서 빠져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본 것을 좀더 소개하고, 지옥의 세계가 어떤 것인가를 간단히 추려서 설명하기로 한다.
지옥의 세계도 영계와 마찬가지로 세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세계는 위에서 굽어보면 밑바닥이 없는 늪처럼 시커먼 안개 속에 펼쳐 있으며, 밑으로 내려 갈수록 흉악한 영이 사는 무서운 세계가 된다. 그러므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세계는 그야말로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가공할 지옥과 비슷한 공포에 쌓인 곳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지옥이라고 하지만, 거기에는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지옥의 세계는 천차만별의 차이점을 가졌고,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그 어느 세계나 추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과 흉악한 영들이 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증오, 경멸, 보복 따위의 분위기와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이다.
내가 본 바로는 지옥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어떤 지옥에서는 쓰레기와 분뇨들만이 있었고, 또 음탕한 방만 있는 지옥도 있었으며, 화재를 만나 타다 남은 폐허와도 같은 인상을 주는 지옥도 있었다. 무섭게 보이는 우거진 숲 같은 지옥에서는 흉령들이 맹수처럼 숲 속을 방황하고 있기도 했다.
또한 지옥의 흉령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리 흉악스럽고, 흉악한 행동을 자행한다고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생기를 잃고 마치 시체에서 느끼는 것처럼 “죽음”의 인상을 강하게 풍겨주는 점이다. 이것은 영계의 참다운 근원인 영계의 태양과 연관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더 말해둘 일이 있다. 그것은 지옥계에서 본 희미한 빛의 정체인데 이 빛은 실은 인간계, 즉 자연계 태양의 빛이었다. 아직도 물질계에 대한 욕망이나 집념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흉령인지라 물질계의 태양 빛과 연관을 갖고 살아가려는 태도를 죽은지 몇 만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태양이 영의 세계에서는 빛도 힘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자연계의 태양뿐임을 알 수 있다. 영계에서는 이 관계는 정반대로 되어 있다.
나는 여기서 역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A와 B의 두 힘의 크기는 같고 힘의 방향이 정반대라고 하자. 이 때의 두 힘은 각자의 힘으로써 존재하고 있지만, 두 힘을 중앙에서 하나로 이어 버린다고 하면 결과는 제로가 되어 아무런 힘도 작용하고 있지 않는 것과 같게 된다.
이것이 즉 힘의 평형인 것이다. 이 때 중간에 C라고 하는 힘을 개입시킨다고 하자. 그렇게 되면 C라고 하는 힘이 아무리 적다고 하더라도 그 C의 힘의 크기와 방향이 A, B, C 전체의 힘의 크기와 방향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즉 A, B가 아무리 C에 비해서 그 힘이 크다 할 지라도 “결정권”을 갖게 되는 것은 C이며, 여기서 C는 자유의사를 작용시킬 수 있는 여지를 지니게 된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지옥계에서 영계을 보면, 영계의 태양과 지옥계 사이에는 항상 일종의 시커먼 구름이 떠 있다. 이 검은 구름이 영계의 태양 빛과 영류가 지옥으로 뻗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이 검은 구름의 정체는 실은 지옥의 흉령들이 지닌 상념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계에 살고 있는 영의 작은 단체 위에 뒤덮여 있는 검은 구름은 그 단체를 덮을 만큼 큰 것이며, 또 큰 단체 위에 덮여있는 검은 구름 역시 그 단체의 크기만큼 큰 것이다.
이에 대해서 영계에 있는 태양 빛과 영류는 항상 검은 구름을 모아 흩어지게 하고 빛과 영류를 지옥계까지도 작용하게 한다. 여기서는 언제나 이와 같은 투쟁이 되풀이되고 있는 셈이다. 때로 영계의 태양의 힘이 우세할 경우는 빛과 영류가 지옥계에 도달하여 흉령들로 하여금 죽음의 고통을 맛보게 한다. 흉령들은 이 고통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검은 구름의 힘을 강하게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
영계의 땅이 표면에서 특히 산이나 바위가 있는 곳, 초원의 웅덩이와 같은 여기저기 그늘진 부분에서 볼 수 있는 그 갈라진 틈에는 기괴한 모양의 동굴 입구처럼 생긴 것이 있다. 어떤 곳은 진흙의 진창 같기도 하고 썩은 물처럼 보이기도 하며 또는 소용돌이 같기도 하여 제각기 다른데, 이런 곳에서는 때때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연기나 불길이 솟아오른다. 이것은 그 밑에 있는 지옥계가 영계를 침식하려고 덤비는 모습인 것이다. 이에 대항하여 영계는 산사태를 일으키기도 하고 바위를 굴러 떨어뜨려서 이를 막아버린다.
영계의 상, 중, 하의 세 세계가 있는 것처럼 지옥계에도 세 개의 세계가 그 흉폭성을 달리한 채로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영계와 지옥계의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영계와 지옥계는 평행을 유지한 속에서 함께 존재하고 있다. 이 평행이 무너져서 영계가 없어진다면 지옥계가 존재하지 못한다. 반대로 지옥계가 없으면 영계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평형의 원칙인 것이다.
또 각기 다른 이 두 개의 세계가 평행을 유지하고 있는 한, 인간의 사후(死後)의 첫 관문인 정령계에 있는 정령들에게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정령의 자유는 결국 인간의 자유와 같은 것이므로 인간의 자유도 이러한 형태로 보증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간은 내가 앞에서 말한 역학의 예에서 작은 힘 C에 해당된다. 인간이 그 마음에 따라서 A, B 어느 쪽으로 방향을 선택하든지 그것은 자유이다.
영계에 사는 영들이 생기에 넘치고 영적 이성에 마음이 열려 있는데 비해, 지옥계의 흉령들은 죽음의 그림자를 풍기고 있는 것도 두 세계의 평형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덧붙여 말해 둘 것이 있다. 영계에서 영들에게 참다운 생명과 이성과 행복을 주는 근원은 영계의 태양 하나 밖에 없다. 또 참다운 권위나 힘의 근원도 이 태양뿐이다. 지옥의 불빛(자연계의 태양)은 영계에 있어서는 이와 같은 힘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영계의 영과 지옥계의 흉령의 차이도 결국 이들 영과 흉령이 두 개의 태양 중 어느 쪽의 빛을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생기는 셈이다.

어떤 영계로 가는가.
영계에는 상, 중, 하의 3세계가 있고, 그 외에도 “지하의 영계”라고 할 수 있는 지옥계라는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영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마당에 나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말하기로 한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인간계에서 우리의 생애와 죽은 뒤에 우리가 가야할 영계의 세계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또 있다면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하는 문제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관계가 있는가 하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인간 시절의 생애가 그대로 죽은 후에 그가 영원한 삶을 보내게 될 세계를 거의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미 종교의 가르침을 통해 귀가 아프도록 들은 것 또는 종교의 교의처럼 종교상의 한 방편이며 가공적인 것을 반복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비슷한 점이 있고, 또 결과에 있어서 종교에서 설교하는 것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종교에서 말하는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이에 대해서 앞에서 지옥계를 소개할 때에 언급했으므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으리라 믿는다.
즉, 종교가 말하는 요점은 그 교의에 맞는 생애를 올바르게 보내면 죽은 후에 그 보수로서 행복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반면, 그 종교의 교의에 어긋나는 잘못된 생활을 하면 그 벌로서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계에서는 영들이 행복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또 반대로 지옥계로 들어가는 것도 결코 인간계에서의 생애에 대한 보수나 벌로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었을 때의 생애에 있어서 영적인 내심(內心)이 영계의 어느 세계에 가장 알맞게 대응할 수 있는 상태였던가에 따라서 사후의 그의 영 스스로가 스스로의 의사에 의해서 자유로이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좀더 간단히 알기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다. 영계의 상 세계는 중 세계보다 밝은 빛으로 가득한 세계다. 그러나 밝은 세계에서 살자면 인간의 경우로 따진다면 그의 눈이 그 빛에 견딜 수 있고, 그 빛에 맞지 않아서는 안 된다.
만약 그의 눈이 그처럼 밝은 빛의 강도에 견딜 수 없는 것이라면 그는 좀더 어두운 세계를 스스로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 세계에서 살자면 영의 영적인 마음의 창, 즉 영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창이 그만큼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중 세계나 하 세계의 영류에 알맞은 창을 가진 영이 상 세계로 들어간다면, 그는 영류의 강도나 빛의 밝음에 견딜 수가 없어 고통을 느끼게 되고, 따라서 영적인 영원한 생을 영위할 수 없게 된다.
요컨대 영적인 영류의 창이 어느 정도로 열려 있는가에 따라서 그의 사후의 세계가 결정되는 것인데, 바로 그 창의 개방 정도는 인간으로 말하면 생애를 통해 얼마나 영적인 마음의 창을 열고 살았는가에 따른 결과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인간의 생애가 영적인 창을 활짝 연 생애이며, 어떠한 생애가 창을 열지 않는 생애인가? 여기에 이르러선 누구나가 하나의 의문점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영이라든가 영적인 창이라든가, 영적으로 눈이 뜬 인간의 생애라든가 하는 것은 어려운 말만 써서, 영에 관한 것은 너무나 깊고 지나치게 높은 경지이므로 인간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는 바로서는 이러한 생각 자체가 이미 “곧바른 마음”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잘못된 감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가 육체를 가진 물질계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계와 물질계의 양쪽에 속해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인 일을 생각한다는 것은 조금도 곤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마음의 창이 열린 생애란 쉽게 말해서 영계의 질서를 알고, 이에 유순하게 따르는 생애를 보낸다는 것이다. 영계의 질서는 인간에게 유순한 마음만 있다면 그 존재를 느낄 수 있고, 또 그 모습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성에 의해서 깨닫는다는 것도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자연계와 영계 사이는 상응의 이치에 따라 많은 사물에 있어 상응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계 즉 자연계에 있는 것은 그에 상응 하는 것이 영계에도 빠짐없이 있는 것이다. 쉬운 예로 영 그 자체가 인간의 육체와 너무나도 닮은 존재, 인간의 상응물(相應物)임은 이미 이제까지의 설명으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마음을 유순히 하고 자연계를 바라보자. 새나 짐승 그리고 곤충들의 동물계, 나무와 같은 식물계 등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는 불가사의한 자연의 질서를 따라 생활하고 있다. 이 불가사의한 질서에 솔직히 감탄하고 그 질서에 순응해서 유순한 마음으로 생활하는 인간은 이미 그 마음속에 영계의 질서를 어느 정도 감지한 사람들이다.
영계의 질서가 자연계의 질서와 다른 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질서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인간적 사고를 초월한 통일적 세계라는 점에서는 아무것도 다를 바가 없다. 이러한 질서를 가령 희미하게나마 자기의 마음속에 느끼고, 이 질서에 따라 생애를 보내는 사람들은 영적인 마음의 창이 열려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죽어서 영계에 들어가게 되면 즉시 영계의 질서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이에 따른 영으로서의 생활을 실천하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에 비해 영으로서의 마음의 창이 그다지 열려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정도에 따라서 중 세계 또는 하 세계로 가게 되고, 그 창이 전혀 열려 있지 않는 사람들은 영계의 빛을 견뎌내지를 못하기 때문에 지옥계로 가게 되는 것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교리는 그 교리가 진정한 것이라면 이를 따른다는 것은 곧 영적인 마음의 창을 여는 데에 필요한 요건이 된다. 그러나 단지 그것만으로 마음의 창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몇 번이나 말했듯이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인 것이다.
또 표면적, 외면적, 세속적 지식이 영으로서의 마음의 창을 열게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대개의 경우 그와는 반대로 마음의 창을 닫아버리는 일조차도 있다. 나는 영계에서 인간계 시절에 학자, 현인(賢人)으로서 숭앙받던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이성에 있어서는 사회적 지식이 없었던 사람보다도 오히려 뒤진 삶을 보내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보아 왔다. 그것은 지식이나 학문을 영적인 마음의 창을 열기위한 방법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인간계를 살아가는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그들의 “곧바른 마음”을 잃음으로써 빚어진 결과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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