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9일 금요일
[기고/유영진]텅 빈 아이폰, 꽉 찬 국산을 앞서는 이유
2010-02-20 03:00 2010-02-20 03:00
최근 강의를 하느라 2주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찾은 한국은 어디를 가도 애플사의 아이폰이 단연 화제였다. 평소 정보기술(IT)과 거리가 먼 친구들도 “아이폰은 역시 콘텐츠가 풍부해. 그런데 배터리는 좀 문제라던데?”라며 빠지지 않았다.
아이폰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올까.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비교할 때 화질 음질 가격 및 데이터 처리와 전송 속도, 디자인 등 하드웨어를 따진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이폰의 파괴적 영향력을 이해할 수 없다.
필자는 아이폰의 위력을 ‘14만’이라 표현한다. 아이폰용으로 애플 앱스토어에 올라온 애플리케이션의 수다. 애플사가 직접 만든 애플리케이션은 거의 없다. 애플의 역할은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플랫폼을 만드는 데 그친다. 아이폰이 이처럼 많은 애플리케이션을 갖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는 완벽한 공백(perfect incom-pleteness)이다. 아이폰은 의도적으로 많은 공백을 남겨둔 미완성품이다. 빈자리는 소비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할 때 메울 수 있다. 의도적인 공백은 성공한 디지털 제품이 갖는 중요한 속성이다. 40년 전 처음 개발된 인터넷은 다른 네트워크에 비해 빈 곳이 많은 시스템이었다. 트위터 역시 처음 공개됐을 때는 140자를 올릴 수 있는 단순한 웹사이트에 불과했다. 디지털 이노베이션에 있어 완벽한 공백은 핵심 디자인 요소이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
아바타 덕본 쇼핑몰
범법 경찰 2배↑
다른 하나는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생태계의 다양성(heterogeneity)이다. 아이폰 앱스토어의 강점은 단지 애플리케이션의 수가 아니라 다양성과 거기에서 나오는 역동성에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뿐만 아니라 수많은 개인 전문 개발자, 일반인과 학생이 기발한 애플리케이션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그것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촉발한다. 다양성과 역동성은 디지털 혁신이 갖는 또 다른 일반적 특성이다.
이와 같은 디지털 이노베이션의 두 가지 특성은 한국인, 한국 기업에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던져준다. 우리 문화는 여백의 문화이다. 꽉 채우기보다 비움을 중시한다. 이는 ‘빨리빨리’로 통하는 역동성과도 닿아있다. 과거에는 이런 특성이 부정적으로 인식됐다. 여백은 대충으로, 속도를 중시하는 역동성은 조급함으로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플랫폼이 지배하는 디지털 시대에 혁신에 성공하려면 남다른 직관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여백과 역동성은 탁월한 직관력을 갖게 하는 문화역량이다. 우리가 세계 최초로 MP3플레이어를 개발하고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의 원조 격인 싸이월드를 생각해낸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반면 단일 민족의 순수성을 강조하는 배타적인 문화는 경계해야 할 요인이다. 개발자 생태계의 다양성은 배타적 토양에서는 결코 뿌리내릴 수 없다. 세계 최초의 MP3플레이어나 싸이월드가 제대로 뻗어가지 못한 것은 우리 기업의 폐쇄성이 창조적 공백에서 나온 직관력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이노베이션은 단순히 기술력만 있다고 되지 않는다. 문화적 역량에서 비롯된 완벽한 공백과 생태계의 다양성이 기술과 경영전략에 묻어난 결과가 곧 디지털 혁신이다. 우리는 다행히 창조적 공백에 대한 안목을 타고나 새로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직관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 창조적 공백을 어떻게 채워 나가는가 하는 점이다. 배타적 문화와 경영구조를 어떻게 개방적이고 다문화적으로 바꿔가는가에 디지털 이노베이션의 성패가 달려 있다.
유영진 미국 템플대 경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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