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2일 금요일

[람타] 14. 삶의 목적

[람타] 14. 삶의 목적

14. 삶의 목적

하느님이 당신에게 바라는 유일한 것은 알고, 기뻐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처럼 존재하게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당신들 각자의 삶에서, 그 목적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인간이 되고, 특정한 직업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도록 양육되었고, 가족이나 사회는 확실히 그렇게 되도록 주의 깊게 감시한다. 너무나 나쁜 분위기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나 구원자 또는 치유자가 되기 위해 이곳에 보내졌다고 상상하는 이들도 있다. 참으로 고상하다. 그리고 또 다른 많은 이들은 조심스럽게 나아가야 할, 하느님에게 이르는 좁고 경건한 길을 끈기 있게 찾아가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느낀다. 얼마나 따분한가.

아무도 목적을 가지고 이 지상에 내려오지 않았다. 아버지 하느님은 당신에게, 기쁨이 어떤 의미이든, 기뻐하라는 것 한 가지 외에는 당신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시를 내려주지 않았다. 당신에게 바라는 이 한 가지 소망은 존재의 궁극 원리이다. 왜냐하면 소중하고 신성한 자아 안에서 당신이 더 행복하고 더 기쁘게 살아갈수록, 생명이 있는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고 하느님의 존재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행복하고 기뻐하는 것이 하느님이 당신에게 바라는 유일한 소망이다. 실로 이것이 가장 고귀한 감성적 가치이다. 삶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가 이것이다. 어느 세상에 살아가든지, 어떤 이해를 성취하든지 상관없이, 기쁨을 이해하고 기뻐하는 것, 이것이 하느님이 전 인류에게 부여한 운명이다. 당신이 기쁨과 행복의 상태로 돌아오면 하느님의 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기쁨 자체가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항상 기쁨 속에 있다는 것이 바로 있음이다.

하느님은 당신이 원하는 것이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가장 보잘것없는 것에서부터 가장 아름다운 것에 이르기까지 무엇이든지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당신에게 부여했다. 당신이 기쁨을 이해하는 탐구를 계속하는 중에도 당신이 하느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는 그렇게 되어 줄 것이다. 그가 당신의 행동과 욕구의 성취 정도를 심판하는가? 아니다, 그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자식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다. 생명력에 대한 생명력의 사랑이다. 그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하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같이 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기쁨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방해받지 않고 움직이는 자유다. 그것은 판단 없이 표현하는 자유이다. 또 이것은 두려움도 죄의식도 없는 존재의 자유이다. 기쁨이란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생명을 창조하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자신을 허용하는 지고의 움직임이다. 이것이 기쁨이다.

왜 기쁨은 존재의 가장 숭고한 상태인가? 기쁨의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당신은 하느님의 흐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흐름 속에 질투나 분노, 비통함이나 전쟁이 차지할 자리는 없다. 기쁜 상태에 있다면, 누군가를 증오하기 어렵고, 공격하기 어렵고, 상처를 주기도 어렵다.

당신이 행복하고 즐거울 때, 당신은 모든 것에 내재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지극한 기쁨 속에 있다면, 당신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과 평화로운 관계가 될 것이다. 삶을 기쁨 속에 영위할 수 있다면 후회나 불안, 두려움, 분노나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 기쁨의 상태에서 당신은 충만하고 완전하며, 생명과 지혜, 창조성이 당신 존재의 내부에서부터 큰 강물처럼 흐른다. 당신은 최고의 위대함과 가장 심오한 느낌에까지 이르게 된다.

기쁨의 상태에서 삶은, 하늘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장밋빛을 띠고, 구름은 타는 듯 붉게 물들며, 새들은 나무에서 노래하고 있는 새벽녘의 열정과 강렬함이 된다. 기쁨 속에서, 당신은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살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더 이상 고단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토록 갈구하던 놀라운 모험이기 때문이다. 기쁨이 흘러나올 때 당신은 자신의 왕국 안에서 하나가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당신은 낙원을 발견한다.

어떻게 기쁨의 상태가 되는가?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당신 삶의 매순간은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그리고, 자신을 행복과 기쁨...

그리고 하느님과 떼어놓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완전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면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에는 자신에 대한 사랑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다. 진정 더 위대한 사랑은 없다. 자유가 존재하는 것은 자신을 포용함으로써 가능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유로부터 기쁨이 탄생한다. 이 탄생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하느님을 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하고 깊고 의미 있는 사랑은 순수하고 순진한 자신 - 육신 안에 자리잡고 있는 위대한 피조물로서 움직이고 깊이 생각하고 창조하고 허용하고 그리고 존재하는 존엄한 피조물 - 에 대한 사랑이다. 당신이 누구이든 상관없이, 당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면, 당신은 모든 이의 얼굴 뒤에 있고, 모든 것 안에 내재하는, 내가 사랑하는, 그 장엄한 근본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하느님이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사랑하는 것이 쉬워질 것이다. 용서하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모든 생명 안에 있는 하느님을 보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면, 이제 당신은 정복할 수 없는 것이 없다. 도달할 수 없는 것도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당신의 삶은 웃음으로 빛나고, 기쁨의 행로를 따라 가게 된다. 자신에 대한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빛, 통합된 힘, 행복, 기쁨, 존재의 유쾌한 상태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대된다. 사랑이 경이로운 당신 존재 안에 가득 차면, 불만으로 가득 찼던 세계가 아름답게 되며, 삶은 의미 있는 것이 되고 기쁨이 넘치며, 또한 기쁨은 당신 존재의 충만함을 통해 모든 생명을 끌어올리고 영광스럽게 하며, 당신 존재가 순수하다고 선언하게 된다.

삶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사랑과 충족만큼 위대한 목적은 없다. 이것은 오로지 삶에 참여하여 자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을 함으로써 성취된다. 그 일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감히 누가 그것이 틀렸다거나 당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이 가는 모든 방향이며, 당신이 경험하는 모든 것의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지 말라. 당신의 삶에서 그토록 방해가 되었던 그 제한이라는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기쁨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는가!

하느님은 당신에게 기쁨을 강권한다. 당신이 문을 열고 기쁨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며, 그는 항상 거기에 있다. 이것이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가 의미하는 바이다. 어떤 경우에도 아주 쉽게 기쁠 수 있다. 구하라, 그리고 당신은 기쁨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라!

기쁨이 기쁨을 낳는다. 당신에게 주어진 기쁨을 받아들인다면, 그 기쁨은 내일의 기쁨을 증대시키고,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신을 열어준다. 이것이 매순간 당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다. 그렇게 할 때,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들과 보조가 맞기 때문이다.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항상 자신에게 묻고 또 느낌이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구애되지 말고 행함으로써 오로지 자신에 대한 사랑과 기쁨만을 위해서 살라. 황홀하고 약동하는 순간이 자신의 영혼에 기록되고 이는 다시 앞으로 다가올 더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더 많은 순간을 행복하고 즐겁게, 그리고 당신 자신을 사랑하고 당신 자신이 존재하도록 허용하면서 보낼수록, 모든 생명력인 하느님 존재에 더 가까워지게 된다.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그런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당신은 삶의 가장 숭고한 운명을 따라 살게 될 것이다. 기적과 같은 일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당신 자신 및 하느님을 사랑하는 본보기로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당신이라는 경이로운 수수께끼와 고귀한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알라. 종국에 가서 하느님의 얼굴을 볼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그때 당신은 새롭고 더 위대한 이해를 찾으러 또 다른 무한한 삶의 경험을 향하여 떠난다.

알고 있겠지만, 내가 지상에 있던 때에 아틀라시아인은 우리를 ‘영혼이 없는 자’라고 했다. 그때 우리가 찾은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목적’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없다고 하는 영혼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비참한 야만인이었고 인간을 증오했다. 그러나 내가 기쁨이 무엇인지 찾아내었을 때, 그리고 내가 기쁨을 누릴 만한 자격이 있음을 알았을 때, 나는 모든 생명을 지탱하고 양육하며, 모든 생명 자체이기도 한 그 근원이 되었다.

하느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은, 무엇이든지 자신의 기쁨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당신을 하느님에게로 되돌아가게 하는 길이다.

마스터 : 내가 이 육체로 돌아오기를 선택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람타 : 다른 누가 당신을 대신해서 선택하겠는가?

마스터 : 그렇다면 내가 왜 이 시간 이 장소에 돌아오기로 선택했는지 말해 줄 수 있는가?

람타 : 이 시간 이 장소에서 삶을 경험하기 위한 것이다.

마스터 : 그러나 무엇인가 성취하기 위하여 이곳에 온 특정한 목적, 또는 이곳에 돌아오기로 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람타 : ‘특정한 목적’이란, 마스터, 삶을 경험하는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마스터 : 그렇다면 어떤 것이든지 가능한가?

람타 : 어떤 것이든지 될 수 있다. 그러나 특정한 무엇은 아니다. 당신은 그저 삶을 경험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당신이 ‘당신’을 선택했다. 왜 당신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지금 시간을 선택했다. 이 때가 지극히 좋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생명은 지금 피어나고 있다. 당신이 지금 피어나고 있는 것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모두들 산다는 경험을 간과하고 감사해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산다는 것보다 더한 무엇을 찾는다. 그러나 당신이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로 가장 우선적인 것은 그저 산다는 것이다! 이 생에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영광된 것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겠는가? 당당한 왕이라 해도 먼저 왕이 될 수 있는 삶을 가지지 못했다면, 그가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왕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매우 좋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이 될 수 있을 때까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삶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는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마도 이것은 당신들이 듣고자 원하는 그러한 대답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면 이 대답에 감사해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구나 자신이 존재하는 데 무슨 구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 마스터, 내 운명이 무엇인가? 내가 이 생을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인가?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알고 있다.” 하고 나에게 묻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말한다. “삶!” 그러면 그들은 당황하고 못마땅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높은 산에 올라가 황금을 몸에 두르고, 새들이 머리 위에서 노래하는 가운데 인류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주도면밀한 계획을 들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마스터, 당신의 목적은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그 모든 것은 당신의 아름다움을 확장하는 것이고, 생명을 전체적으로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산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자신이 이곳에 오기를 원해서 이곳에 있는 것이고, 이곳은 돌아오기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당신 자신이 스스로 깨닫는다면, 다른 모든 것이 이해가 될 것이다.

모두 이곳에서 살며, 표현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곳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당신 안에 살아 있는 하느님에게도 가장 우선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에 일어나는 것은 특정한 무엇인가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삶의 매순간 당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이면 된다. 이것을 ‘창조’라 한다. 당신은 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 속에 있는 하느님이 당신에게 창조하라고 강요하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 그리고 살아가는 매순간 창조적 자아인 영혼이 이끄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 이외에 어떤 특정한 운명이 따로 있어서 당신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창조계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가능하다. 당신은 들어보지 못한 왕국, 들어보지 못한 삶들을 창조할 수 있다. 당신을 충족시킬 수 있다. 당신에게 이 명백한 자유를 허용하면 당신이 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될 수 있다. 일단 당신이 그 모든 것을 경험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을 기쁘게 한다면 언제라도 당신은 자신의 빛을 밝혀 당신을 기쁘게 해줄 어떤 충족이라도 나타내게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깨달은 실체들 중 일부는 부랑자 시설에서 사는 변변치 못해 보이는 사람들인 까닭을 아는가? 그들은 그 순간을 살며, 그들은 살기 위해서 또 그 다음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러 곳에 가 보았고, 많은 것을 보고 실행했으며, 많은 이들을 만났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러 각도에서 인간의 영성에 대한 위대한 지식과 이해를 거두어들였다. 그들은 지극한 깨달음의 상태에 있다. 그리고 매우 행복해한다. 그 자신에게 자신이 선택하는 대로 오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나에게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목적이 없지 않는가?” 그들의 목표는 순간에 살고 원할 때는 언제든지 새롭고 모험적인 일을 하면서 유쾌하게 즐기는 것이다.

마스터, 이 삶은 결코 감옥이 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다양하고 도전적인 창조성과 표현을 위한 무대로 설계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막간을 두고 여러 장을 거치면서 모험을 해볼 수 있다 - 항상 이러한 것들이 당신에게 기쁨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마스터 : 그러나 람타, 어릴 때부터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곳이 내 집이 아니고 어딘가 다른 곳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람타 : 다른 곳이 있다. 삶이란 다른 여러 차원과 여러 곳에서 계속된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진실을 말하겠다. 진정 당신이 이곳에 있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존재 안의 생명력은 이곳에서 배우고 행복을 얻기 위해서 여기서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다. 단지 이곳이 지내기에 비참한 곳이라는 걸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오기에는 당신이 ‘훨씬 더 고상한’ 실체라고 생각하는가? ‘고상한’ 실체는 자신이 거주하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행복을 발견한다.

이 지상에 있는 시간이 힘들다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이곳에서의 삶을 더 잘 견딜 만하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있건, 어떻게 선택을 하든, 좋거나 나쁘고, 행복하거나 불행하며, 흥미진진하거나 세속적인 것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것을 결국에는 깨닫게 된다. 오직 우리의 태도와 판단에 따라 이 삶에서 얻는 경험이 결정된다.

이곳의 한 부분이 되어 보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하느님은 다른 모든 곳에 있는 것처럼 여기에도 넘쳐 있다. 그는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 당신이 그것을 알고 나면, 현명한 사람이 될 것이다.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이 삶을 받아들여서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웅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삶의 모든 부분을 경험하고 사랑하면서! 그렇게 되면 당신은 이곳에서의 삶으로 충족된다. 그러면, 당신이 이곳을 떠날 때, 여기에 돌아와 경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될 것이다.

한 가지 하찮은 길만을 따라서 여기까지 살아온 이들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계속 그 길을 따라 살다가, 죽음에 이르러서야 번민과 후회로 괴로워한다. 이것을 했어야 했고, 저것도 했어야 했고 등등. 이런 모든 ‘했어야 되는 것들’은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경험하고 그것들로 가득 채워질 수 있을 때까지 그들을 이곳으로 되돌아오게 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아도 될 때까지.

마스터 : 그렇다면 ‘했어야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나는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람타 : 마스터, 그것은 산다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쉽게 느껴진다면, 살고 추구해야 될 이유를 자신 스스로 설정해 보라. 진심으로 그렇게 하라. 그러나 그것을 충족하고 나면, 그땐 무엇을 위해서 살 것인가? 새로운 이유가 생긴다. 계속 또 계속 반복해서.

마스터 : 내가 뭔가를 위해 돌아왔고, 내가 지금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 특별한 어떤 일이 없다는 것인가?

람타 : 아름다운 마스터여, 지혜란 축적된 감성이다. 이것이 이 지상으로 돌아오는 모든 실체를 서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전에 경험했고 이해했던 것을 다시 경험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 충족과 지혜를 약속해 주는 모험에는 항상 당신이 이끌릴 것이다. 그것들은 당신을 흥분하게 하고 유혹하며, 호기심을 자극하고 어리둥절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자신을 허용하고, 당신 존재 안에서 나오는 충동과 당신 안에서 느끼는 느낌에 귀를 기울인다면, 당신은 항상 당신의 경이로운 자아를 확장하여 더 나은 지혜와 지속적인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이제, 마스터, 당신의 의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한 가지 이해를 말하려고 한다. 존재해야 될 하나의 이유가 필요하다면, 그 이유가 영원히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되게 하라 - 그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사랑’이다.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만은 영원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반면에 이것이 되겠다든지 저것이 되겠다는 목적은 이 생에서 성취될 것이다 - 그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되면서, 당신의 더 큰 지혜를 확장시켜 주고 당신에 대한 더 근원적인 사랑을 더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분별력 있는 눈인 자신의 눈으로 볼 때. 당신을 가장 훌륭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마스터, 바로 당신이 삶의 목적이다.

모든 이들이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 또는 내 운명은 이것이다, 아니면 저것이다 하는 등의 생각을 넘어서게 되면, 그들은 그 순간을 명확하게 살아가는 존재의 문제에 전념하게 되고, 그전에 알지 못했던 더 큰 행복과 더 고귀한 자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이것이 진정 삶으로의 해방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것이 당신의 목적이다 - 존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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