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6일 수요일

스웨덴보그의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미디어, 2005년)

 
글: 박덕규

 “나는 과거 20여년 간에 걸쳐서 육체를 이 세상에 두어둔 채 영이 되어
 인간이 죽은 후의 세계, 즉 영혼의 세계를 출입해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많은 영들과 어울려 수많은 일을 보고 들었다.
 내가 지금부터 여기에 기술하는 것은
 나 스스로 견문하고 체험한 것의 전부이다.”
 -스웨덴보그
 
 
 스웨덴보그가 고향 스웨덴을 떠나 머나먼 이국땅 영국에 머물던 어느 밤, 그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인물(영적 존재)이 나타난다.
 
 그로부터 “나는 너를 인간이 죽은 후에 가는 영의 세계로 데리고 가겠다. 그 세계에서 보고들은 바를 겪은 그대로 기록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로부터 ‘죽음의 기술’이 생겨 자신의 육체를 두고 자유로이 영계로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가 영계를 다녀올 때는 다른 사람의 출입을 금하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 며칠씩 밥도 먹지 않았다고 하며,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하숙집 주인의 증언에 의하면 그 기간은 2∼3일에서 10일 정도였다고 한다.
 
 죽어서 제일 먼저 가는 곳, 정령계 스웨덴보그가 말하는 영의 세계를 크게 나누면 ‘정령계, 영계, 지하의 영계(지옥계)’로 나뉜다. 또 영계와 지옥계는 각각 상중하의 세 단계 영계로 나뉘어, 정령계를 포함, 총 7개의 영계가 존재하고, 각각의 영계는 또 수없이 많은 영적 그룹(단체)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정령계는 사람이 죽은 후 제일 먼저 가는 곳으로, 인간계와 영계(영靈으로서 영원한 삶을 누리는 곳)의 중간에 있는 세계이다.
 
 정령계는 거대한 바위산과 빙산들이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분지 모양을 띄고 있는데(개인적으로 임사체험시 보았던 빙산의 모습은 이 정령계의 모습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계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며, 산맥과 산맥 사이의 여러 곳에서 영계로 갈 수 있는 통로가 나있다. 그러나 이 통로는 정령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으며, 영계로 옮겨 갈 준비가 끝났을 때에야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다.
 
 정령은 인간과 영의 중간적인 존재로, 투시, 상념의 교류 등 신기한 영적 능력을 제외하면, 의식 속에서는 인간과 조금도 다른 데가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어떤 정령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른다. 스웨덴보그가 만난 많은 정령들은, 스웨덴보그가 살아있는 육체를 이승에 둔 채 정령계를 방문한 ‘불가사의한 나그네’임을 알게 되면 “나는 죽은 것이 아니라 정령으로서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아직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전한다.
 
 지옥은 어떤 세계인가 스웨덴보그에 의하면 인간으로서의 죽음 이후, 정령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초기의 정령들은 크나 큰 놀라움과 충격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번민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그것은 그들이 생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영으로서의 삶과 영계의 모습’ 때문이다. 즉, 세상의 학자나 교회의 목사들이 인간의 본질과 영이라든가 영계의 일에 대해서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생각을 심어주어, ‘사후의 세계’를 너무나 무지한 채로 맞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
 
 가장 단적인 예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그의 기록이다. 스웨덴보그는 지옥은 종교의 가르침처럼 현세의 악업에 대한 응보로써 신에 의해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 물질욕과 색욕, 명예욕, 지배욕 등 세속적인 욕망에만 빠져, 참다운 영적 성숙을 극단적으로 경멸했던 자들이 간다는 것이다. 물론 악업을 저지른 자들은 그들 스스로 영계의 눈이 뜨여지지 못해 결국 모두 지옥계로 빠져들게 되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이 원하는 바에 의해서 스스로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세상과 영계는 하나의 세계 영계는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수천 킬로미터 밖이나, 수천, 수만 년 전의 영과도 그 영을 생각하는 순간, 그리고 마음의 창을 여는 순간, 바로 앞에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영을 보게 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연계에서 공기를 통해 ‘말’이나 ‘소리’가 전해지듯이, 영계에서는 영류라고 불리는 시공간을 초월한 에너지의 흐름(이것은 아마도 천지에 가득한 우주의 율려라 생각된다)을 타고 영상과 소리, 상념의 교류와 영의 이동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영은 저마다의 한계가 있지만, 자신이 생각하는 상념과 언어를 영상으로 보여주기도 하고, 생전의 모든 기록과 우주의 정보들을 그대로 불러올 수도 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미래를 보고자 한다면, 영의 세계에 그려져 있는 자신의 일생에 관한 그림폭(또는 책과 같은 것)의 내용을 다른 영을 통해 듣거나, 그것을 본 다른 영의 눈에 보이는 표상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계와 이 세상은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이 세상은 영계라는 광대무변한 공간 속에 붕 떠있는 작은 고무공과 같다. 물론 고무공 속에도 영계는 스쳐 들어가 있다. 사실은 고무공 속도 영계인 것이다. 고무공 속 이외의 모든 공간은 영계이지만, 고무공 속만은 예외적으로 자연계와 공간을 초월해있는 영계의 두 세계가 같은 공간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태고적 인간들의 영혼을 만나다 스웨덴보그는 ‘성운의 단체’라 불리는 단체를 방문하여 태고적 인간들의 영을 만나 나눈 대화도 기록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그들은 이성이나 지성의 예리함 등은 어느 면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고, 다른 영들과 다름없이 순진하고 순박하여 마치 동심(童心)이 그대로 얼굴이 된 듯한 온화함과 평화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들의 마음은 우주의 길[道]을 전부 순진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받아들여 생활하고 있었다. … 태고적 사람들은 영적인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남에 따라 세속적이거나 물질적인 것, 외면적인 지식이나 학문 등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그에 따라서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차차 멀어져 가게 되었다. … 그리고 인간들은 영이나 영계가 있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인간계와 영계의 생명의 비밀문 그렇다면 모든 인간과 영계의 생명의 원천은 무엇인가? 스웨덴보그가 최초로 영계에 들어갔을 때, 그는 가슴 정도의 높이에 떠있는 태양을 보고 놀라워했다. 다른 영이 영계의 태양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모든 생명은 생명의 원천과 이어짐으로써 비로소 생명이 있는 것이며,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영계의 모든 영은 태양과 연결되어 그 영원한 삶을 향유하게 된다. 영계의 태양은 그 빛이 영계를 비추어 영들에게 사물을 보게 하고, 또 사물을 생각하는 이성(理性)의 기초가 되고 있고, 그 열은 영들에게 생명을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의 원천에 대해 스웨덴보그는 ‘영계의 태양과 그 태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영류’로 설명한다. 즉, 직접적으로 영류를 받아들여 사는 영 이외의 인간과 생명은, 그 속에 깃들어 있는 영을 통해 이 영류를 간접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제한된 생명의 ‘율려수’를 받아 태어나는 인간이 그 율려수를 다 소모하고 나면 육신의 틀을 벗고 신명으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태을주는 우주의 율려(律呂)니라(道典 2:140:10)”라 하신 상제님의 말씀, “태을주는 성령을 접하게 하고 신도(神道)를 통하게 하며 (道典 11:180:4)”라 하신 태모님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이 인식하지 못했던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으리라.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 이런 의문이 든다. ‘인간과 영은 어느 쪽이 본질적인가?’ 위에서 전한 바와 같이 인간에게 생명 그 자체를 부여하고 이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영이다. 즉, 영이 육신을 가진 인간의 주인인 것이다. 이 말을 바꿔 생각하면, 만일 무신론자나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자신의 생명과 그 본질조차 부정하고 있는 허깨비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스웨덴보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다고 하자. 단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으로는 의사(意思)가 완결되고 완성되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완성되려면 언어나 편지의 형태로 표현해야만 한다.”
 
 “인간계는 영계의 종극점(終極點)이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우주가 표현하고자 하는 소망과 꿈, 그 이상의 실현과 종결은 오직 인간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마치며 스웨덴보그의 수기를 읽으면서 적지 않은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고, 희미했던 신명계의 모습과 질서 등에 대해 많은 생각과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한편으로, 스웨덴보그가 윤회를 인정하지 않는 점이나, 인간의식의 한계 내에서 단순히 ‘영계를 관광’했다는 느낌이 드는 점 등은 아쉬웠다. 그러나,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영계의 모습을 이처럼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전한 사람은 인류역사상 극히 드물 것이다.
 
 스웨덴보그는 ‘광대무변한 영계의 모습’과 ‘영원한 삶을 사는 영’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은 듯 하다. 그 탓인지 몰라도, 이 세상을 ‘장래의 영의 번식을 위한 번식장’으로까지 표현하며 지나친 영계중심의 세계관을 가지게 된 것 같다.
 
 물론 그가 전해주는 영계의 진실처럼, 우리는 드넓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작은 지구 안에서, 수천, 수 만년을 사는 영의 삶과 비교하면 찰나에 불과할 짧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프랭크 램지가 말한 것처럼,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티끌처럼 작은 존재로 보이는 인간도 원근법으로 우주를 보면 인간이 그 중심에 서있다.
 
 
 참고서적: 스웨덴보그의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서음미디어, 2005년)
 
 
 엠마누엘 스웨덴보그 스웨덴의 신비사상가이자 심령술의 선구자이다. 1688년 스웨덴 스톡홀름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신비적인 경향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신이 이 소년의 입을 빌어서 말을 한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로 놀라운 언행을 보여줬다고 한다.
 성장하여 대학을 졸업한 후 수학자, 과학자, 발명가로서의 큰 업적을 남겼고 한때 정계에서도 활약하였다. 그의 학문분야는 천문, 생리, 해부학 등 방대한 분야에 걸쳐 1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학문적 업적 이외에 그가 동시대에 끼친 영향은 온 유럽을 넘어 역사상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84세 삶 중, 후반 약 30년간은 모든 학문을 팽개치고‘영의 세계와 교신하는 영매’로서 그 자신이 직접 영계로 들어가서 보고 듣거나, 또는 영들과 직접 사귀어서 알게 된 지식을 바탕으로‘영계의 진실’을 알리는 영적 생애에 바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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