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5일 화요일

안철수 "젊은이들이여, 인생의 본질은 불안정이다"

잡코리아가 최근 젊은 직장인 373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31.1%가 '이 시대의 성공 아이콘'으로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를 꼽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김연아(17.2%) 선수에 이어 세 번째(15%)로 꼽히는 데 그쳤다. 두 사람이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는 기업의 규모나 개별적 자산 규모, 세계 시장에서의 인지도는 사실 견주기도 힘들다. 하지만 왜 직장인들은 안 교수를 꼽았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안 교수와 서면 인터뷰를 준비했다. 인터뷰는 그 의문의 정확한 답은 아니어도, 일견의 답을 알려줬다. 안 교수는 끝없이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향해 도전하고, 그 도전의 결과물로 얻어진 창조가 개별적 자산이 아니라 사회적 자산이 된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었다. (스크롤 압박 주의)



-안 교수의 삶은 늘 변화가 키워드다. 의사에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개발자로,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기업가로, 다시 안정된 기업 대표직을 버리고 공부하는 사람 겸 가르치는 사람의 길로, 늘 변화하는 원동력은 어떤 것이고 그 변화가 교수님에게 가르쳐준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게 만드는 드라이빙 포스는 세 가지이다. 의미 있는 일, 재미있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이 그것이다.

의사를 그만둘 때도, 컴퓨터 바이러스 쪽 분야는 나밖에 없다 보니 정말 의미 있는 일이었고, 재밌는 일이었다. 잘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그러나 잘할 가능성은 있었으므로 도전했다. 처음 백신을 개발한 후 의대 교수로서, 군의관으로서 일하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 백신 개발을 계속했고, 박사 학위를 받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뒤에 컴퓨터와 의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되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거듭된 고민을 해결해 줄 실마리는 그때까지 살아왔던 삶은 남이 보기 좋은 삶이라는 데서 풀렸다. 서울대 의대 졸업, 20대 의학 박사, 20대 의대 교수로 이어지던 순탄한 과정은 남이 보기에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컴퓨터를 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자부심, 보람, 사명감, 성취감 등을 주지는 못했다. 살아온 시간보다는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시점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에 연연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해 나갈 일이 많은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올바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14년간 공부해서 박사 학위까지 받았던 의학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고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다.

1995년 3월 회사를 설립한 후 그 해 가을에 첫 유학을 갔다. 회사 규모가 구멍가게 수준이기도 했거니와, 연구소는 연구 개발만 하고 마케팅 및 판매는 한글과컴퓨터가 전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회사의 책임자로서 앞날을 생각하면 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당장 수익을 창출할 시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매출액이 연 백억 원이 넘던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렇게 되어 보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유학을 가서 공부한 분야는 MOT (Management of Technology, 기술경영)이었다. MBA가 금융업, 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전 산업분야에 걸쳐 필요한 경영을 배우는 데 비해서, MOT 과정은 말 그대로 첨단 기술 분야의 경영에 특화된 과정이다. 따라서 경영과 기술적인 지식 모두가 필요한 벤처기업의 경영을 맡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적합한 과정이었다.
아무런 소질도 경험도 없이 회사를 만든 탓에, 늦게나마 시행착오를 줄이려면 경영공부를 한시라도 빨리 하는 것이 회사를 위하는 길이었던 것이다.

회사 경영 10년을 채우고 CEO를 퇴임한 것은 세 가지 고민을 하다 내린 결정이었다.
첫째가 기업지배구조이다. 민주주의가 삼권분립의 형태로 정립되게 된 이유는, 사람은 유혹에 약한 존재여서 한 사람이 오랫동안 모든 결정을 하다보면 교만해지고 부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특히 상장법인은 CEO나 대주주의 개인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건강한 견제 시스템이 필요하다. 따라서 안연구소의 그 다음 발전단계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창업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자의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 사회 자산화되는 것이 부러웠다. 즉, 창업자들이 인수합병을 통해서 대기업 임원이 되기도 하고, 벤처 캐피털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정치가가 되기도 하면서, 그들의 다양한 경험들이 사회 곳곳으로 파급되고 선순환이 된다. 반면에 한국은 벤처산업의 역사가 짧은 점도 있겠지만, 무너지는 기업들이 많아지면서 창업자의 경험이 사회적 자산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셋째로는 안철수연구소 한 회사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2005년 3월에 CEO를 스스로 사임한 후에 두 번째 유학을 가게 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경험을 체계화하고 저변을 넓히는 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리고 공부하는 방법으로도 연구원이나 교환교수로 편하게 갔다 오는 것보다는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공부에 한해서는 ‘노 페인 노 게인 (No pain, no gain)’라는 말을 실감한다. 괴롭게 고생하지 않으면 실력이 늘 수 없다. 그것이 40중반의 나이에 TOEFL 시험, GMAT 시험을 봐서 MBA 석사과정 학생으로 입학했던 이유이다. 출석 체크, 발표, 숙제, 시험 등 힘든 과정을 거치고나서, 그 많은 내용들이 내 것이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KAIST를 택한 이유는 업계 전체를 위해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이다. 여러 대학에서 풀타임 교수 제안을 받았으며 의대와 경영대도 있었지만, 요즘같이 전반적인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가치사슬의 처음 부분이 망가지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장래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으며, 이러한 흐름을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일조하기 위해 공대를 택했다.

내 인생의 성공의 정의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영어 표현으로는 ‘Make a difference’하고 싶다. 내가 죽고 나서도,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때와는 다른 것이 이 세상에 남았으면 한다. 크로마뇽인의 벽화처럼, 이름이 남아있지도 않고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나 제도, 책, 조직처럼 누군가가 있었다는 흔적이 남기를 바란다.

-KAIST에서 ‘기업가정신’이라는 수업을 하고 있다. ‘당신이 바로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기업가입니다’라는 문구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걸로 알고 있는데, 잠시 이 지면이 그 강의공간이라고 생각하고, 기업가정신은 무엇이며 자신의 삶을 경영한다는 의미는 어떤 것일지 설명해달라.
=‘기업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세 가지의 다른 한자 표기를 발견할 수 있다. 기업가(企業家)는 일반적으로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를 뜻하며, 기업가(起業家)는 일으킬 기(起)가 뜻하는 대로 새로운 가치나 일자리를 창출하는 사람을 말하며, 기업가(機業家)는 직물업을 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말이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고 할 때의 기업가는 두 번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현상유지의 수준을 뛰어넘어 위험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마음가짐과 행동력이 기업가정신의 핵심인 것이다. 또한 기업가정신은 정신이 아니라 활동이 중요하다. 마치 리더로서 마음가짐만 있는 사람을 리더십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기업가정신’이라는 번역보다는 ‘가치창조활동’으로 번역하는 것이 원래의 entrepreneurship의 뜻을 더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가정신의 본질은 도전과 혁신의 정신이다. 저는 여기에 세 가지를 더 보태고 싶다. 첫째, 사회적 책임의식, 둘째,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주는 것을 만들겠다는 마음가짐, 셋째,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서 읽는 통찰력 또는 비전이다.

이때의 통찰은 단순히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느리고 지루하고 점진적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탄생한다고 생각한다. 즉, 진정한 의미의 통찰은 탄탄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숱한 고민과 갖은 시행착오의 산물인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이러한 진화 과정을 겪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실패를 거듭하여 결국 자기가 창업한 애플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 여러 경험을 쌓다 보니 통찰력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기업가들만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당신이 바로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기업가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이유이다.

-안 교수의 이미지는 늘 무언가 도전하고 변화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 같은 상징으로 그려지곤 한다. 안 교수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 경험은 어떤 것이 있었으며 그때의 실패가 가르쳐준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회사 경영은 매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다. 그래서 사실 매순간이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한 회사의 CEO로 10년을 있었기 때문에 한 가지 일만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회사의 규모가 10명, 20명, 50명, 100명, 500명일 때마다 모두 역할이 달랐다. 10명 정도 규모에 적합한 CEO는 직접 모든 구성원들과 함께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실무형 CEO이다. 이러한 역할을 고생 끝에 익숙해지고 나면, 어느새 회사는 30명 규모가 되어 있었다. 30명 규모에서는 적절한 권한위임이 필요한데, 10명 규모의 회사일 때 익숙해 있었던 직접 일을 처리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역할에 익숙해진 순간, 어느새 조직은 50, 100, 500명이 되었다. 따라서 10년 간 끊임없이 내가 편한 업무방식보다는 조직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 나를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택은 두 가지밖에 없다. 내가 바뀌든지 또는 그 역할에 맞는 사람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다. 선택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편안하고 익숙한 역할을 버리고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하니까.



-요즘 20대가 여기저기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측은함’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 대학을 나와도 취업을 못하는 20대가 넘쳐나는 시대이면서 ‘정치적인 견해 표현조차 하지 않는 세대’라는 시각이 겹쳐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의 20대는 어떠한 세대로 보이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던질 메시지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런 상황을 놓고 젊은이들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강하고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더 큰 힘으로 젊은이들을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하도록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원래 삶 자체는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사실 세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세포가 불균형을 만들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세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세포 속으로 들어오는 소금기(Na)를 밖으로 퍼내고, 포타슘(K)을 세포 속으로 끌어들인다. 안정은 오히려 죽음 뒤에 찾아온다. 세포막이 터져버리면 바깥에 있던 소금기들이 물밀 듯이 들어오고, 그 동안 소중하게 모았던 포타슘은 모두 바깥으로 흩어져버린다. 안정이 찾아오는 것이다. 세포나 생명 그리고 인생의 본질이 불안정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자기의 인생을 경영하는 CEO로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맞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종종 스티브 잡스와 비견되기도 한다. 개인의 창의성이 사회에 공헌한다는 점, 그리고 그 공헌이 기업운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는 것 같다. ‘아이폰’, ‘아이패드’로 대변되는 2010년대의 IT시대 변화는 어떻게 전망되며, 그를 위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떤 준비를 해가야 할까.
=2000년대 초반 처음 아이팟을 구입했을 때 온오프 스위치와 볼륨이 없어 놀랐다. 화면과 원반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사용설명서를 보고 따라 해보니, 그 다음부터는 평생 설명서를 볼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용하기 쉬웠다.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는지가 궁금했던 차에, 애플사의 디자이너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는, 디자인만 알고 있는 디자이너는 이런 생각을 못 한다는 것이다.
전자기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전자공학 전문가가 회로를 설계하고 몇 가지 단서조항을 붙인다. 온오프 스위치가 있어야하고, 볼륨 조절단자가 있어야하는 등의 조건이 그것이다.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이러한 단서조항들을 모두 충실하게 따르면서 가장 예쁜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애플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전문지식뿐 아니라 전자공학 등 다른 분야도 아는 디자이너들이었다. 그래서 설계도를 받은 후 단서조항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온오프 스위치를 없앨 수 없을까?"와 같은 역발상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팟, 아이폰 같은 제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화(globalization)의 개념을 제대로 정립한 사람들중의 하나로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을 꼽는다. 그가 뉴욕 타임즈 기자가 되어서 처음 간 곳이 중동 지역이었다. 그곳에서 특파원으로 열심히 취재하고 공부하다 보니, 중동지역의 역사와 국제정세의 전문가가 되었다. 그 다음에는 월스트리트로 갔는데, 그곳에서는 금융 전문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양쪽 분야의 전문성을 가지다보니, 보통 사람은 볼 수 없는 그 둘 간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세계화의 개념을 세계적인 석학의 수준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경영학 분야를 사회학과 심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다보니, 보통 사람들은 간과하기 쉬운 깊은 통찰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고, 불과 저서 4권으로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런 예들을 보면 확실한 전문성을 가지는 자신만의 분야뿐만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 또는 더 깊은 분야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결합됐을 때 창조의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역시 강의에서 “마지막 인상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말한신 적이 있다. 그 생각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들어봤으면 좋겠다. 사람을 대하고,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보통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헤어질 때의 마지막 인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헤어질 때가 그 사람의 본 모습을 알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잘하다가 헤어질 때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돌변하는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이어서 결국은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마주치게 마련이다. 직접 마주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평판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세상이어서, 옛날에 했던 일 때문에 앞길이 막히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인간관계를 단기적이고 이해타산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은 결국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IT강국이던 한국이 ‘아이폰’ 등의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 교수는 ‘정통부 부활’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의 IT산업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그를 위해 대안적 방법론은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폰 혁명은 제2의 IT혁명(second wave)이라고 할 수 있다. 모바일 인터넷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은 물론 IT산업의 틀을 통째로 변화시킬 수 있는 거대한 물결이다. 1980년대 초에 IBM이 PC를 개발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가 도스와 윈도라는 운영체제(OS)를 만들어 PC를 기반으로 한 IT산업 성장을 이끈 제1의 IT혁명에 견줄 만하다.

제2의 IT혁명의 요체는 플랫폼(platform) 전쟁이다. 무수한 IT기업과 개발자들이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결국 앱 공급 사슬을 주도하는 플랫폼 승자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이다. 아이폰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 자체가 플랫폼이다. 또 다른 예로서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이트인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도 플랫폼을 장악하려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프트웨어나 콘텐츠가 집중되고 또 이를 매개하는 창구 역할을 하는 플랫폼이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IT 흐름을 주도해 나갈 것이다.

아이폰의 등장으로 글로벌 기업들은 2~3년 전부터 플랫폼 전쟁에 돌입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말에야 뒤늦게 아이폰을 도입했고, 곧 이어서 올해는 아이패드 충격을 겪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 탓도 있지만 한국의 고질적인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산업 구조의 탓이 크다.

국내의 많은 대기업들이 하청기업의 이익을 짜내는 불공정한 거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소프트웨어 벤처나 컨텐츠 업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없고, 이는 대기업의 경쟁력 기반을 스스로 허무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대기업 경영자는 물론 실무자들도 마인드를 고쳐 하청기업이 장기적인 동반자 관계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글로벌 플랫폼 경쟁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뒤처져 있지만, 끝자락이라도 잡고 늘어져 틈새시장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대기업들이 변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회사들은 모두 외국기업들의 하청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지 말라. 결과에만 집착하지 말라”고도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제도 속에서 관계를 맺다보면 그런 걸 의식하지 않기가 힘들 때가 많고, 결과로 모든 걸 평가하는 조직에 속할 때도 많다. 사람과의 관계에 치어 힘겹게 직장생활을 하는 30대에게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어떤 게 있을까.
=과정과 결과를 가장 극명하게 고민하는 것이 기업이다. 수익 창출은 기업의 목적이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고, 그것이 국민 상식이 된 것 같다. 그러나 회사를 세울 때, 경영도 모르고 조직생활도 해본 적이 없는 내가 처음 고민했던 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한 제과점이 맛있는 빵을 만드는 조리법을 개발하고, 건강에 좋은 재료로 빵을 만들고, 적당한 가격에 내놓는다. 그러면 소비자들이 다른 제과점과 비교해서 맛있고 건강에도 좋고 가격도 적당하면 그 집 빵을 산다. 결과적으로 제과점은 돈을 번다. 따라서 이 제과점이 수익을 얻은 것은 본연의 일을 열심히 해서 인정받은 결과이지 목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반대로 수익 창출이 목적이라고 믿는 다른 제과점이 있다고 하자.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서, 중국에서 건강에 해로운 값싼 재료를 들여와서 빵을 만들어 판다. 그러면 그 제과점은 목적을 충실히 달성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제과점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되는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내 생각으로는 수익 창출은 기업 활동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편이 더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기업을 경영하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생각이 큰 차이를 만들게 되었다.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장기적으로 옳은 일을 택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대기업이 천만 불 인수제안을 했을 때 거절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생각 때문이었다. 과정에 충실하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이 단기적으로는 힘들게 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큰 차이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벤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벤처 기업가로서, 지난 10년 동안의 벤처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돌아보고 계시는지 들어보고 싶다.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젋은 벤처기업인들이 경제 주간지의 표지모델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새로운 ‘스타’가 없어서다. 스타는 한 산업이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벤처산업에는 새로운 스타가 나타나지 않은지 오래 되었다. 그만큼 벤처산업이 침체되어 있음을 방증한다. 창업 인재풀도 거의 바닥이 났다.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기 때문이다.

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 다른 사람을 탓하기 전에 우선은 중소기업, 벤처기업 경영진의 경영능력 부족 문제. 둘째, 부실한 산업지원 인프라, 즉 인력을 공급하는 대학, 적극적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 자본을 대출하는 금융권, 낙후한 아웃소싱 산업, 정부의 산업지원정책 등이다. 셋째, 대기업, 공공기관과 중소기업, 벤처기업 사이에 아직도 존재하는 불공정한 시장구조를 들 수 있다.

추가로 주식시장, 특히 코스닥시장이 아직도 불투명하다보니, M&A가 이루어질 때 인수한 회사자금을 유용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할 수 있게 되어, 오히려 정당하게 사업을 하려는 사람보다는 머니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기업을 인수할 수밖에 없게 되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것도 경영이 악화된 후 좋은 회사가 맡아서 다시 회생시키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데 일조한다.

이런 문제점들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우선 중소기업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상황파악에 기반하여 기존의 성장모델도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하며 차별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야만 한다.

인프라 측면에서 벤처캐피털은 단순 재무투자에서 벗어나 경영 및 평판 관리, 휴먼 네트웍 연결 등 기업이 커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능동적인 투자’로 바뀌어야 한다. 전문성을 갖춘 아웃소싱 기업도 더 늘어나야 한다. 대학은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산학협동 및 연구활동을 늘려나가야 한다.

대기업의 생각 전환 또한 필요하다. 벤처가 살아야 중소기업이 살고, 그래야 중산층이 두꺼워지면서 소비력이 커져 대기업 물품구매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또한 벤처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대기업의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단기 성과에 급급해서 벤처기업들을 옥죄기보다는 실질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방학기간 동안 집필을 준비하신다고 들었다. 이번 저서는 어떤 주제를 담고 있으며 현재적 의미에서 그 책이 던지는 메시지에는 어떤 것을 담으려 하는가.
=경영상식 가운데 사실과는 다른데도 진실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많이 있다. CEO 퇴임후에 미국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밟으면서 이런 부분들을 배울 수 있었고, 그 중에서 50가지 정도를 뽑아서 정리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 사람의 인생도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모인 조직도 작든 크든 모두 흥망성쇠가 있게 마련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좋은 일만 있는 사람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잘되기만 하는 단체나 국가는 인류역사상 존재하지 않다.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표현대로, 좋은 시기가 있은 다음에는 어려운 시기가 있게 마련이고,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면 다시 좋은 시기가 오는 형태가 반복되게 된다.

이러한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잘되는 시기에 얼마나 잘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닥치는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보내는 개인이나 조직은 다시 잘 되는 시기를 맞이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지 못하는 개인이나 조직은 망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개인이나 조직이 어려운 시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된 세 가지 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시기가 지속되면 편법적이거나 정당하지 못한 수단을 써서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나 조직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하면 단기적으로는 쉽게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더 큰 어려움을 불러오게 된다.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주위에 알려져 더 큰 문제를 불러올 수 있으며, 설령 알려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없어 결코 어려운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치는 일이다. 잘 되는 시기에는 문제점이 보이지 않는 법이며, 문제점이 보이더라도 바빠서 고칠 만한 여유가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어려운 시기야말로 그 동안 고치지 못했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며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시기에 문제점을 파악하고 고쳐놓는 개인이나 조직만이 대내외 여건이 좋아졌을 때 다시 좋은 시기를 맞이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려운 시기를 오랫동안 겪다보면 개인들이나 조직 내의 조직원들은 사기가 저하되기 쉽다.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러한 때는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고 서로를 격려해주며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하다. 사기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은 일의 결과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세 가지 일은 개인이나 작은 조직뿐만 아니라 국가와 같은 큰 조직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운 시기에 이러한 일들을 잘 지켜나간다면, 우리는 다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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