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10일 목요일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

백인 선교사들의 종교적 믿음에 대한 강요에 대해
타코타족 오예히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과의 만남이 이렇듯 침묵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유는
모든 언어가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하고, 진리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디언들의 영혼은 말 없는 찬양 속에서 신에게로 올라가곤 했다.
신과의 만남은 홀로 있음 속에서 가능하다고 우리 인디언들은 믿었다.
우리를 만드신 이와 우리 사이에 어떤 성직자도 끼어들 필요가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교적 체험에 대해 참견하거나 간섭하면 안 된다.

우리들 각자 신이 창조한 자식들이고,
모두가 그 안에 신성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얼굴 붉은 사람들의 종교는 어떤 특정한 교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또한 받아들이길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 종교에는 설교도 없고, 개종이나 박해도 없으며,
다른 사람의 종교를 무시하거나 비웃는 일도 없었다.
무신론자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의 종교는 교리가 아니라 마음상태였다.

자연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는 사원도 신전도 없었다.

말할수 없이 신비한 원시림의 그늘진 오솔길에서,
처녀와도 같은 평원의 햇빛 비치는 가슴 위에서

현기증 나는 산 정상과 벌거벗은 바위가 우뚝 솟은 뾰족 산봉우리 위에서
보석 박힌 드넓은 밤하늘에서

얼굴과 얼굴은 맞대고 만날 수 있는 그 거대한 절대자를 위해
손바닥만한 집을 짖는다는 것은
우리가 보기엔 신을 모독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중략)

첫번째 함베데이, 곧 생애 최초의 종교적인 수행은
인디언들의 삶에 큰 전환점을 가져다 주었다.

때가 되면 인디언 아이는 먼저 땀천막에서
뜨거운 수증기로 자신의 몸을 정화했다.
그런 다음 모든 인간적인 욕구나 육체적인 욕망을 멀리한 채,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꼭대기로 혼자 올라갔다.
위대한 정렬이 물질적인 것에 가치를 두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아이는 어떤 제물이나 희생양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다만 겸허한 마음으로 위대한 정령 앞에 나아가기를 원하기에
모카신과 허리에 두르는 천 외에는 옷도 가져가지 않았다.

해가 뜨고 지는 장엄한 시간에
아이는 산꼭대기에 위치를 정하고 서서
드넓은 대지를 내려다보며 위대한 신비와 마주했다.

그곳에서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미동하지 않고 서서,
침묵 속에 위대한 정령의 힘 앞에 자신을 내맡겼다.

하루 낮과 하루 밤, 또는 이틀낮과 이틀밤 동안,
가끔은 며칠씩 그렇게 서 있는 경우도 있었다.

때로는 절대 고요속에서 신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 신성한 명상 상태 또는 환희의 체험을 통해 어린 인디언 신비가는
자기 존재의 최고의 행복과 근원이 되는 생명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을로 돌아오면 아이는 잠시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다시 땀천막에서 몸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를 때까지.
그런 다음에야 비로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자신이 산꼭대기에서 본 환영이나 암시에 대해선
부족 전체의 운명과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입밖에 내지 않았다.

...(중략)

얼굴 흰 정복자들은
우리 인디언들을 가난하고 단순하다고 경멸해 왔다.

아마도 그들은 우리의 종교가 재산 축적과 사치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음을 잊은 모양이다.

우리 인디언들은 소유를 탐하는 것을 하나의 덫으로 알았으며,
복잡한 사회가 안겨주는 많은 짐을
쓸데없는 유혹과 고통의 근원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따라서 인디언들이 지속적으로 도시를 발전 시키거나
물질 문명을 발달 시키지 않은 것은 무지하거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소박한 인디언 현자의 눈에는
수많은 인구가 한 곳에 집중해 모여 사는 것은 모든 악의 원인이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러했다.

(출처/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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