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이제 나는 나의 의식 전체를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영원한 기쁨의 샘을 감지할 수 있었다

라빈드라드 타고르


영적 자유 즐긴 행동하는 신비주의자






기복적 힌두교 버리고 정신적인 면 추구
신·자연·인간은 하나 … 체험, 시로 표현
동양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 금자탑 쌓아


동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타고르는 제도로서의 종교는 너무 피상적이어서 참된 내적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며 이를 배격했다.
인도의 시성이라 불리는 라빈드라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1861년 벵골의 콜카타(옛 이름은 캘커타)에서 열세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데벤드라드 타고르(1817~1905)는 그 당시 ‘근대 인도의 아버지’라 불리는 람 모한 로이(Ram Mohan Roy, 1774~1833)가 인도사회의 개혁을 목표로 창설한 브라흐모 사마즈(Brahmo Samaj) 운동의 제2대 지도자였다.


어머니는 일찍 죽고 아버지는 여행에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어린 타고르는 주로 하인들의 손에서 자랐다.

정식 학교 교육보다 저택 주위를 배회하거나 아름다운 자연에 거니는 것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12세 때 아버지를 따라 여러 달 동안 인도를 여행하면서 여러 가지 전기도 읽고, 역사, 천문, 과학,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고, 고전 시도 살펴보았다.

문맹과 가난 퇴치에 앞장

16세 때 첫 시집 『들꽃』을 썼고, 다음 해인 1878년 변호사 공부를 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런던에서 법 공부보다는 셰익스피어와 기타 문인들의 글에 더 크게 매료되었다.

1880년 학위를 끝내지 않고 인도로 돌아와 인도의 자연과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특히 갠지스 강은 평생을 통해 그의 정신적 젖줄과 같은 역할을 했다.
1883년 결혼을 하고 다섯 자녀를 얻었다. 1890년 타고르는 지금의 방글라데시에 있던 광대한 가족 농지를 맡아 돌보기 시작했다. 여기서 보낸 이후 몇 년 간 타고르는 가장 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아버지의 개혁정신을 물러 받은 타고르는 1901년 자기의 개혁적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산티니케탄 (Santiniketan)으로 옮겨가 아쉬람을 세웠다.
여기에 기도하는 집, 도서관, 정원과 함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학교까지 설립하여 새로운 교육을 실천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의 부인과 두 자녀가 죽었다.

1921년에는 가까운 곳에 ‘농촌 재건 기구’를 설립하고 문맹과 가난을 퇴치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그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불가촉 천민 차별제를 비판하는 등 한 때 정치에도 참여하였다. 또 자연과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시인으로 가장 잘 알려졌다.

1913년 스스로 벵골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103편의 연작시 『기탄잘리(Gitanjali, 신에게 바치는 송가)』로 동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죽기 전 몇 년 동안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는데, 그 때 지은 시들이 가장 아름다운 것들로 여겨지고 있다.

1941년 여든 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2천여 편의 시를 쓰고, 3천여 점의 그림을 그리고, 2천여 곡을 작곡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황금 조각배 The Golden Boat』, 『초승달 The Crescent Moon>』, 『정원사 The Gardener』 등이 있다.

예이츠, 앙드레 지드, 로망 놀랑, 에즈라 파운드 등으로부터 극찬을 받기도 한 그의 시는 인도 문학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일을 했을 뿐 아니라, 주로 종교적 신비 체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적 영성의 중요성을 인지시키는 일에도 크게 기여 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힌두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특별히 전통적인 기성 종교에 속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다. 타고르는 아버지가 이끌던 브라흐마 삼마즈의 정신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운동 단체는 힌두교의 형식적이고 기복적인 면을 배격하고 정신적이고 ‘순수한’ 면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 우파니샤드와 베단타 전통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베단타 전통 중에서 그는 샹카라와 라마누자를 조화시킨 ‘중도 코스’를 따랐다. 타고르는 특히 제도화된 종교의 형식적인 면을 배격하고 단순하면서도 깊은 예배 방식을 실천하던 벵골의 신비주의적 시인들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도 공부했다.

그러나 타고르는 그의 깨달음이 근본적으로 책을 통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이 영적 ‘비전’에서 얻어지는 것이라 여겼다.

타고르가 처음 비전을 본 것은 18세 때였다. 그의 회고록에 보면 “해가 잎이 무성한 나무 꼭대기 위로 막 떠오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눈에서 눈꺼풀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온 세상이 온통 아름다움과 기쁨의 물결과 함께 찬연한 빛으로 목욕한 것처럼 보였다.

그 빛줄기가 내 심장에 겹겹이 쌓여 있던 슬픔과 실의의 장벽을 꿰뚫고 들어와 우주적인 빛으로 넘쳐나게 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내 눈으로만 보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나의 의식 전체를 가지고 보기 시작했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영원한 기쁨의 샘을 감지할 수 있었다. 거기서부터 셀 수 없이 많은 웃음의 물안개가 온 세상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2천편 시-3천편 그림 남겨

타고르는 살아가면서 이런 경험을 몇 번 더 했는데, 이런 경험들은 무엇보다 신과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만물동체의 느낌을 가져다주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경험을 갖기 위해서 어떤 종교의 특수한 수행을 실천하지도 않았다. 그의 유명한 시 “폭포의 일깨움”에서 표헌한 것처럼 그런 경험은 자연적으로 그에게 이르렀다.

“그날 아침 햇살이 내 영혼의 뿌리를 건드렸다. 아, 아떻게? 아침 새의 노래가 이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아 어떻게? 나는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의 삶은 잠에서 깨어났다.” 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고 하면서 이런 엄청난 체험이 언설을 넘어서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이런 체험에서 그는 참된 깨달음을 얻었음을 확신한다고 했다. 사실 타고르가 가졌던 이런 경험은 세계 여러 신비주의자들이 가지는 공통적 체험인 셈이다.

18세 때 영적 깨달음 체험

미국의 종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January, 1842~1910)는 신비적 체험이 갖는 네 가지 특성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음, 잠시적임, 피동적으로 얻게 되었다는 느낌, 깨달음이라고 했는데, 타고르의 체험은 이런 특성들을 두루 갖춘 체험이었다.

이런 체험이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타고르는 시인으로서 이를 시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보통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미술이나 음악이나 시와 같은 예술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표현 불가능하다고 그냥 버려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간을 위해 어떻게라도 표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나의 종교는 본질적으로 시인의 종교다”고 선언하고, “나의 종교적 삶은 나의 시적 삶과 동일한 신비적인 성장 라인을 따랐다”고 하면서 그의 시가 신비체험과 직결된 것이라 했다.

타고르는 신과 하나 됨, 그러면서도 동시에 개별성을 강조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랑과 자연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그는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이 이런 신비적 체험을 촉발하는 수단이라 주장했다.

그는 신비체험을 갖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어 금욕주의적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또 제도로서의 종교는 너무나 피상적이어서 사람들에게 참된 내적 자아를 발견하도록 할 수 없다고 보고 이를 배격했다.

타고르는 제도권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를 구가한 행동하는 신비주의자였던 셈이다.

타고르와 관련하여 한국인들에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타고르는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여러 나라, 중동,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등 많은 나라를 방문해서 강연도 하고, 앙리 베르그송,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로버트 프로스트, 토마스 만, 조지 버나드 쇼, H.G. 웰즈 등 문화계 지도자들이나 지식인을 만나 보았다.

1929년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 중 동아일보 도교 지국장 이태로 기자가 찾아가 한국 방문을 요청했지만, 다음 날 캐나다로 떠나고, 인도로 돌아갈 때도 일본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요청에 응할 수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다음 날 그를 배웅하러 나간 그 동아일보 기자에게 짧은 시를 써 주었다고 한다.

일즉이 亞細亞의 黃金時期에/ 빗나든 燈燭의 하나인 朝鮮/ 그 燈불 한번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東方의 밝은 비치 되리라

타고르가 써준 원문은 없고, 그 원문이라 생각되는 영어 시는 다음과 같다.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원래는 이처럼 4행시인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동아일보 1929년 4월 2일자에 주요한 번역
으로 실린 시에는 1912년에 영역된 타고르의 『기탄잘리』 35편의 일부와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하는 한 줄이 여기에 덧붙여진 형태로 변형돼 나타났다.

덧붙여진 부분은 다음과 같다.

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롭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일제 시대 한국인의 ‘희망’

물론 이 덧붙여진 부분이 한국을 위해 쓰이어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의 배경이 어떠했든지 간에, 이 시가 일제시대 암울한 환경에 처했던 한국인들에게 큰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만은 확실하다. 이런 인연 때문인가 인류의 스승 타고르는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여겨진다.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

초양자장

데이비드 봄(David Bohm)은 미국 출신으로 영국 런던 대학의 이론 물리학 교수를 역임했던 물리학자로써 코펜하겐 학파의 불확정성 원리를 정면으로 반대하였다. 그 이유는 우주가 그토록 불확정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의 인식의 한계 때문이거나 아니면 측정 기구의 한계 때문이지 우주 자체가 불확정한 것은 아니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봄(Bohm)은 인간이 미처 모르는 어떤 숨은 변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래서 ``숨은 변수 가설(hidden variable theory)''을 제안하였다[5]. 다시 말하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서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모르기 때문에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속도)을 동시에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봄(Bohm)은 정확한 위치와 정확한 운동량을 동시에 가지는 전자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그 해(解)를 구하기 위하여 숨은 변수 가설을 가정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아인슈타인이 질량과 에너지의 이중성(질량 ↔ 에너지)을 상대성 이론에 의해 해결했듯이 봄(Bohm)은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입자 ↔ 파동)을 숨은 변수 가설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봄(Bohm)은 ``숨은 변수 가설(hidden variable theory)''을 제안한 이후 이 ``숨은 변수''가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였으며 봄(Bohm)은 일차적으로 파동함수를 존재의 확률로 생각하지 않고 실제의 장(場)으로 생각하였고 이 장(場)의 해(解)를 구하는 연구를 계속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인슈타인(Einstein), 플랑크(M. Planck) 및 드브로이(de Broglie)가 밝힌 공식들을 종합하여 양자이론의 새로운 수학 공식을 만들어 냈다. 다시 말하면 봄(Bohm)은 아인슈타인(Einstein)의 공식, (물질 ↔ 에너지), 플랑크(M. Planck)의 공식, (에너지 ↔ 양자 × 파동) 그리고 드브로이(de Broglie)의 공식, (물질 ↔ 파동) 등을 종합함으로써 물질은 원자로, 원자는 소립자로 그리고 소립자는 파동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소립자란 바로 파동의 다발(wave packet)이라고 생각한 것이며 단지 소립자의 종류에 따라서 그 진동수만 다른 것이 소립자라고 생각하였다[6].
그리고 봄(Bohm)은 마지막으로 파동이 어디서 기원하였는가를 연구하였다. 그 결과 맥스월(James Maxwell)의 전자기장 방정식에서 스칼라 포텐셜(scalar potential)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영국의 물리학자 맥스웰[13]은 패러데이(Faraday)의 전자기장 이론을 토대로 하여 20개의 전자기학의 기초 방정식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영국의 전기공학자이며 물리학자인 올리버 헤비사이드(Oliver Heaviside)가 맥스웰의 방정식을 4개로 재구성해버렸다. 그 이유는 맥스웰의 방정식에 들어 있는 전기장 E의 방정식 속에 들어있는 스칼라 포텐셜(scalar potential)과 자기장 B의 방정식에 들어있는 벡터 포텐셜(vector potential)이 양자이론이 없었던 그 당시로서는 그 정체가 확실치 않았고 또한 그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와 같이 멕스웰 방정식에서 힘의 장(場)은 소멸시키지 않으면서 임의로 대칭적으로 포텐셜(potential)을 변환시키는 것을 게이지 변환이라고 부른다. 원래의 멕스웰의 공식대로 해석하면 전자기장(場)은 포텐셜장(場)에서 기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 포텐셜을 삭제하였기 때문에 고전 전자기학에서는 마치 전자기에너지가 전자기장(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게이지 변환은 억지로 짜 맞춘 변환이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참 진리인 것처럼 착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양자 물리학이 시작되면서 전자(電子)의 운동에너지의 출처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포텐셜의 필요성이 발견된 것이며 삭제된 포텐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멕스웰이 본래 밝힌 대로 환원시킨 사람이 바로 봄(Bohm)이었다. 그래서 봄(Bohm)은 스칼라 포텐셜(scalar potential)을 이름을 바꾸어 초양자장(superquatnum field) 혹은 초양자 파동(superquantum wave)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봄(Bohm)은 물질은 원자로, 원자는 소립자로, 소립자는 파동으로 그리고 파동은 다시 초양자장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의 봄(Bohm)의 양자이론이다[6].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봄(Bohm)의 양자이론은 코펜하겐의 표준해석과 상당한 해석상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차이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표준해석에서는 양자는 관측되기 이전에는 불확정적이어서 존재 혹은 비 존재인가를 알 수 없으나 관측하는 순간에 비로소 양자(量子)는 파동 혹은 입자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비하여 봄(Bohm)은 파동은 관측되기 이전에도 확실히 존재하는 것이며 파동이 모여서 다발(packet)을 형성할 때 입자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으며, 파동의 출처는 우주의 허공을 꽉 채우고 있는 초양자장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봄(Bohm)의 양자 이론은 코펜하겐의 표준해석과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봄(Bohm)의 양자이론은 잘 정리된 수학 공식과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코펜하겐 학파의 거물인 보어와 원자 물리학의 대부인 오펜하이머 등이 죽기 이전에는 물리학계에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오히려 이단자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봄(Bohm)의 양자이론이 아스페(Alain Aspect)에 의하여 실험적으로 증명한 이후로 봄(Bohm)의 양자이론은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특히 블랙홀 이론을 창시한 옥스퍼드 대학의 펜로즈(Roger Penrose), 양자이론의 개념적 토대를 세운 세계적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인 파리 대학교의 베르나르 데스파냐(Bernard d'Espagnat) 그리고 1973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자 한 켐브리지 대학교의 조W슨(Brian Josephson) 등은 봄(Bohm)의 양자이론을 열렬히 지지하였다.
봄(Bohm)의 양자이론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5]-[12].
첫째, 우주의 허공은 텅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초양자장(superquantum field)으로 충만 되어 있다고 하였다.
둘째, 초양자장으로 충만 된 우주는 하나(oneness)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비국소성 원리(non-locality principle)라고 불렀다(그림 참조).
셋째,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초양자장으로부터 분화되며, 이렇게 하여 생긴 존재는 크게 3 가지 부류, 즉 정신계, 에너지계, 물질계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 에너지가 분화하는 과정을 보면 초양자장이 중첩되어 파동이 되고, 파동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된다고 하였고, 의식의 분화는 초양자장이 중첩되어 파동이 되고, 파동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되며, 에너지가 중첩되어 소립자가 되며 이 소립자가 의식이 된다고 하였으며, 물질의 분화는 초양자장이 중첩되어 파동이 되며, 파동이 중첩되어 에너지가 되며, 에너지가 중첩되어, 소립자가 되며, 소립자가 중첩되어 원자가 되고, 원자가 중첩되어 분자라는 물질이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에너지, 마음, 물질 등은 동일한 질료로부터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초양자장으로부터 분화하기 때문에 마치 러시아 인형처럼 부분 속에 전체의 정보가 들어 있다고 하였으며 이것을 홀로그램(hologram) 모델이라고 불렀다.
또한 봄(Bohm)은 우주를 홀로그램이라고 말함으로써 수학적 언어로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따라서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 에너지 그리고 마음 같은 것도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봄(Bohm)은 현재의 과학 수준 때문에 실험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은 수학적 이해로 설명하고자 하였는데 이것을 봄(Bohm)의 양자 형이상학(quantum metaphysics)이라고 부른다.
3. 글렌 라인(G. Rein)의 양자 생물학의 중요한 개념
글렌 라인(Glen Rein)[4]은 러시아계의 미국인 생물학자로써 데이비드 봄(David Bohm)의 양자이론을 생물학에 접목시켰으며 ``양자 생물학(Quantum Biology''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글렌 라인의 양자 생물학의 중요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생물은 몸과 마음이 합쳐진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하였으며, 이때 마음은 확실히 존재하는 실체이며, 마음은 반드시 뇌에 위치하는 것은 아니라 몸과 비슷한 크기의 공간을 차지하며 몸의 공간과 겹치면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둘째, 생물의 몸은 장기, 조직, 세포, 분자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부분(explicate order)''이 있는가 하면, 원자 이하의 전자, 양성자 및 중성자, 에너지, 파동 그리고 초양자장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은 부분(implicate order)''이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글렌 라인(G. Rein)의 양자 생물학의 핵심은 생물은 눈에 보이는 육체, 눈에 보이지 않는 육체 및 마음이라는 3 가지 구성 성분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눈에 보이지 않는 육체에 대하여 글렌 라인은 별도로 정보-에너지장(information-energy fiel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고 정보-에너지장은 구체적으로는 미세 파동(subtle wave)이라고 하였다.
마무리하면서
필자는 현대의학은 장점도 많지만 또한 한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으며 따라서 새로운 의학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만약 새로운 의학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양자 물리학의 패러다임으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취지에서 데이비드 봄(D. Bohm)의 양자이론과 글렌 라인(G. Rein)의 양자 생물학을 의학에 접목한 가칭 ``양자의학''이란 것을 꾸며 보았는데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많은 대체의학의 범주를 흡수하고 통일할 수 있었으며 또한 그 이론적 설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 책자에서 논한 양자의학은 동양의 정서와 맞는 점이 많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매우 용이할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본 책자에서 논하는 양자의학은 우리 나라의 현대의학과 한의학을 통합하여 동서의학을 하나로 묶는데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자연은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단순하여 물리학, 생물학, 의학, 사회학 혹은 경제학 등을 두루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진리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100 마리 째 원숭이 원리''가 우리 나라 보완-대체의학에도 적용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보완-대체의학을 주장하지만 언젠가 임계치에 도달하면 모든 의료인들이 보완-대체의학을 인정하게 되는 창발 현상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한다.
출처 : http://html.yonsei.ac.kr/~hlee/psychoanalysis/psychoanalysis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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