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그램 우주- 1
<마이클 텔보트> 정신세계사
제 1부 실재에 대한 놀랍고 새로운 관점
1. 홀로그램 두뇌
이 우주의 시공간이 거대한 하나의 홀로그램이라는 생각을 떠올린 주요 인물은
데이비드 붐(아인슈타인이 가장 총애했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양자물리학자인
런던대 교수)과 칼 프리브램(스탠퍼드대 교수. 신경 생리학자)이다.
이들의 홀로그램 모델은 현재의 과학의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인
텔레파시, 염력, 임사체험, 우주와 일체감등의 초상(일상적인 범주 밖의 정신, 심령현상)현상도
이해될 수 있어서 새로운 우주관으로서 많은 과학자들로부터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프리브램은 1960년대 중반 사이언티픽 아메리카에 실린 홀로그램(최초로 제작됨)에 관한 기사를 보고
기억하는 능력이 두뇌 전반에 걸쳐 분산분포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홀로그램이란? ; 빛의 파동의 간섭현상을 이용하여 만든 필름에 의해 나타난 3차원 영상.
홀로그래피란? ; 홀로그램 사진기술.
이 필름의 놀라운 점은 보통의 사진 필름과 달리 모든 조각들이 필름 전체에 기록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의 필름은 그것을 무수히 잘라도 그 속에 각기 전체상이 있어서
자르지 않은 원판과 똑같은 입체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는 또 인간의 두뇌에서 모든 능력(기억, 인식, 연상 등)역시
부분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각 부분이 전체의 정보를 담고 있음을 밝혀냈다.
<홀로그램 사진술에 대한 자료를 예화자료 - 과학 이야기 2 - 홀로그램 사진술에
자세히 기록해 놓았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2. 홀로그램 우주
우주가 마치 홀로그램과 같은 구조로 되어있다고 확신하게끔 봄을 이끌어온 행로는
물질의 경계인 아원자 입자의 세계에서부터 출발했다.
양자 물리학자들이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물질을 더 잘게 쪼개면 마침내 그 조각들 -전자, 양자 등-은
더 이상 물체의 성질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전자가 때로는 단단한 작은 입자인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지만
물리학자들은 전자가 말 그대로 크기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건 단순한 물체가 아니다.
중요한 건 전자가 입자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파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아원자 현상들을
단지 입자나 파동의 어느 한쪽으로 분류해서는 안되며,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 양쪽에 속해 있는 단일범주의 어떤 것으로 분류해야한다고 믿는다.
이와 같은 것을 양자라고 하며 물리학자들은 그것이 온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근본질료라고 믿고 있다.
이 양자들은 관찰되고 있을 때는 입자로 변신하지만 관찰되지 않을 때는 파동으로 존재한다.
이는 의식을 하면 우주의 모습(정돈된 환상)이나 의식하지 않으면 혼돈의 상태임을 의미한다.
양자의 성질 중에서도 특히 봄의 흥미를 끈 것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아원자 사건들 간에 존재하는 듯한 상호 연결성이라는 기이한 상태였다.
버클리 방사선 연구소에서 봄은 플라tm마에 대한 역사적 업적이 될 연구를 시작했다.
플라스마란 고농도의 전자와 양이온, 즉 양전하를 띤 원자를 품고 있는 가스다.
그는 놀랍게도 전자들이 일단 플라스마 속에 들어오면 개개의 독립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큰 상호연결된 전체의 일부가 된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자들 개개의 움직임은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지만
매우 많은 숫자의 전자들은 놀랍도록 조직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플라스마는 마치 일종의 아메바처럼 계속 자신을 재생산해내고
생물체가 이물질을 포위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모든 불순물을 벽 속에 가두었다.
그것은 2개의 입자가 서로 상대 입자의 움직임을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낱낱의 전자들이 나머지 수십억 개의 입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나 하듯이
행동하는, 입자의 바다가 관련된 현상이었다.
봄은 이러한 전자의 집단적 움직임을 플라스몬이라 명명했고,
이것을 발견한 업적으로 그의 물리학자로서의 명성은 굳어졌다.
“전자는 뿔뿔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전체계가 양자장의 작용을 통해 조직성 없는 군중이 아니라
마치 발레의 무용수들처럼 조화롭게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보여주는 양자적 전일성(완전히 하나로 통일됨)은
기계의 부품들을 조립하여 얻어내는 종류의 통일성이라고보다는
오히려 생명체의 각 부위들의 작용이 보여주는 유기적 일체성에 더 가깝다.”
양자물리학에 대한 봄의 해석은 아양자 차원,
즉 양자장이 작용하는 차원에서는 위치라는 것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했다.
공간 속의 모든 지점들이 다른 모든 지점들과 동등해졌으며,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과 서로 분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성질을 비국소성(초공간성: 공간을 초월한 성질)이라고 부른다.
양자장은 모든 공간 속에 스며들어 있으므로 모든 입자들은 초공간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다.
봄은 실린더 위에 달린 핸들을 돌리자 잉크 방울이
시럽과 같은 글리세린 속에 퍼져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핸들을 반대방향으로 돌리자 희미하게 사라졌던 잉크의 흔적이 서서히 다시 모여서
하나의 잉크 방울로 모습을 드러낸 원통 회전 실린더의 실험을 보고서
홀로그램에 대한 질서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알게 되었다.
홀로그램 필름 위에 기록된 간섭무늬 또한, 퍼져 있는 잉크 방울처럼
육안에는 무질서한 것처럼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플라스마 속의 질서가 외견상 무질서해 보이는
각 전자의 행동속에 숨어있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두 가지 모두가 숨겨진, 혹은 안으로 접혀 들어간(깃든)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홀로그램에 대해 깊이 파고들수록
봄은 우주의 운행원리가 홀로그램의 원리를 채용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즉 우주는 자체가 일종의 거대한 유동하는 ‘홀로그램’이라는 것이며
이 같은 깨달음이 그로 하여금 자신의 온갖 통찰들을
하나의 포괄적이고 응집력 있는 통일체로 결정화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우주에 대한 자신의 홀로그램적 관점을 1970년대 초 논문으로 발표했고,
1980년에는 전일성과 감추어진 질서라는 제목의 저서를 통해
자신의 훨씬 숙성되고 정제된 사상을 개진했다.
봄의 가장 놀라운 주장 중의 하나는 우리의 일상 속의 감각적인 현실이 사실은
마치 홀로그램과도 같은 일종의 환영이라는 주장이다.
그 이면에는 존재의 더 깊은 차원, 즉 광대하고 더 본질적인 차원의 현실이 존재하여
마치 홀로그램 필름이 홀로그램 입체상을 탄생시키듯이
그것이 모든 사물과 물리적 세계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봄은 이 실재의 더 깊은 차원을 감추어진(접힌)질서라고 하고,
우리의 존재차원을 드러난(펼쳐진)질서라고 부른다.
봄은 전자를 한낱 물체라고 믿지 않고 전 공간에 펼쳐진 하나의 총체, 혹은 조화체라고 믿는다.
어떤 장치가 하나의 전자의 존재를 탐지한다면
그것은 단지 전자의 조화체의 한 측면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한 장의 홀로그램 필름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입체상 또한 감추어진 질서와 드러난 질서의 한 예다.
필름은 감추어진 질서다.
왜냐하면 필름의 간섭무늬로 암호화된 이미지는
전체에 걸쳐 접혀들어 있는 감추어진 총체이기 때문이다.
필름에서 투영된 홀로그램은 드러난 질서다.
왜냐하면 그것은 펼쳐진, 인식 가능한 형태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양자가 어떻게 입자나 파동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도 설명해준다.
봄에 의하면 두 가지 측면 모두가 양자 조화체 속에 깃들여 있다.
다만 관찰자가 그 조화체와 상호작용하는 방식이 어떤 측면이 펼쳐지고
어떤 측면이 접혀 있도록 할 것인지를 결정할 뿐이다.
홀로그램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정지된 이미지를 나타낼 뿐
매순간 창조해내는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역동적 우주의 성질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에
봄은 우주를 홀로그램이라고 묘사하기 보다는 ‘홀로무브먼트‘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3.만물의 불가분한 전일성
봄은 우주를 부분들의 조합으로 보는 것은 마치 간헐천에서 솟아나오는 물줄기를
그 샘물과 분리된 것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터무니없다고 믿는다.
전자는 기본 입자가 아니다.
그것은 홀로무브먼트의 한 측면에 붙여진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우주의 삼라만상이 단일 연속체의 부분들이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감추어진 질서와 드러난 질서 그 자체도 서로 하나로 융합되어버린다.
사물은 나뉘지 않는 전체의 일부분이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고유한 속성을 지닐 수 있다.
4. 의식은 좀더 미묘한 형태의 물질이다.
모든 것들은 홀로무브먼트의 다른 측면이기 때문에
그는 의식과 물질이 상호 작용한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 느낀다.
어떤 의미에서는 관찰자가 관찰되는 것이다.
관찰자는 또한 측정장치이자, 실험결과이자, 연구소이자, 연구소 밖을 지나가는 산들바람이다.
봄은 의식이 좀더 미묘한 형태의 물질이라고 믿는다.
형체에 활동력을 불어넣는 것은 마음이 지닌 가장 특징적인 성질이다.
그는 우주를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라고 믿고 있다.
생물과 무생물은 불가분하게 서로 엮어져 있고 생명 또한 우주라는 총체의 전반에 깃들여 있다.
바위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 있다.
왜냐하면 생명과 지능은 모든 물질뿐만 아니라 에너지, 공간, 시간, 전 우주를 이루고 있는 직물,
그리고 우리가 홀로무브먼트로부터 추상해내어 분리된 사물로 오인하는
기타의 모든 것들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봄은 말한다.
홀로그램의 모든 부분들이 전체상을 담고 있는 것과 똑같이 우주의 모든 부분이 전체를 품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낱낱의 세포들도 그 속에 우주를 품고 있다.
모든 나뭇잎과 빗방울, 티끌 또한 그러한 것이다.
공간은 꽉 차 있다. 그것은 진공의 반대인 충만이며 우리를 포함한 만물의 존재 기반이다.
우주는 그 표면위의 한 물결, 상상할 수 없이 광대한 대양 속의 작은 파문이다.
이 파문은 비교적 자생적이어서 안정적으로 비슷하게 되풀이하여 재현되는 다른 것들로부터
구분하여 인식할 수 있는 그림자를 현상계라는 3차원의 드러난 질서 속에 비추어 낸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우리가 보듯이 그 분명한 물질적 성질과 엄청난 크기에도 불구하고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보다 훨씬 더 광대무변하고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 무한한 에너지의 바다도 감추어진 질서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의 전부가 아니다.
감추어진 질서는 우리 우주 속의 만물에 탄생을 안겨준 바탕이므로
그것은 또한 최소한 과거에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아원자 입자들,
모든 형태의 물질과 에너지, 생명 그리고 가능한 형태의 모든 의식까지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여기에 더 봄은 감추어진 질서가 사물의 종국이라고 믿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그 너머에는 상상하지 못한 차원들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끝없이 펼쳐지는 무한한 차원들이...
1982년 물리학자 아스펙트는 아인슈타인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초광속 교신이 일어났거나
두 광자가 초공간적으로 상호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아스펙트의 실험은 일반적으로 2개의 광자 사이의 연결성이 초공간적임을
사실상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이 양자계의 초공간성은 자연계의 보편적인 성질로 말해지고 있다.
아스펙트의 발견은 봄의 우주모델이 옳음을 입증해주지는 않지만 엄청난 뒷받침을 해주었다.
사실 봄은 자신의 이론을 포함한 어떤 이론도 절대적 의미에서는 옳다고는 믿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단지 진리의 근사치일 뿐이며 무한하고 분할할 수 없는 영역에 발을 디딜 때
사용하는 한정된 지도일 뿐이라고 한다.
봄의 이론에 대하여 과학자들 중에는 두 그룹이 있다.
한 그룹은 그의 견해에 대하여 회의적이며, 한 그룹은 그의 견해에 공감하는 경우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이제까지의 과학을 다루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이론 중에서 가장 진보적이며 과학이 다루기를 꺼려하는 많은 문제들
예컨대 심령, 의식, 초현상, 염력 등을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는데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봄과 프리브램의 이론은 우주를 바라보는 새롭고 심오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의 뇌는 궁극적으로는 다른 차원, 즉 시간과 공강을 초월한 심층적 존재차원으로부터
투영된 그림자인 파동의 주파수를 수학적인 방법으로 해석함으로써 객관적 현실을 지어낸다.
두뇌는 홀로그램 우주 속에 감추어진 홀로그램이다.’
이런 종합적 결론이 프리브램에게는 객관적인 세계란
최소한 우리가 믿게끔 길들여져 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깨달음을 얻게 했다.
외부에 있는 것들은 파동과 주파수의 광대한 대양이며,
이 파동과 주파수가 우리에게 현실처럼 느껴지는 것은 단지
우리의 두뇌가 이 홀로그램 필름과 같은 간섭무늬를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막대기와 돌과 기타 친숙한 대상들로 변환시켜놓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렌즈를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간섭무늬로서 경험할 것이다.
어느 쪽이 현실이고, 어느 쪽이 환상인가? 프리브램은 말한다.
“나에게는 둘 다 현실이다. 아니, 달리 말하길 원한다면 둘 다 현실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홀로그램의 일부이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까지도 지어낸다는 것이다
홀로그램 우주 - 2
제 2부 마음과 신체
1. 홀로그램 모델과 심리학
홀로그램 개념은 둘 이상의 개인들의 의식 사이에서
가끔씩 발생하는 설명할 수 없는 연결성에도 조명을 비춰준다.
그것은 스위스의 정신의학자 칼 융의 집단무의식이라는 개념 속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융은 정신과 의사 경험을 통해 환자들의 꿈, 창작물, 공상, 환시 등에는
전적으로 그들의 개인적인 과거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만 볼 수 없는
상징이나 사상들이 담겨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 상징들은 오히려 세계의 위대한 신화나 종교 속의 이미지나 주제들과 더 밀접히 닮아 있었다.
융은 신화, 꿈, 환상, 종교적 계시 등이 모두 동일한 근원,
즉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집단 무의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만물이 무한히 상호 연결되어 있는 그런 우주에서는 모든 개체의식들 또한 상호 연결되어 있다.
이는 인류의 의식은 깊은 차원에서 하나라는 것을 말해준다.
여기서 개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과 직접 관련된 정보만을
감추어진 질서로부터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리학자 앤더슨은 이 선택적인 작용을 ‘차별적 공명’이라고 부르고
그것을 소리굽쇠가 오직 비슷한 구조와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는 소리굽쇠하고만
공명한다는 사실에 비유한다.
2. 꿈과 홀로그램 우주
정신의학자 몬태규 울만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ESP 꿈 실험을 지휘했다.
메이모나이즈 의료센터에서 행해진 꿈 연구는 인간이 최소한 꿈속에서는
현재로서의 설명되지 않는 방식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실험적 증거를 제공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꿈꾸는 상태에서는 가끔 우리의 자아가 깨어있는 상태의 자아보다
훨씬 더 지혜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울만은 치료과정 중에 환자가 자신에 대한 진실을 인식하고 수긍하기에 실패하면
그 진실은 꿈을 통해 거듭거듭 되풀이해서 나타나며,
그로 하여금 진실을 깨달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려는
분명한 의도를 띠고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꿈이란 이 세계를 낱낱이 분리시켜 놓으려는 우리의 끝도 없는 충동에 대한
자연의 반사적 작용방식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감추어진 것으로부터 드러난 것으로의 자연적인 변환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봄과 프리브램도 시대에 걸쳐 신비가들이 보고하는 체험들 -
예컨대 우주와의 합일체험, 즉, 모든 생명과의 일체감 등 - 이
감추어진 질서에 대한 묘사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3. 자각몽과 병존우주들
자각몽이란 꿈꾸는 사람이 완전히 의식이 깨어 있어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독특한 종류의 꿈이다.
자각몽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종종 여러 방법으로 꿈을 통제할 수 있다.
즉, 상황을 재설정하여 악몽을 유쾌한 꿈으로 바꾼다거나
특정 개인이나 상황을 마음대로 불러내는 등으로 말이다.
자각몽은 매우 현실적이며 에너지로 충전되어있고,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며 문제를 창조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다.
울프는 한 장의 홀로그램필름이 실제로는 두 가지의 상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즉 필름 뒤의 공간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상과, 필름의 전방에 나타나는 실상이다.
홀로그램의 허상은 거울 속의 상과 마찬가지로 공간 속에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의 초점으로 모이는 광파에 의해 형성되며, 이것은 착각이 아니다.
실상은 공간 속에 자리를 차지한다.
자각몽이 기이할 정도로 진동하는 느낌을 주는 것은
파동이 퍼져나가기 때문이 아니라 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초점에 집중되는 곳에 관찰자가 있으면 그 관찰자는 그 광경 속에 스며들게 될 것이고
초점에 집중된 장면은 그를 그 속에 포함시킬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꿈의 체험은 생생하게 나타난다고 울프는 설명한다.
또한 울프는 자각몽이 사실은 병존우주
(개인적인 자아에 의식을 맞추었을 때의 현실우주-낮은 차원의 우주-는 대아적인 의식에
맞추었을 때의 우주-높은 차원의 우주-에 부분 집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 듯함)를
방문한 것이라는 가설을 편다.
그것들은 더 크고 더 포괄적인 우주적 규모의 홀로그램 속에 있는 작은 홀로그램들인 것이다.
존스 홉킨스 의대의 정신과 조교수인 스타니슬라브 그로프는
우리의 정신이 홀로그램적 상호연결성을 통해 여행할 수 있는 탐험로는
광대하기 이를 데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는 환각제인 LSD의 임상적 용도를 연구하던 1950년대에
비일상적 의식상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차례 반복된 환자들의 치료과정 중 일관하여 어어지는 확연한 연결성이 발견되었다.
경험 내용은 갈수록 심층화되어가는 무의식의 연속적 전개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환자들의 공통적인 경험은 자궁속의 경험을 되살린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심장박동음의 특징, 자궁 속에서 감지되는 음향현상의 성질,
태반 속의 혈액순환에 관한 구체적 사실,
심지어는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세포적, 생화학적 작용들까지도 자세히 묘사했던 것이다.
그들은 또 어머니가 임신 중에 가졌던 중요한 생각과 느낌,
그녀가 겪었던 신체적 충격 등의 사건들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당혹스러웠던 것은 환자의 의식이 일상적 에고의 경계 너머로 확장되어
다른 생명체나 심지어 다른 무생물로 추측되는 것들을 탐사하게 되는 경험이었다.
예컨대 그로프는 한 여자환자를 치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녀는 자신이 선사시대의 파충류 암컷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환자들은 또 그들의 친척이나 조상들의 의식 속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한 여인은 어머니의 세 살 적 느낌을 경험했고
어머니가 그 당시 겪었던 충격적이고 공포스러운 사건을 정확히 묘사했다.
나중에 어머니는 이 모든 내용이 사실임을 증언했고,
이전에 누구에게도 그것을 말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다른 환자들도 수 십 년 심지어 수 백 년 전 조상들이 겪었던 사건들을
마찬가지로 정확하게 묘사해냈다.
그밖에 인종적, 집단적 기억에 접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들의 교육정도나 인종, 관련방면에 대한 이전의 지식 등에 비추어 불 때
너무나 비범한 수준의 지식과 밝혀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로프의 LCD 피험자들이 체험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없어 보였다.
그들은 진화계통상의 모든 동물, 심지어 식물의 느낌까지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 같았다.
그들은 적혈구, 원자, 태양 내부의 핵융합반응, 지구의식, 심지어 우주의식까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더욱 기이한 일은 더 높은 차원으로부터의 영적인 인도,
기타 초인간적 존재들과도 조우했다는 사실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 환자들은 다른 우주, 다른 차원의 현실로 보이는 곳으로 여행했다.
4. 홀로그램 신체의 노래
프랭크라는 노인은 매우 치명적인 종류의 후두암에 걸려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5%미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방사성 종양학자인 칼 사이먼튼으로부터 방사선을 쬐면서
심상을 통한 치료를 받은 결과 2개월 후 말끔히 나았다.
마음속에서 그리는 심상이 어떻게 불치의 암과 같은 무서운 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사이먼튼이 사용하는 심상화 기법의 개발을 도왔던 과학자 중 한 사람인 진 액터버그는
두뇌가 지닌 홀로그램적 상상력이 이것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믿는다.
우리가 심상을 홀로그램 방식으로 인식한다면
심상이 신체의 기능에 전능한 힘을 미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상, 행동방식, 그리고 생리적 수반효과는 동일한 현상의 한 단일화된 측면들이다.
모든 행위는 감추어진 질서 속의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다.
상상은 이미 어떤 형체의 창조다.
그것은 이미 의도를 지니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모든 움직임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싵체 등에 영향을 미쳐서 감추어진 질서의 미묘한 차원으로부터
창조가 일어나 드러난 질서 속으로 펼쳐질 때까지 자신이 그 속을 관통하여 흐르게 한다.
액터버그는 상상을 통해 촉발되는 생리작용은 실제적 힘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매우 구체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신체는 현실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현실이라고 상상하는 것에 반응한다.
가필드는 심상화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신체의 움직임이
두뇌 속에서 홀로그램 방식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5. 문화적 신념이 가져오는 결과
트로브리앤드 섬의 부족은 결혼 전에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지지만 혼전 임신은 엄격히 금한다.
그들은 어떤 형태의 피임도 하지 않으며, 낙태도 거의 시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전임신의 사례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이것은 그들의 문화적 신념 때문에
미혼여성들이 무의식적으로 임신을 스스로 방지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장기이식의 성공률에도 두려움은 분명히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950년대만 해도 신장이식의 성공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러다가 한 의사가 성공적으로 수술을 해 낸 후
전 세계적으로 성공률이 모든 예상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외과 의사가 환자의 뱃속으로 들어가서 내장기관의 상태를 바꿔놓는 것처럼,
유능한 최면치료사는 우리의 정신 속으로 들어와서 모든 신념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형태의 신념인 무의식적 신념들을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신념의 올바른 층에 접근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유전자 구조까지도 재배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적적 사건의 최소한 몇몇 사례에서는
신의 섭리가 아니라 신념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
마음의 힘으로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카톨릭 기적 중의 하나는
성흔 발현(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자국) 이다.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가 이 십자가 혈흔을 나타낸 최초의 성자라는데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런데 그가 죽은 이후로 수백 건의 다른 성흔 발현 현상이 일어났다.
초심리학자 스코트 로고가 지적한 바에 의하면
로마의 관습에 따르면 죄수들에게 십자가형을 줄 때 못을 손목에 박는데
이는 손바닥에 박아서는 매달린 사람의 무게를 지탱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성흔 발현자들은 못 자국이 손바닥에 박혀있었다.
그것은 미술가들이 8세기 이래로 그렸던 성화와 조각상들에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성흔의 크기와 모양과 위치는 성흔 발현자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러한 불일치는 그것이 동일한 근원, 즉 예수의 실제 성흔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는 사람들의 상상력(신념)의 작용 때문임을 알려준다.
이것은 마음이 만들어낸 작품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홀로그램 우주 속의 심신 상관관계의 본질은 바로 위와 같은 관계인 것이다.
6. 정신신경의 메커니즘과 홀로그램
국립정신건강연구소의 두뇌생화학 과장인 캔데이스 퍼트는
면역세포들이 뉴로펩티드 수용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뉴로펩티드란 두뇌가 정보 전달에 사용하는 분자인데 두뇌의 전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면역계 속의 세포에 두뇌에만 있다고 생각되어 왔던
뉴로펩티드 수용체(전보 수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면역계가 두뇌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 두뇌의 연장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뉴로펩티드는 신체의 다른 여러 부분에서도 발견 되었다.
이 사실은 퍼트로 하여금 두뇌와 신체의 경계를
더 이상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고대 중국의 침술은 몸속의 모든 내장기관과 뼈는
몸 표면의 특정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이 침 자리들을 침이나 기타 자극방법으로 자극함으로써
그 지점과 연결된 신체 부위에 영향을 미치는 병이나 불균형상태가
완화되고 낫기까지 한다고 믿어졌다.
캘리포니아 의대 교수인 테리 올슨은 환자들의 몸을 시트로 덮어 놓고
검사결과를 모르는 침술가에게 이들의 귀만 진찰하게 했다.
결과가 나왔을 때, 귀 진찰이 기존의 의학적 진단과 75.2%나 일치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20년 동안 중국, 일본, 독일 등지에서 임상데이터를 추적해본 결과
손, 발, 팔, 목, 혀, 심지어 잇몸을 포함한 18개의 다른 침술 소체계 홀로그램의 증거들을 수집했다.
그는 이 소체계야 말로 ‘홀로그램판 신체해부학’이라고 느끼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다른 비슷한 체계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리처드 리바이턴(이스트 웨스트지 편집 주간)은 발 반사요법
(발을 자극함으로써 신체의 모든 부위에 접근하는 마사지 요법),
홍채진단법(눈의 홍채를 검사하여 신체상태를 진단하는 방법)등도
신체의 홀로그램적 성질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도 수상, 관상, 지문 등에 대한 홀로그램적 검사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다.
홀로그램 우주에서는 사물이 너무나 미묘하게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꿈 하나가 풍뎅이의 신비로운 출현을 야기하고,
병을 일으키는 인자가 또한 손바닥에 독특한 손금과 지문 패턴을 만들어 내는 등
낱낱의 모든 현상이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보편적인 유사성이 만물을 서로 묶어놓고 있기 때문이다.
7. 염력과 물리현상
봄은 의미에 대해 반응할 수 있는 것은 의식만이 아니라고 본다.
신체도 역시 의미에 반응할 수 있다.
우리가 정신적 세계에 속해 있다고 느끼는 생각 속에 담긴 정보는 동시에
이 생각이 물질적 세계에서 의미하는 바인 신경생리학적, 화학적, 물리적 활동이므로
이 고리는 끊어 놓을 수가 없다고 봄은 말한다.
전자가 그리고 사실상 모든 아원자 입자들이 정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은
의미에 반응하는 능력이 의식만의 속성이 아니라 모든 물질의 속성임을 말해준다.
봄은 염력을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모든 보편적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물질적 시스템의 기본 메커니즘에 부합하는 뜻에
한사람이나 많은 사람들의 정신작용이 집중된다면 염력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로버트 G 얀은 정신집중에 관한 실험을 통해 염력효과를 낼 수 있는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몇몇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실혐을 통해 자원자들이 저마다 다른 일관성 있는 특징을 띤 결과를 만들고
그 결과는 사람마다 너무나 독특했기 때문에 그것을 사인(sig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개인별 염력이 개인별 재능과 같이 사람마다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의식은 입자와 같은 성질을 가질 때는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파동과 같은 성질에서는 의식도 다른 모든 파동현상과 마찬가지로
원격적인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처럼 원격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작용의 하나가 염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염력을 사용하여 물리적 세계에서
최소한 이보다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 같다.
생물학자 라이얼 왓슨은 필리핀에서 심령치료사를 만났는데
그는 환자의 몸에 손도 대지 않고 단지 환자의 몸 위 10인치 높이에 손을 들고 있는 채로
환자의 피부 한 지점에 초점을 맞추면 즉석에서 절개자국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왓슨도 실제로 그것을 경험했으며 아직도 그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한다.
윌리엄 터프츠 브릭햄은 하와이 원주민 주술사 즉 카후나가
부러진 뼈를 즉석에서 회복시킨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그 사건은 브릭햄의 친구인 콤즈가 목격했다.
사건인즉, 손님 중 한 사람이 해변 모래사장에서 넘어지면서
다리뼈를 심하게 다쳐 뼈가 살가죽을 뚫고 삐져나왔다.
카후나로 인정받고 있는 그의 양할머니가 상처부위를 손으로 누르면서
몇 분 동안 기도와 명상을 하고 나서 일어서며 치료가 끝났다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 사나이는 제 발로 일어서 걷더니 언제 다쳤냐는 듯 멀쩡해져 있었다.
8. 군중의 염력
염력현상의 가장 놀라운 사례이자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현상의 하나는
18세기 초반 파리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은 네덜란드의 영향을 받은 얀센파라는 청교도의 한 지파를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인데,
그것은 존경받던 성자 프랑수아 드 파리라는 얀센파 신부의 죽음에 의해 촉발되었다.
얀센파 신도들은 칼이나 검, 혹은 도끼로도 베이거나 찔리지 않았으며,
또 발작자의 배에다 드릴의 날카로운 끝을 대고 망치로 척추를 뚫고 내장이 모두 파열될 정도로
사정없이 내리치기도 해봤지만 그들은 전혀 다치지 않았다.
이들이 발작기간 동안 보여준 묘기는 상처입지 않는 재주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투시가가 되어 감춰져 있는 물건들을 알아볼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눈을 단단히 가린 상태에서도 글을 읽을 수 있었으며,
공중부양의 예도 보고되었다.
9. 염력은 우주의 필름을 재편집하기도 한다.
봄은 이러한 개인적인 경우 외에도 어떤 비범한 의식상태를 통해서
감추어진 질서를 직접 경험하고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경우도 상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현상계에 나타나는 현상을 조작 내지는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물체를 염력으로써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은 그런 물체들을 처음에 만들어낸 우주의 필름에 접근시켜
그 내용을 재편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성과 같은 기존의 자연법칙을 완전히 우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마음은 염력이 시사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극적인 방식으로
물질계를 재구성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뜨거운 용암 위를 아무런 상해 없이 걸어다닌다든지
불 속에 들어가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의 기적이 그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은 최면상태가 아니라도
발휘된다고 물리학자 해럴드 푸토프와 러셀 타그는 주장한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저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 후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대로 묘사하기만 하면 원격투시를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방에 앉은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면
그것은 다른 방에 있는 사람의 폴리그래프에도 기록된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밝혀졌다.
우리는 깊은 차원에서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상호 연결성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로부터
감쪽같이 현실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다면
두 사람 이상의 최면된 사람들이 동일한 환상현실을 만들어 내려고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결과는 흥미로웠다.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환상현실을 훌륭히 만들어낸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밝혀진 것이다.
염력이 마음으로부터 물질 대상에 전달된 의미의 공명인 것처럼
텔레파시는 마음으로부터 마음으로 전달된 의미의 공명으로 볼 수 있다고 봄은 말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격투시는 의미가 물질 대상으로부터 마음으로 전달되어 공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만물이 우주로부터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만물의 상호연결성의 일부가 되어 그것과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연결되고,
그 존재와 인연의 옷깃을 스친 모든 동물과 사물 속에 편재해 있는 의식과 연결되며,
감추어진 질서를 통해 자신의 과거와 연결되며
그것을 손에 들고 있는 정신측정능력자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현대의 가장 유명한 물질화 사례는 남인도 안드라 프라데시 주의 벽지에 살고 있는
성자인 사티야 사이바바가 보여주는 현상일 것이다.
그는 허공에서 보석함, 반지, 보석등을 끄집어내어 그것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준다.
그는 또 맛있는 음식과 과자 등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손에서 신성한 재를 쏟아 낸다.
테레제 노이만 수녀는 성흔 발현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지 않고 사는 초인간적인 능력을 보였다.
그녀는 35년 동안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전체 현실을 바꿔놓는 경우도 있다.
왓슨은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능력을 지닌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그 여자의 이름은 티야였다.
티야가 기이한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나무 숲 전체를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밝은 땡볕 아래 혼자 서 있었다.
그리고 몇 초 후 그녀는 나무숲이 다시 나타나게 하였다.
그녀는 몇 번 더 나무숲이 나타났다 사라지게 하면서 춤을 추며 그것을 즐겼다.
이러한 현상들은 갈수록 현실이 진정한 의미에서는
하나의 홀로그램, 하나의 가상 구조임을 암시한다.
스탠퍼드 대학교 재료과장인 윌리엄 틸러는 현실이란
SF물인 스타트렉에 나오는 홀로데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홀로데크란 그 속에 들어간 사람이
혼잡한 도시나 울창한 숲 등 자신이 원하는 어떤 현실도
홀로그램 시뮬레이션으로 불러낼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다.
틸러는 우주 또한 모든 생명체들의 총합체에 의해 창조된 일종의 홀로데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경험의 도구로서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것을 지배할 법칙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식의 첨단에 다다르면 실제로 그 법칙을 변화시킬 수가 있다.
곧 우리는 갈수록 새로운 물리학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우주가 하나의 호로
데크라면 물리법칙으로부터 은하계 물질에 이르는 안정되고 영원해 보이는 모든 것들은
현실장, 곧 함께 꾸는 거대한 꿈속의 소품들보다
더 현실적이지도 덜 현실적이지도 않은 환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든 영원성은 환상이며 오직 의식만을 살아있는 우주의 의식만을 영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성자들은 또 분신의 능력이 있다. 즉 동시에 두 장소에 나타나는 능력이다.
이는 우리의 몸이 객관적인 물체가 아니라 마치 비디오 화면에서
이미지가 사라졌다 나타났다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한 장소에서 꺼졌다가
다른 장소에 다시 켜질 수 있는 홀로그램 입체상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또 어떤 이는 몽환상태에서 팔이나 손이 존재계로부터 사라졌다가
다시 물질화되곤 하는 현상도 발견할 수 있었다.
10. 홀로그램적 투시안
프리브램은 시각에 대한 연구에서 우리가 보는 내용의 50% 이상은
실제로 눈으로 들어온 정보에 근거한 내용이 아님을 밝혀냈다.
이 50% 이상의 내용은 세상이 어떻게 보여야 한다 는 우리의 기대로부터 짜깁기되는 것이라 한다.
즉 시각 기관은 눈일지 모르나 정작 보는 것은 두뇌에서 만들어낸 생각이라는 것이다.
프리브램에 의하면 현실은 실제로는 하나의 주파수 영역으로서
우리의 두뇌는 이 주파수를 외형적인 객관세계로 변환시키는 일종의 렌즈라고 이야기 한다.
고도의 능력을 갖춘 사람 중 하나인 신유가인 바바라 브레넌은 차크라와 층들,
그 밖의 미묘한 인체 에너지 장을 매우 선명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보는 것을 바탕으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
또 심령가인 캐럴 드라이어는 사람의 오라를 눈을 감고도 눈을 떴을 때와 마찬가지로 읽어 낸다.
실제로 그녀는 에너지 장에만 의식을 집중하기 위해 대개 눈을 감은 채 오라를 읽는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천박한 사람들은 천박하고 단조로운 오라를 가지고 있으며,
복잡한 사람의 오라는 더 복잡하고 흥미롭다.
사람의 에너지 장은 마치 지문처럼 사람마다 다르며 똑같은 경우가 없다고 한다.
그녀의 더욱 특별한 재능은 상대방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봄으로써
그 사람의 약점과 장점, 욕구, 정서적, 심리적 영적 존재의 전반적 건강상태 등을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집어내는 능력이다.
신체 운동학 교수인 발레리 헌트는 오라를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의 에너지 장에서 특정한 색깔을 보았을 때
근전도계도 늘 특정한 패턴의 주파수를 감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것을 색깔과 관련지을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오라를 읽는 사람이 어떤 사람의 에너지 장에서 푸른색을 보았다면
헌트는 오실로스코프에 나타나는 패턴을 보고 그것이 푸른색이 맞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헌트는 인체의 모든 전기적 체계가 그 주파수 측면뿐만 아니라
다른 면에서도 홀로그램적 성질을 갖고 있음을 밝혔다.
예를 들어 뇌파측정기에 감지되는 전기활동은
뇌에서 가장 강하지만 전극을 발가락에 갖다대도 뇌파를 측정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심전도도 새끼손가락에서 측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녀의 놀라운 발견 중 하나는 특정한 소질이나 능력은
그 사람의 에너지 장 속에 존재하는 특정한 주파수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의 의식의 주된 관심사가 물질적 세계에 맞추어져 있으면
그들의 에너지 장의 주파수는 낮은 범위에 머무는 경향이 있고
신체의 생리적 주파수인 초당 250사이클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심령가나 치유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에너지장속에 400-800 사이클의 주파수를 갖고 있다.
채널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800-900사이클의 영역 안에서 활동한다.
900사이클 이상의 주파수를 지닌 사람들은 신비적인 인격들이며 심령가나 영매들은
흔히 정보의 단순한 매개체에 지나지 않지만
신비가들은 그 정보로 무엇을 할지 아는 지혜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만물의 우주적 상호 연결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인간 경험의 모든 차원과 교감하고 있다.
그들의 주파수는 동시에 이러한 능력과 관련된 대역을 훨씬 너머 확대되어 있다.
그는 에너지 장 속에 2만 사이클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만났다.
이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왜냐면 신비전통에서는 고도로 영적인 사람들은
일반인들보다 높은 진동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헌트는 낮은 주파수로부터 나오는 데이터를 넣었을 때 뇌파 측정기는 직선을 만들었으나
매우 높은 주파수를 분석했을 때 역동적이며 고도로 질서 잡혀있는 패턴을 갖고 있음을 알아냈다.
헌트는 이를 카오스 홀로그래프 패턴이라고 부른다.
11. 이미지의 홀로그램화
심령가 중 한 사람인 리치는 내담자의 머리 주위에 마치 작은 영화 같은 투명한 동영상을 본다고 한다.
이 동영상은 그 사람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인체의 에너지 장 속에서 이미지를 투시하는 능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거의 300년 전 엠마누엘 스웨덴보그는 자신이 사람들 주위에서 파형질을 볼 수 있으며
그 파형질 속에 그 사람의 생각이 그림으로 나타나 보인다고 보고했다.
그는 자신의 에너지 장에 있는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는 그의 모습이 사람의 형체로 나타나는데
그 주변으로는 내가 어린시절부터 그에 대해서 생각하고 알아왔던 모든 내용들이
마치 흐르듯이 물결친다.”
로널드 웡 주는 개인의 역사는 신체 속에 들어 있는 에너지 패턴 속에도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신체를 일종의 소우주라고 생각한다.
인체는 그 사람이 다루고 통합시키려고 애쓰는 모든 다양한 요소들을
그 자체 속에 반영하고 있는 우주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에너지 장을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중 종종 신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경우도 있다.
드라이어는 신체의 모든 기관-내분비선, 뼈, 내장기관, 세포 등이
자신의 고유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
틸러는 광범위한 추론을 통해서 우주 자체도 하나의 미묘한 에너지 장으로부터 출발하여
점차 밀도가 높아지고 유사한 과정을 통해 물질화되었으리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의 견해로는 신은 우주를 신의 마음속에서 하나의 패턴 혹은 생각으로 창조했을지도 모른다.
심령가들의 눈에 보이는 인체 에너지 장 속의 이미지처럼
이 신성한 패턴은 하나의 틀로서 작용하여 갈수록 밀도가 큰 우주에너지 장을 형성시킴으로써
여러 차원의 홀로그램을 따라 내려와 결국은 물질우주의 홀로그램으로 나타났으리라는 것이다.
또 그것은 동시성이나 무의식의 가장 내밀한 곳으로부터의 작용이나 이미지가
외부 현실 속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메커니즘까지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생각은 홀로그램 우주의 미세에너지 차원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12. 에너지 장의 반응
헌트는 인간의 에너지 장은 두뇌보다도 빨리 자극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녀는 에너지장의 근전도와 두뇌의 뇌파도를 동시에 기록하면서
큰 소리를 내거나 밝은 빛을 비출 때 에너지 장의 근전도계는
뇌파도에 반응이 나타나기도 전에 자극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우리가 두뇌를 인간과 세계 사이의 관계에 중요한 요소라고
너무 지나치게 과대 평가해왔다고 생각한다.
두뇌는 단지 정말 훌륭한 컴퓨터일 뿐이다.
하지만 창조성, 상상력, 영성 등의 모든 것과 관계되는 마음의 측면들을
두뇌 속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마음은 두뇌가 아니다. 마음은 바로 이 에너지 장 속에 있다.
드라이어도 내담자의 표정으로 반응을 살피려고 하지 않고
눈을 감고 그들의 에너지 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핀다.
“내가 말을 할 때 그들의 에너지 장의 색깔이 변하는 것이 보인다.
나는 나의 말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물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예컨대 그들의 에너지 장이 흐릿해지면
나는 그들이 내가 하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다.”
2010년 12월 19일 일요일
티벳 사자의 서 동영상 (히스토리 채널
이 경전을 지은 파드마삼바바는 인도와 티벳의 히말라야 접경 지역에서 최고의 스승이자 문화 영웅으로 추앙받는 전설적인 인물이다. 8세기경 티벳 왕의 초청으로 티벳에 간 파드마삼바바는 인도에서 갖고 온 신비 경전들을 티벳어로 번역하기 시작했고, 인간을 깨우침으로 인도하는 책들을 직접 저술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모두 100권이 넘는 책을 남긴 그는 아직 비밀의 가르침들을 세상에 알릴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책들을 티벳 전역의 동굴에 한 권씩 숨겨 두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적당한 시기에 다시 육체를 갖고 환생할 수 있는 능력을 전수하여 그 비밀의 가르침들을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수백 년 뒤 제자들은 한 사람씩 세상으로 돌아와 비밀의 책들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모두 65권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잘살고 인생에서 최상의 것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지침을 항상 추구해왔다. 그렇지만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죽음에 대해 사색하거나 명상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특별한 책에서 자신의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것이다. 죽음은 이번 생에서의 거역할 수 없는 마지막 축제이다. 그 축제로서의 화려한 죽음을 위하여 위기와 변화의 시간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통과하도록 하는 인생의 안내서이자 영혼의 참고서가 바로 이 책이다.
우리는 갖가지 불행을 안고 수없이 다시 태어나 혼란스럽게 뒤범벅이 된 감정으로 자신의 처지에 응답하며 살아간다. 일생 동안 집착과 욕망, 공포심, 혐오감, 싫증, 혼돈 속에서 외부 사물에만 관심을 두고 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자세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마음은 극심한 불안을 느끼며 몹시 놀랍고 두려울 것이며, 죽음 이후의 실재 인식은 물론이고 정신적 진화도 불가능할 것이다.
?
<티벳 사자의 서>는 원래 죽음과 재탄생의 혼란스럽고 당혹스런 체험을 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안내서로서, 사후세계에서 겪게 될 많은 위험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일상생활의 문제로 괴로운 사람들도 여기서 많은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너무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책인바, 정신적 진화에 관심이 있고 또 명상을 통해서 그것을 달성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책에서 가장 소중한 지혜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지난달 경기도의 한 조계종 선원에 '와~' 하고 환호성이 터졌다. 푸른 눈의 외국인 승려를 향한 것이었다. 사진을 함께 찍어달라는 요청도 쏟아졌다. 무시한 채 문을 나서려던 승려가 돌아서서 버럭 소릴 지른다. "이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거울에 비친 당신 자신, '참나'를 봐야지!"
이틀 뒤 승려는 서울 방배동 불교TV 법회장에 나타났다. 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가로지른 승려는 높은 단상 위로 몸을 날리더니 눈 깜짝할 새 가부좌를 틀었다. 승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세상에서 이 자세가 제일 편해, 정말 좋아요."
현각(玄覺·46). 하버드대 출신의 선승(禪僧)이라 하여 세상 이목을 집중시켰고, 28세 꽃 같은 나이에 삭발하고 출가한 사연을 적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 한국 불교계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 승려.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참선하는 그의 사진(김홍희 작)은 일반에도 선명히 각인되어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국내든 국외든 그가 여는 법회에는 수백 명의 대중이 몰렸고, 법회가 끝나면 그를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랬던 현각이 돌연 한국을 떠났다. 2008년의 일이다. 명분은 '유럽 만행(萬行)'이었지만, 스님은 "스승이신 숭산스님이 입적(2004년)한 날부터 한국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폭풍(perfect storm)처럼 몰아닥친 명성"이었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쇼'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요." 한국을 떠난 그는 유럽 만행을 거쳐 2009년 독일 뮌헨에 정착, '불이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했다.
G20 정상회의를 기념해 열린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참석차 지난달 서울에 온 스님을 만나 '만행'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20대 청년처럼 여전히 혈기왕성한 스님은 특유의 직설화법과 유머, 거침없는 제스처로 시원시원한 답변을 내놨다. 난처한 질문에는 '선문답'으로 응수했다.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서 말씀을 너무 짧게 하시더라. 모처럼 스님 말씀 들으러 온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선승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회에서) 프랑스에서 온 패널 한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하셨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평화 대신 전쟁, 갈등과 환경만 파괴하는 종교는 이제 버려야 한다. 2010년이 되었는데 인간이 여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스님 또한 불교에 몸담고 계시지 않나.
"이건 껍질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종교를 만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개신교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예수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말은, 예수나 부처에 대한 신격화 혹은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이다.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종교가 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였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왜 한국을 떠나셨나.
"아까 보지 않았나. 법당에서 기도하시던 분들이 연예인이 온 줄 알고 달려나오더라. 내 죄다. 애초에 내가 무슨 계획을 세워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로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매스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니 법회, 특강, 주례,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폭풍인기에 한몫했다.
"그래서 창피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나.
"2004년 숭산 스님 열반하시던 날. 바로 떠났어야 했는데 한국 불교의 세계화라는 은사 스님의 일이 안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한국 불교계와 갈등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는 현각을 마뜩잖게 여기는 한국 스님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라.
"모르겠다. 만일 그랬다면 나의 스님답지 않은 언행,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회할 때 하도 요란스럽게 하니까 주위에서 '스님이 그러시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말했다. 나는 한국 스님 되려고 온 거 아니다. 참나를 찾으러 왔다."
―스님은 늘 한국 불교를 예찬만 하시더라. 떠나 계시니 이제 쓴소리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가르침만 받았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지 마시고 한 말씀 해달라.
"당신이 미국 우리 집에 와서 2~3주 살다 나가면서 저 집은 이렇더라 저렇더라 흉보면 우리 가족은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선(禪)불교는 재즈다
폴 뮌젠이 본명인 현각은 미국 뉴저지의 보수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 중 일곱째였던 현각은 예일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에 심취했고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다. 하버드 재학시절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스님 물음에 할 말을 잃자, '하버드 학생이 당신 자신을 모른단 말인가?' 하며 껄껄 웃으시더라.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코드였다."
―'만행' 책에 보니 유달리 총명했던 아들에게 부모님 기대가 엄청났더라.
"삭발하고 처음 집에 들어간 날 부모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보단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지만 아쉬움은 여전하시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그 뒤로 너의 동창 몇이 서 있더구나, 하고."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 오늘날까지도. 난 반듯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나.
"음…. 누가 그림을 잘 그리듯이 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미'와 '도전'이 중요했다.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 말씀대로 살지만, 난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남들 기대에 따라 사는 것, 예측 가능한 결과는 얼마나 재미없고 무료한가."
―정치를 하셨어도 잘했을 것 같다. 선동가 타입?
"그런 말 많이 들었다. 글쎄. 정치를 했다면 나의 내면은 죽지 않았을까? 겉으로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과연 행복했을까?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나?"
―즐거워 보이신다. 에너지 넘치고.
"보이는 대로다. 선불교는 재즈다. 선승의 생활은 재즈와 같다. 많은 종교들이 형식과 틀, 어떤 룰을 강조하는데 선불교는 다르다. 재즈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 나는 선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불교가 재즈라니?
"히피로서도, 예술가로도 자유롭게 살 수는 있다. 불교의 자유는 다르다. '작은 나'를 벗어나 남을 위해 자유하는 것이 불교다. 미국에서 자유, 자유를 외치지만 기분 나쁘면 총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탕' 쏠 수 있는 자유들이 난무한다. 여기 포크가 있다. 이 포크는 나의 생각 방향에 따라 음식을 집어먹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무기도 된다. 불교가 말하는 자유는 에고(ego)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남을 위한 자유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결혼한다고 해서 '참선'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오로지 '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유럽 가톨릭 교회들이 사제들의 '섹스 스캔들'로 비난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신부나 수행자들의 결혼을 금하는 것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는 수도승이다. 그것이 나의 답이다."
나는 외로워지고 싶었다
외국인 승려 현각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한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법정 스님이 '깨달음의 거울'이라는 책으로 우리말로 풀이한 것을, 2006년 영문으로 번역, '미러 오브 젠(The Mirror of Zen)'이라는 책으로 미국과 유럽에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서산대사가 후학을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이끌기 위해 50여 종의 경론과 조사의 어록에서 요긴한 대목을 간추려 설명한 책으로 공부 방법과 화두, 수행의 경로 등을 밝힌 선의 명저다.
―법정 스님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2004년 봄, 스님이 나를 길상사로 부르셨다. '깨달음의 거울'이란 책을 주시며 영문으로 번역해달라 부탁하셨다. 고사했다. 난 학자도 아니고, 한자도 모르는 수행승이지 않나. 그런데 스님이 '네가 공부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들었다, 번역할 자격이 있다' 하시더라. 서산대사가 조선시대에 쓴 책을 서양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직역보단 의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필요 없는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법정 스님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나.
"모범 수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반듯한 수행자."
―'오두막에 살면서 수행정진 하고 싶다'고 하자 법정 스님이 '자네는 살 수 없다'고 하셨다던데.
"나처럼 키 크고, 코 크고, 얼굴 허연 승려가 와 있으면 이 마을 저 마을로 소문이 나니 조용히 살기 힘들 거란 뜻이었다."
―오두막에 살고 싶으셨나.
"물론이다. 잠시 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보더라.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숭산 스님은 영웅이자 원수
―하버드의 엘리트를 한국의 절간으로 불러들인 숭산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가끔은 아버지였고, 가끔은 어머니였다. 코치이자 트레이너였고, 영웅이자 원수였다."
―원수라고 했나?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식의 감동이 없는 사람, 드라마가 없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많이 혼나셨다 보다.
"책(만행) 냈을 때. 나이도 어리고 수행 경험도 짧은 제자가 자기를 빨리 과시하려는 욕심으로 보이셨을 테니. 표지에 얼굴도 나오지 않았겠나. 하지만 내겐 스승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무엇인가.
"그때만 해도 숭산의 사상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자들로서는 이를 집대성할 사명이 있어서 이런저런 출판사로 타진하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거절당했다. 그때 한 출판사가 내 출가기를 써주면 스승의 책도 함께 출판해주겠다고 했다. 솔깃했다. 고민 끝에 계약했고 6주일 만에 원고를 썼다. 탈고한 뒤 100일간 안거에 들어갔는데 마치고 나와 보니 난리가 났더라. 그 책 때문에 숭산 스님도 세상에 더 크게 알려졌다."
―오로지 스승의 책 때문에 '만행'을 출간했나?
"나는 한국인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과 철학이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었다. 1990년대 초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기의 좋은 전통을 버리고 미국 사람들 사는 대로, 입고 먹는 대로 쫓아가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양 세계는 동양의 정신과 철학을 배우려고 안달인데.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불교 서적을 읽는 것은 피어싱과 함께 젊은 세대들의 최신 트렌드였다. 당신이 구식이라고 버린 이 스카프를 다른 사람들이 주워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열광하면, 버린 스카프를 다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 내 책이 그런 역할 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요즘 '만행' 책을 구할 수가 없더라.
"절판시켰다. 책 때문에 겪은 고통이 컸다. 일반인, 심지어 도반들로부터도 돈 많이 벌었겠다는 질문이 나오더라. 책을 내니 '아침마당'에도 나가야 하고, 라디오도 나가야 하고 특강도 해야 하고. 연예인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수행자로 살고 싶었다."
―'만행'이 수십만부 팔렸다. 인세는 어디에 쓰셨나.
"책의 마지막 장에 쓴 대로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숭산 스님의 큰 뜻을 이루는 데 기부했다."
―숭산 스님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제일 좋아하는 불경은 '순간경'
―독일선방 얘기를 들려달라. 왜 뮌헨에 정착하셨나.
"유럽을 만행하면서 수행 정진할 자리를 찾던 차에 독일 불자들을 만났다. 수행 정진을 도와달라고 하여 뮌헨에 머무르게 됐다."
―한국 사찰의 모습은 아닐 텐데.
"작은 주택을 빌려 선방을 꾸몄다. 일반 수행자가 40명 정도. 절반은 한국 교포들이다."
―선방 이름이 '불이선원'이다.
"불이(不二)는 불교의 기본 사상이다. 당신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 인간의 본성은 하나라는 얘기다. 침, 오줌, 비, 눈, 눈물…. 모양과 색깔, 냄새는 다르지만 모두 H₂O다. 둘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둘을 만들어서 너는 틀리고 내가 옳다고 싸우는 거다. 한국의 젊은 개신교 신도들이 주도한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은 거기서 비롯됐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자살·폭탄테러도 마찬가지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독일과 여전히 둘로 나뉜 한국은 그래서 내게 각별하다. 분단이 지속될수록 배타성, 이질감만 커진다. 불교가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 심심하진 않나. 한국처럼 다이내믹한 사회에서 살다 가셨으니.
"거제도에서 기암절벽을 구경하는데 배 안에 '뽕짝'이 쿵작쿵작 울려 퍼지더라. 선장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 부탁했더니 뽕짝을 안 틀면 승객들이 심심해한다고 했다. 한국이 내게 준 가르침 중 하나가 센세이션과 자극이다.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고요와 평화, 여백을 즐길 줄 모른다. 카페에 가보라. 연인이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만 열심히 문질러대고 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며 108배를 하는데 주머니에선 휴대폰이 쩌렁쩌렁 울려댄다. 걱정스럽다."
―한국에서 수행하던 때보다 힘든 일 많으실 것 같다.
"도반들, 한국 스님들이 많이 도와주시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식당 접시닦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신도들이 수발해주시던 한국 생활이 그립지는 않나.
"그립지 않다."
―불교TV 법회 때 보니, 법문이 끝난 뒤 많은 신도들이 스님과 친견하려고 줄을 섰더라. 한국에 오면 그 인기를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유명해지는 것은 나의 계획도, 야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폭풍처럼 찾아왔다. 나는 그 유명세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명성은 또 다른 짐이자 고통이란 걸 알았다. 외로워지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내가 거기에서 또다시 유명해진다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선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경허 스님도 자신이 유명해지자 자취를 감추었다. 몇년 뒤 그는 작은 시골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평상복에 긴 머리, 긴 수염을 하고서. 나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가끔 수행하기 싫을 때 있지 않나? 세상에 재미난 일이 많은데.
"진짜 그런가? 세속의 재미는 나타났다 사라진다. 권태에 빠져들기 쉽다. 수행자가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사람들은 달콤한 속세의 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 묻지만 그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 승려의 길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출가하신 지 20년이 되어간다. '참나'를 찾았는가.
"지금 마시는 이 커피의 향이 참 좋지 않은가."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기억하는 불자들이 많더라. 제일 좋아하시는 경은 무엇인가.
"순간경! 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 순간….
현각은
1964년 미국 뉴저지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원 재학 중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1992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의 한국 선불교 본부 격인 참선 전문사찰 홍법원의 주지를 지냈고, 숭산의 설법집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과 ‘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을 영어로 번역했다. 97년엔 출가 사연을 적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해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고, 2006년에는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영어로 번역했다. 2009년부터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불이선원’을 열고 있다.
[Why][김윤덕의 사람人] 현각이 한국을 떠난 까닭은?
[조선일보] 2010년 12월 11일(토) 오전 03:02
이틀 뒤 승려는 서울 방배동 불교TV 법회장에 나타났다. 법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를 성큼성큼 가로지른 승려는 높은 단상 위로 몸을 날리더니 눈 깜짝할 새 가부좌를 틀었다. 승려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세상에서 이 자세가 제일 편해, 정말 좋아요."
현각(玄覺·46). 하버드대 출신의 선승(禪僧)이라 하여 세상 이목을 집중시켰고, 28세 꽃 같은 나이에 삭발하고 출가한 사연을 적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 한국 불교계에 일약 '스타'로 떠오른 승려. 동그란 금속테 안경을 쓰고 참선하는 그의 사진(김홍희 작)은 일반에도 선명히 각인되어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국내든 국외든 그가 여는 법회에는 수백 명의 대중이 몰렸고, 법회가 끝나면 그를 친견하려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랬던 현각이 돌연 한국을 떠났다. 2008년의 일이다. 명분은 '유럽 만행(萬行)'이었지만, 스님은 "스승이신 숭산스님이 입적(2004년)한 날부터 한국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가장 큰 이유는 "폭풍(perfect storm)처럼 몰아닥친 명성"이었다. "수행이 아니라, 그야말로 '쇼'를 한 게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지요." 한국을 떠난 그는 유럽 만행을 거쳐 2009년 독일 뮌헨에 정착, '불이선원'이라는 선방을 개원했다.
G20 정상회의를 기념해 열린 '세계종교지도자대회' 참석차 지난달 서울에 온 스님을 만나 '만행' 이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20대 청년처럼 여전히 혈기왕성한 스님은 특유의 직설화법과 유머, 거침없는 제스처로 시원시원한 답변을 내놨다. 난처한 질문에는 '선문답'으로 응수했다.
못생긴 미국 상놈 봐서 뭐해요?
―세계종교지도자대회에서 말씀을 너무 짧게 하시더라. 모처럼 스님 말씀 들으러 온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선승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회에서) 프랑스에서 온 패널 한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하셨다. 종교는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것. 맞는 말이다. 우리는 종교를 버려야 한다. 평화 대신 전쟁, 갈등과 환경만 파괴하는 종교는 이제 버려야 한다. 2010년이 되었는데 인간이 여전히 종교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스님 또한 불교에 몸담고 계시지 않나.
"이건 껍질일 뿐이다. 석가모니는 불자가 아니었다. 예수도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종교를 만들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개신교의 가르침은 많은 부분 예수 이후에 생긴 것들이다. 종교가 종교다워지려면 보편적 윤리, 사랑하고 베푸는 마음을 실천해야 한다."
―신앙이 아니라 윤리로 가야 한다는 말은, 예수나 부처에 대한 신격화 혹은 숭배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들린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형태일 뿐이다. 종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생활에서 실천해 나갈 때 참종교가 된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나의 말을 믿지 마라, 내가 말했기 때문에 믿으면 안 된다'였다. 맹목적인 믿음은 종교의 독이다."
―왜 한국을 떠나셨나.
"아까 보지 않았나. 법당에서 기도하시던 분들이 연예인이 온 줄 알고 달려나오더라. 내 죄다. 애초에 내가 무슨 계획을 세워서 유명해진 것은 아니지만, 수행자로서 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매스컴을 통해 갑자기 유명해지니 법회, 특강, 주례, 인터뷰 요청이 줄을 이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회의가 들었다."
―하버드 출신이라는 것, 외모가 출중하다는 것이 폭풍인기에 한몫했다.
"그래서 창피했다. 수행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나의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유혹만 주었다. 일본에 아름다운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칼로 자신의 얼굴을 난도질했다. 내가 그 비구니처럼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말라. 비슷한 심정이었다는 얘기다."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처음 하셨나.
"2004년 숭산 스님 열반하시던 날. 바로 떠났어야 했는데 한국 불교의 세계화라는 은사 스님의 일이 안정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다."
―한국 불교계와 갈등이 있었나.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는 현각을 마뜩잖게 여기는 한국 스님들이 적지 않았다고 하더라.
"모르겠다. 만일 그랬다면 나의 스님답지 않은 언행,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법회할 때 하도 요란스럽게 하니까 주위에서 '스님이 그러시면 안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말했다. 나는 한국 스님 되려고 온 거 아니다. 참나를 찾으러 왔다."
―스님은 늘 한국 불교를 예찬만 하시더라. 떠나 계시니 이제 쓴소리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가르침만 받았다.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그러지 마시고 한 말씀 해달라.
"당신이 미국 우리 집에 와서 2~3주 살다 나가면서 저 집은 이렇더라 저렇더라 흉보면 우리 가족은 큰 상처를 받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선(禪)불교는 재즈다
폴 뮌젠이 본명인 현각은 미국 뉴저지의 보수적인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9남매 중 일곱째였던 현각은 예일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칸트,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 등 독일 철학에 심취했고 쇼펜하우어를 통해 불교를 처음 접했다. 하버드 재학시절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를 결심한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스님 물음에 할 말을 잃자, '하버드 학생이 당신 자신을 모른단 말인가?' 하며 껄껄 웃으시더라. 완전히 다른 세계, 다른 코드였다."
―'만행' 책에 보니 유달리 총명했던 아들에게 부모님 기대가 엄청났더라.
"삭발하고 처음 집에 들어간 날 부모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보단 불교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지만 아쉬움은 여전하시다. 어머니가 그러더라. 오바마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는데 그 뒤로 너의 동창 몇이 서 있더구나, 하고."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말썽꾸러기! 오늘날까지도. 난 반듯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는 잘하지 않았나.
"음…. 누가 그림을 잘 그리듯이 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어렵지 않았다. 내겐 '재미'와 '도전'이 중요했다. 착한 아이들은 어른들 말씀대로 살지만, 난 넘어지고 다치면서 배우는 걸 좋아했다. 남들 기대에 따라 사는 것, 예측 가능한 결과는 얼마나 재미없고 무료한가."
―정치를 하셨어도 잘했을 것 같다. 선동가 타입?
"그런 말 많이 들었다. 글쎄. 정치를 했다면 나의 내면은 죽지 않았을까? 겉으로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내 안에서 과연 행복했을까? 지금 내가 어떻게 보이나?"
―즐거워 보이신다. 에너지 넘치고.
"보이는 대로다. 선불교는 재즈다. 선승의 생활은 재즈와 같다. 많은 종교들이 형식과 틀, 어떤 룰을 강조하는데 선불교는 다르다. 재즈처럼 자유롭고 즉흥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 나는 선승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행복하다."
―불교가 재즈라니?
"히피로서도, 예술가로도 자유롭게 살 수는 있다. 불교의 자유는 다르다. '작은 나'를 벗어나 남을 위해 자유하는 것이 불교다. 미국에서 자유, 자유를 외치지만 기분 나쁘면 총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탕' 쏠 수 있는 자유들이 난무한다. 여기 포크가 있다. 이 포크는 나의 생각 방향에 따라 음식을 집어먹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찌를 수 있는 무기도 된다. 불교가 말하는 자유는 에고(ego)를 위한 자유가 아니라 남을 위한 자유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결혼한다고 해서 '참선'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 않나.
"결혼해 아이를 낳으면 오로지 '나'를 생각하게 된다."
―지난해 유럽 가톨릭 교회들이 사제들의 '섹스 스캔들'로 비난을 받았다. 일부에서는 '신부나 수행자들의 결혼을 금하는 것이 신의 뜻을 거스르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나왔다.
"나는 수도승이다. 그것이 나의 답이다."
나는 외로워지고 싶었다
외국인 승려 현각은 한국 불교의 세계화에 일익을 담당한다.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법정 스님이 '깨달음의 거울'이라는 책으로 우리말로 풀이한 것을, 2006년 영문으로 번역, '미러 오브 젠(The Mirror of Zen)'이라는 책으로 미국과 유럽에 선보인 것이 대표적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은 서산대사가 후학을 올바른 수행의 길로 이끌기 위해 50여 종의 경론과 조사의 어록에서 요긴한 대목을 간추려 설명한 책으로 공부 방법과 화두, 수행의 경로 등을 밝힌 선의 명저다.
―법정 스님과는 어떻게 알게 됐나.
"2004년 봄, 스님이 나를 길상사로 부르셨다. '깨달음의 거울'이란 책을 주시며 영문으로 번역해달라 부탁하셨다. 고사했다. 난 학자도 아니고, 한자도 모르는 수행승이지 않나. 그런데 스님이 '네가 공부 열심히 한다는 소리 들었다, 번역할 자격이 있다' 하시더라. 서산대사가 조선시대에 쓴 책을 서양인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직역보단 의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가 필요 없는 음악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법정 스님은 어떤 분으로 기억하나.
"모범 수자. 한 치 흐트러짐 없는 반듯한 수행자."
―'오두막에 살면서 수행정진 하고 싶다'고 하자 법정 스님이 '자네는 살 수 없다'고 하셨다던데.
"나처럼 키 크고, 코 크고, 얼굴 허연 승려가 와 있으면 이 마을 저 마을로 소문이 나니 조용히 살기 힘들 거란 뜻이었다."
―오두막에 살고 싶으셨나.
"물론이다. 잠시 산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그런데 등산객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알아보더라.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숭산 스님은 영웅이자 원수
―하버드의 엘리트를 한국의 절간으로 불러들인 숭산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가끔은 아버지였고, 가끔은 어머니였다. 코치이자 트레이너였고, 영웅이자 원수였다."
―원수라고 했나?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식의 감동이 없는 사람, 드라마가 없는 사람은 스승이 아니다."
―많이 혼나셨다 보다.
"책(만행) 냈을 때. 나이도 어리고 수행 경험도 짧은 제자가 자기를 빨리 과시하려는 욕심으로 보이셨을 테니. 표지에 얼굴도 나오지 않았겠나. 하지만 내겐 스승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사연이 있었다."
―무엇인가.
"그때만 해도 숭산의 사상은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자들로서는 이를 집대성할 사명이 있어서 이런저런 출판사로 타진하고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가 터지는 바람에 모두 거절당했다. 그때 한 출판사가 내 출가기를 써주면 스승의 책도 함께 출판해주겠다고 했다. 솔깃했다. 고민 끝에 계약했고 6주일 만에 원고를 썼다. 탈고한 뒤 100일간 안거에 들어갔는데 마치고 나와 보니 난리가 났더라. 그 책 때문에 숭산 스님도 세상에 더 크게 알려졌다."
―오로지 스승의 책 때문에 '만행'을 출간했나?
"나는 한국인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전통과 철학이 있는지 일깨워주고 싶었다. 1990년대 초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자기의 좋은 전통을 버리고 미국 사람들 사는 대로, 입고 먹는 대로 쫓아가는 한국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서양 세계는 동양의 정신과 철학을 배우려고 안달인데.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불교 서적을 읽는 것은 피어싱과 함께 젊은 세대들의 최신 트렌드였다. 당신이 구식이라고 버린 이 스카프를 다른 사람들이 주워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열광하면, 버린 스카프를 다시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나? 내 책이 그런 역할 해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요즘 '만행' 책을 구할 수가 없더라.
"절판시켰다. 책 때문에 겪은 고통이 컸다. 일반인, 심지어 도반들로부터도 돈 많이 벌었겠다는 질문이 나오더라. 책을 내니 '아침마당'에도 나가야 하고, 라디오도 나가야 하고 특강도 해야 하고. 연예인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수행자로 살고 싶었다."
―'만행'이 수십만부 팔렸다. 인세는 어디에 쓰셨나.
"책의 마지막 장에 쓴 대로 한국 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숭산 스님의 큰 뜻을 이루는 데 기부했다."
―숭산 스님 돌아가실 때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은 무엇인가.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라. 산은 항상 푸르고, 물은 흘러간다. 왔다 가는 길이 아니요, 있었다 사라지는 길이 아니다. 자연 그대로일 뿐."
제일 좋아하는 불경은 '순간경'
―독일선방 얘기를 들려달라. 왜 뮌헨에 정착하셨나.
"유럽을 만행하면서 수행 정진할 자리를 찾던 차에 독일 불자들을 만났다. 수행 정진을 도와달라고 하여 뮌헨에 머무르게 됐다."
―한국 사찰의 모습은 아닐 텐데.
"작은 주택을 빌려 선방을 꾸몄다. 일반 수행자가 40명 정도. 절반은 한국 교포들이다."
―선방 이름이 '불이선원'이다.
"불이(不二)는 불교의 기본 사상이다. 당신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 인간의 본성은 하나라는 얘기다. 침, 오줌, 비, 눈, 눈물…. 모양과 색깔, 냄새는 다르지만 모두 H₂O다. 둘이 아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둘을 만들어서 너는 틀리고 내가 옳다고 싸우는 거다. 한국의 젊은 개신교 신도들이 주도한 '봉은사 땅 밟기 사건'은 거기서 비롯됐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자살·폭탄테러도 마찬가지다.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독일과 여전히 둘로 나뉜 한국은 그래서 내게 각별하다. 분단이 지속될수록 배타성, 이질감만 커진다. 불교가 남북이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이 심심하진 않나. 한국처럼 다이내믹한 사회에서 살다 가셨으니.
"거제도에서 기암절벽을 구경하는데 배 안에 '뽕짝'이 쿵작쿵작 울려 퍼지더라. 선장에게 소리 좀 줄여달라 부탁했더니 뽕짝을 안 틀면 승객들이 심심해한다고 했다. 한국이 내게 준 가르침 중 하나가 센세이션과 자극이다.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고요와 평화, 여백을 즐길 줄 모른다. 카페에 가보라. 연인이 나란히 앉아 스마트폰만 열심히 문질러대고 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중얼거리며 108배를 하는데 주머니에선 휴대폰이 쩌렁쩌렁 울려댄다. 걱정스럽다."
―한국에서 수행하던 때보다 힘든 일 많으실 것 같다.
"도반들, 한국 스님들이 많이 도와주시지만 경제적으로 힘든 건 사실이다. 식당 접시닦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신도들이 수발해주시던 한국 생활이 그립지는 않나.
"그립지 않다."
―불교TV 법회 때 보니, 법문이 끝난 뒤 많은 신도들이 스님과 친견하려고 줄을 섰더라. 한국에 오면 그 인기를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가.
"유명해지는 것은 나의 계획도, 야망도 아니었다. 그것은 폭풍처럼 찾아왔다. 나는 그 유명세를 다른 사람들을 돕는 최선의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결국 명성은 또 다른 짐이자 고통이란 걸 알았다. 외로워지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 내가 거기에서 또다시 유명해진다면 나는 또 다른 곳으로 떠날 것이다. 선불교의 위대한 스승인 경허 스님도 자신이 유명해지자 자취를 감추었다. 몇년 뒤 그는 작은 시골 서당에서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었다. 평상복에 긴 머리, 긴 수염을 하고서. 나도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상상한다."
―가끔 수행하기 싫을 때 있지 않나? 세상에 재미난 일이 많은데.
"진짜 그런가? 세속의 재미는 나타났다 사라진다. 권태에 빠져들기 쉽다. 수행자가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사람들은 달콤한 속세의 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 묻지만 그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 승려의 길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출가하신 지 20년이 되어간다. '참나'를 찾았는가.
"지금 마시는 이 커피의 향이 참 좋지 않은가."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기억하는 불자들이 많더라. 제일 좋아하시는 경은 무엇인가.
"순간경! 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재즈를 듣는 순간, 걷고 이야기하고 시장에 가는 모든 순간,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친구와 악수를 하면서 감촉을 나누는 순간, 순간, 순간….
현각은
1964년 미국 뉴저지의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예일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원 재학 중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을 듣고 출가해 1992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미국의 한국 선불교 본부 격인 참선 전문사찰 홍법원의 주지를 지냈고, 숭산의 설법집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과 ‘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을 영어로 번역했다. 97년엔 출가 사연을 적은 ‘만행·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를 출간해 대중에게 이름을 널리 알렸고, 2006년에는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영어로 번역했다. 2009년부터 독일 뮌헨에 거주하며 ‘불이선원’을 열고 있다.
[Why][김윤덕의 사람人] 현각이 한국을 떠난 까닭은?
[조선일보] 2010년 12월 11일(토) 오전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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