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9일 월요일

제2의김예슬, 서울대에도 대자보 "싸우겠다"

[머니투데이 황무성인턴기자]
지난29일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건물 앞 게시판에 붙은 08학번 채상원 씨의 대자보

지난29일 저녁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08학번 채상원씨가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교내에 부착했다.

채 씨는 글에서 지난10일 있었던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의 자퇴선언을 언급하며 "이렇게 낡고 답답한 대학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그는 "세상은 이미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며 "격변의시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우리를 구속하는 대학 내의 모든 구습과 싸워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 (했다)"고 선언했다.

30일 오전 현재 이 대자보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 건물 앞에 게시판에 붙어있다.
다음은 이 대자보의 글 전문.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제공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의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12년간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

대학 거부를 선택한 고려대 김예슬씨의 자보 中
얼마 전 고려대학교 김예슬 씨의 자퇴선언이 있었다. 혹자는 부적응자의 현실도피라 말하지만, 문제는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대학 거부라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우리들도 잦은 회의감에 휩싸이며 때로는 현실에 타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 어른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대학교에 들어가면 누릴 수 있다는 '자유', '낭만' 따위에 대한 환상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내 친구를 밟고 올라서기 위해 노력해왔다. 간신히 그 과정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온 지금, 나는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대학이란 곳은 본격적 무한경쟁의 닫힌 공간일 뿐이며 그 공간은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제2전공 의무화, 영어강의 확대, 상대평가제 등의 제도는 더욱 많은 것을 강요하고 무조건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를 그 어떤 주류 경제학도 설명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 마당에 대학은 별 고민 없이 지난 수 십 년간 사용해온 커리큘럼을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낡고 답답한 대학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까? 무한경쟁의 쳇바퀴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듯한 불안감, 가만히 있으면 남들에게 뒤쳐지는 것만 같은 불안감을 강요하는 이 대학에 우리가 상상한 대학생활이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사람,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은 대학 교수님도,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다. 우리의 삶을 그들에게 내맡길 수는 없다. 이에 나는 오늘 조용히 다짐을 해보려 한다.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

세상은 이미 변화의 물결을 타기 시작했다. 보수적 인사들이 아무리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포퓰리즘이다 해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이제 무상급식이 아주 상식적인 정책이고 필요한 정책임을 느끼고 있다. 체벌 금지, 보충수업 선택권 보장 등이 포함된 경기도의 학생인권조례가 입법예고 됨으로써 학생들의 인권이 충분히 보장되는 길로 나아가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즈는 이미 2007년에 "더 이상 세상은 평평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세계화의 시대가 아닌 지역화의 시대라는 의미이다. 또한 자유무역도 그 수명을 다하고 보호무역이 힘을 얻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변화의 시기에 한국 사회와 대학은 여전히 철지난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만을 외치고 있다.

격변의 시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우리를 구속하는 대학 내의 모든 구습과 싸워야 한다. 경쟁 일변도의 신자유주의의 피해들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이 기존의 가치들이 더 이상 아무런 대안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싸움은 더욱 절실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커리큘럼,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획일화된 교육방식에는, 대학생을 미래 사회의 주체로 보지 못하는 낙후한 교육관이 근본에 자리하고 있다.

새 사회의 동력을 창출할 수 없는 대학에서는 그 어떤 비전도 찾을 수 없다. 우리 대학생들이 힘과 지혜를 모아서 수업내용과 수업방식에서부터 시작해서 병든 대학 사회의 본격적 수술에 나서야 한다. 전체 대학 내 패러다임의 변화를 이끌고 대학생 스스로가 대학의 주인으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한다.

김예슬 씨는 자보에서 대학과 자본의 거대한 탑에서 자신 몫의 돌멩이가 빠져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 말했다. 그렇다면 이 탑을 반대하는 모든 우리 돌멩이들이 힘을 합쳐 흔들어보자. 그리고 우리들의 새로운 탑을 세우자. 시대는 더 이상 낡은 탑을 거부하고 새로운 탑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과학대학 08 채상원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오래된 나무

바오밥 나무

아프리카의 수령 6000년 이상된 바오밥 나무

2010년 3월 21일 일요일

전혀 살 필요없는 유기농 음식들

당신이 전혀 살 필요없는 유기농 음식들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농약에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일 것이다. 실제로 농약에 장기간 노출되면 암, 불임,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 장애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그러나 미국의 비영리 단체, Environmental Working Group는 농약에 오염될 염려가 적은, 그래서 굳이 비싼 유기농 제품을 살 필요가 없는 채소와 과일 15종을 발표했다.

즉, 다음 식품들을 유기농으로 사면 한마디로 돈 낭비라는 뜻.

- 아스파라거스
- 아보카도
- 브로콜리
- 양배추
- 가지
- 키위
- 망고
- 양파
- 파파야
- 파인애플
- 사탕 옥수수 (냉동)
- 스위트 피(Sweet pea, 냉동)
- 고구마
- 토마토
- 수박

Environmental Working Group은 이와 함께 농약 잔류물이 가장 많이 남는 채소와 과일 12종류도 함께 공개했다.

즉, 다음 식품들은 유기농으로 구입해도 손해보지 않는다는 뜻.

- 사과
- 당근
- 셀러리
- 체리
- 포도 (특히 수입산)
- 케일
- 상추
- 복숭아
- 배
- 피망
- 딸기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What the Bleep, Do we Know !? (양자물리학의 이해)|

출처 http://cafe.naver.com/hooponopono/4694


What the bleep do we know!? 영화 요약 자료입니다.
이 영화는 일반인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양자물리학과 의식을 주제로
미국에서 비상업용으로 개봉되어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아만다의 성장과정과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양자물리학자들의 인터뷰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못보신 분들은 시간을 내셔서 꼭 보시기 바랍니다.
양자물리학을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What the bleep do we know!? 가 1편으로 제작이 되었고
1편의 What the bleep do we know!?를 포함하는
Down the rabbit hole(신비의 문속으로)이 2편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제목에서 bleep라고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정보의 조각을 뜻합니다.
뇌는 초당 4000억 비트의 정보를 처리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이들 중 단지 2000여 가지을 인식한다고 합니다.
결국 제목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지극히 작은 정보의 조각일 뿐이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습니다.

아래의 요약분은 Down the rabbit hole(신비의 문속으로)입니다.


1.완전한 관찰자로서 자신을 볼 수 있을까?


2.이전에 내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떤 점에서 현실보다 훨씬 더 현실적이다.


3.양자역학은, 간단하게 말해서 '가능성에 관한 물리학'이다.


4.현대의 물질주의는 사람이 모든 것이 주인이라는 생각을 빼았아 버렸다.
양자물리를 깊이 공부해보면, 그 책임은 분명히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


5.우리가 일상을 그냥 사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서, 현실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6.우리는 외부의 세계가 내부의 세계보다 훨씬 더 실질적이라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양자물리학에 따르면 그 반대다.
즉,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외부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7.뇌는 초당 4000억 비트의 정보를 처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 중 단지 2000여 가지을 인식한다.
대부분 '자기보존'을 위한 정보들이며, 주로 몸과 주위환경 그리고 시간에 관한 것들이다.
뇌는 모든 정보를 받아들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모두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8.뇌가 볼 수 있다고 하는 것들만 뇌 안에 저장해 둔다는 사실을 아는가?
카메라가 인간의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이유는, 아무런 반대의견이나 판단이 없기 때문이다.


9.뇌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는 것들 뿐이다.
즉, 우리가 가능하다고 믿는 것만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조건화를 통해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과 맞는 패턴만을 연결시킨다.


10.미국 인디언들이 처음 콜럼버스의 배가 바다에 나타났을 때,
물결이 일렁이는 것은 볼 수 있었지만 배는 보지 못했다는 말이 있다.
의식 안에 배 자체에 대한 인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관찰 후에 주술사가 먼저 배를 볼 수 있었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을 하자 사람들도 배를 볼 수 있었다.


11.우리는 현실을 창조한다. 우리는 현실을 창조하는 기관이다.
우리는 항상 현실 속에서 결과를 창조해낸다.
우리는 항상 ‘기억의 거울’에 비춰보고 난 뒤에 그것을 인식한다.


12.양자물리학은, 도대체 진실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생각, 감정, 직관들이 관련되리라는 가정을 한다.


13.물질은 우리가 오랫동안 그렇다고 생각해온 것이 아니다.
이전까지 과학자들은 물질이 정적이고 예측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원자나 분자의 내부는 지극히 작은 입자들과 그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자는 소멸과 존재를 항상 반복한다.
소멸되었을 때 입자들은 어디로 갈까? 다른 우주?


14.‘시간의 방향에 관한 신비’라고 하는 거대한 신비가 존재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시간은 과거와 미래사이를 구분하지 않는다.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 과거만이 미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제는 절대적이지 않다.


15.우리는 우주가 비어있고 물질은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없다. 우주는 전혀 물질적이지 않다.
단단한 공이라고 보통 생각하는 원자는 원자핵 주위로 전자가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구조다.
원자핵도 단단하지 않다. 전자처럼 계속 소멸과 존재를 반복한다. 이러한 비물질적인
물질들에 대해, 우리가 가장 견고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16.‘생각’은 구체화된 정보조각 같은 것이다.


17.물질은 구성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생각이나 개념, 정보들이다.


18.우리에게 시간이 앞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의식의 경험’에 불과하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시간을 거꾸로 갈 수 있다.


19.관찰하지 않을 때는 파동으로, 관찰하면 입자처럼 보인다.
관찰하지 않을 때는 ‘가능성의 파동’이 존재하고, 관찰할 때는 ‘경험의 입자’들이 존재한다.


20.우리가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입자들은 실제로는 ‘중첩’되어 존재한다.
가능한 위치가 펼쳐지고, 입자는 한 순간 ‘모든 위치’에 존재한다. 조사하는 순간,
입자는 가능한 위치 중 하나로 고정된다.


21.‘양자 중첩’은 입자가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상태로 둘 이상의 위치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주 이상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이미 검증된 것이다.


22.‘관찰’을 통해 그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23.어떻게 시스템이나 사물이 동시에 두 개 이상의 상태로 존재할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물질을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우리는 주위의 사물을
내가 입력하거나 선택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 생각을 없애야 한다.


24.대신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은 물질세계라 하더라도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의식의 가능한 흐름’으로 인식해야 한다.그리고 내가 이러한 흐름에서
순간순간 선택을 해서 나의 실질적 경험이 구체화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생각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과는 별개로
세계가 외부에 이미 존재한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으므로 쉬운 일이 아니다.


25.그렇지 않다. 양자물리학은 그 점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하이젠베르크도 원자는 물질이 아니라 단지 ‘경향’일 뿐이라고 말했다.


26.그래서 사물을 사물이라고 생각하는 대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27.사물들은 모두 ‘의식의 가능한 형태’들이다.


28.양자물리학은 단지 가능성만을 계산해낸다.이것을 받아들이면, 누가 혹은 무엇이
이러한 가능성을 선택해서 경험이 구체화되는 사건들로 가져왔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서 직접적이고 순간적으로 의식의 문제가 개입된다. 관찰자가 무시될 수 없는 것이다.


29.우리는 양자물리학적 관점에서 관찰자가 무엇인지는 알 수 있지만,
그 관찰자가 실제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뇌의 어느 곳에도 관찰자라고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외부를 관찰하는 관찰자라고 하는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30.관찰자를 ‘영’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기계 속의 귀신과 같다.
껍데기를 움직이는 것은 의식이다. 의식은 주위를 관찰하고 몸은 온갖 종류의 감각기관을
갖추고 주위의 신호들을 포착해 낸다.


31.1993년 여름, 워싱턴 D.C.에서 큰 실험을 한다.
수백 개의 나라에서 온 자원자들이 하루종일 명상을 일정기간 함께 하는 실험.
FBI는, 이 정도 규모의 사람들이 명상은 범죄율을 25%정도 감소시킬 것이라고 예측.
경찰관계자는 그해 겨울에 눈이 60센티 이상 와서 범죄율이 25% 감소할 것이라고
TV에 나와서 말함. 실제 실험의 결과가 그러했음. 그 앞선 48개의 연구에서도 이미 예측된 것이었음.


32.의문: 사람들이 우리가 보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다! 각 개인은 우리가 보는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비록 우리가 현실도피를 하거나 현실의 희생자가 된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 모두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33.일본의 ‘마사루 이모토’ 박사의 물 결정 사진 연구:물의 분자구조와 물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 물은 4대 원소 중에 수용성이 가장 뛰어난다.
물이 비물리적인 현상에 반응할 수 있다고 생각, 물에 정신적인 자극을 줌.
암시야 현미경으로 물 결정 사진 찍음. 생각이나 의도가 물 결정을 바꾼다고 생각.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함. 우리 몸의 90%가 물이다.
34.정말로 생각 하나만으로도 몸을 변화시킬 수 있다.


35.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질적인 방식으로는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의지를 적어 내려가다가도
지워버린다. 왜냐하면 그게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시간적 평균으로 보면 그 의지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결국 그 의지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믿어버리는 사실로 변해버린다.


36.만약 생각이 물에 이러한 작용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이 우리에게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37.우리가 기본적으로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존재로 스스로를 인정한다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그렇다, 가능하다. 이런 것을 우리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알고 있다.
멋진 개념이지만, 실제로 그것은 ‘긍정적인 생각의 얇은 막’일 뿐이다.
그 막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실제로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위장해 놓은 것일 뿐이다.


38.우리가 어떤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을 더 견고한 어떤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갇혀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해 버리는 바로 그)동일한 현실에 갇혀버린다.
왜냐하면 현실이 구체적이라면 분명 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실제 현실을 바꿀 수
도 없게 된다.


39.하지만 현실이 나의 가능성 즉 의식 자체의 가능성이라면 그 다음은 어떻게 내가 현실을
바꿀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나오게 된다.
내가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문제다.
우리가 어떻게 스스로의 이미지를 확장할 수 있을까?


40.고전적 사고관에서는 나는 어떤 것도 바꿀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현실에서 어떤 역할도 맡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미 존재하고 나름대로 움직이는 물질적인 존재이다. 결정적인 법칙에 의해서.
그리고 수학은 주어진 환경에서 사물이 움직이는 것을 결정한다.
경험자인 나는 어떤 역할도 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41.새로운 관점에 따르면 수학이 어떤 것을 알려줄 수도 있고, 이러한 움직임들이 취하는
여러 가능성을 알려줄 수도 있지만, 내가 나의 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경험은
알려줄 수 없다. 내가 그 경험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글자 그대로 내가 나의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다.
물리학을 전혀 모르는 뉴에지류의 그런 폭탄선언이 아니라, 양자물리학이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42.세상은 현실의 시간선 위에서 우리가 선택하기 전까지는 가능성만으로 존재한다.
양자장의 모든 현실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일까?


43.과학과 철학에 의해 밝혀진 가장 깊은 진실은 단일성이라는 기초적인 진실이다.
현실의 가장 깊은 소립자적 단계에서는 우리는 모두 ‘문자 그대로’ ‘하나’이다.


44.한 물리학자: 저는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의식적으로 창조합니다.
가끔은 제 마음이 일어났으면 하는 모든 것들을 검토하기 때문에 제가 의도적으로
하루를 창조하는데 있어 조용히 요점에 이르기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걸리긴 합니다.
하지만 제가 하루를 창조할 때 아무 곳에서도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저는 그런 것들 역시 나의 창조의 결과에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압니다. 점점 더 그렇게 알아갈수록 제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더 많은
신경망들이 저의 뇌에 만들어지죠. 그것들은 다음 날에도 계속할 수 있는 힘과 자극을 줍니다.


45.중독


46.중독을 통해서 우리는 최고의 멋진 기회를 맞이합니다.우리의 몸을 통해 3차원 세계에서
파악할 수 없는 특성의 고귀함과 날마다 그러한 특성이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드러나는 지에 대한
차이점을 알아낼 수 있는 기회죠.
그래서 우리는 중독이 화학적으로 황홀한 감정이며 척추의 내분비선을 통하지 않고서도
일어나는 폭포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성적인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하나의 성적 자극으로 남자는 자극을 받는다. 달리 말하면 여기 있는 하나의 생각이
발기로 이러지는 것이죠. 발기를 일어나게 하는 외부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존재할 뿐이죠.



47.수 세기 동안 내려온 다양한 종교와 철학들의 문제의 대부분은,
출발부터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신은 우리와 분리된 별개의 존재이며 나는 신을 숭배해야 하고
인생의 마지막의 보상을 위해 웃으며 기도하고 희망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것은 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죠.


48.신은 그렇게 광대한 것입니다.
조직화된 종교와 관련된 대부분이 사람들을 위축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제 생각엔 그것들이 세상과 여성들에게 많은 불행을 끼친 어떤 것이기도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도 불행을 끼친 것이기도 하죠.


49.그리고 우리는 같은 지점에서 거대한 과학의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겨자씨가 신의 왕국보다 크다고 하는 예수의 말을 설명해주는 가장 근접한 과학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비유에 맞는 유일한 과학은 양자물리학입니다.
우리는 양자물리학의 많은 신개념들과 실제 기술적 결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낡고 불합리한 신에 대한 개념과 믿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50.사람들은 위협을 받으면 이렇게 지속되어온 형벌의 심판에 대해 똑 같은 행동을 취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이 존재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전통적인 신에 대한 의문을 품거나 신에 대한 풍자를 하면 사람들은 그를 불가지론자나 무신론자 사회질서를 전복하려는 사람으로 느낍니다.


51.신은 나약한 인간의 위대함보다 틀림없이 위대합니다.
그리고 정말 가장 위대한 인간의 기술보다 위대합니다.
신은 우리의 가장 뛰어난 것도 넘어섭니다.
그리고 찬란하게 빛나는 자연과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이 그러한 마음의 위대함을 등지고 죄를 지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은하의 한 구석에 있는 지구상의 보잘 것 없는 탄소조합이 신의 전능을 배신할 수 있을까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오만의 절정은, 그들 자신의 이미지로 신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의 통제의 절정입니다.



52.생각을 일으킬 때의 뇌는 벼락치는 풍경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시냅시스의 틈은 번개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지구와 비유할 수 있죠. 번개가 치기 전에 징조인 검은 구름이 하늘에서 끓기 시작하고 전기적인 자극들이 그 속을 통과합니다.
전기적 섬광의 선을 따라 바닥을 칩니다.


53.일관된 생각을 일으킬 때 뇌는 천둥치는 폭풍우 같습니다.
생각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뇌 호르몬 사이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뇌의 각부분에서 일어나는 맹렬한 폭풍입니다.
몸 속에 지도화되어 있는 이러한 것들에 사람들은 반응해야 하고 그것들은 홀로그램 이미지이며 분노, 살인, 증오, 동정이나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54.뇌는 외부에서 보는 것과 기억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똑 같이 특정한 신경망이 반응하기 때문이죠.
뇌는 뉴런이라고 하는 미세한 신경 세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뉴론은 뻗어 있는 미세한 가지를 가지고 있는 다른 뉴론들과 연결되어 뉴론망을 형성합니다.
뉴론들이 연결되어 있는 곳은 생각이나 기억으로 구체화됩니다.
그래서 뇌는 ‘조합된 기억의 법칙’에 의해 ‘자체의 개념’을 만들어 냅니다.



55.예를 들어, 개념과 생각, 감정들은 모두 이 뉴론망의 상호연결로 구축된 것입니다.
각 뉴론의 상호간의 가능한 관계라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사람의 개념과 감정은 이 광대한 뉴론망 안에 축적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의 개념을 각자 다른 개념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을 실망에 연결시키기도 하고, 사랑을 생각할 때 고통스러운 기억이나 슬픔, 화 심지어 분노를 경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노는 상처나 특정사람과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것이 거꾸로 사랑과 연결되기도 합니다.


56.우리는 외부의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모델을 세웁니다.
그리고 정보를 더 많이 가질 수록 점점 그 모델을 한 가지나 다른 방식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외부세계에 대해 스스로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리하고 외부에서 받아들이는 모든 정보들은 과거 우리의 경험과 우리가 가지고 있고 가져왔던 감정적인 반응에 의해 채색됩니다.


57.우리의 감정에 반응하고 통제할 때 누가 주인 자리에 있는 걸까요?
우리는 생리학적으로 뇌세포가 함께 반응하고 엉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이러한 뇌세포는 장기적인 관계를 갖게 되고,
매일 화를 내거나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거나 매일 괴로워 하거나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통의 이유를 되뇌인다면 여러분은 매일 신경망을 재구성하고 재통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경망은 긴 시간에 걸친 그러한 관계를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다른 신경세포들과 연합하게 되죠. 또 뇌세포는 같이 반응하거나 얽히지 않기도 합니다.
장기적인 관계를 잃어버리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가 몸 속에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생각의 과정을 제지할 때마다
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신경세포들의 오래된 연결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58.우리가 자극이나 반응, 그리고 자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제지하고 관찰할 때 즉,
그 결과를 관찰함으로써 마치 자동적으로 환경에 반응하는 몸과 마음이 연결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죠.

59.이것이 감정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감정은 계획된 것이고 어떤 것을 오래된 기억 속으로 화학적으로 강화시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죠.


60.모든 감정은 입체영상으로 굳어진 화학물질입니다.


61.우주에서 가장 정교한 약국이 여기에 존재합니다.
뇌에는 ‘시상하부’라고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시상하부는 마치 작은 공장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그곳은 우리가 경험하는 특정 감정에 맞는 특정 화학물질을 조립하는 장소입니다.
이 화학물질은 ‘펩타이드’라고 불리죠. 그것들은 작은 아미노산의 고리입니다.
몸은 기본적으로 20여 가지의 다른 아미노산을 만들 수 있는데, 모두 탄소단위로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몸의 구조를 형성합니다. 몸은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계입니다.


62.시상하부에서는 펩타이드라고 불리는 작은 단백질 고리를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감정상태에 맞는 특정 신경펩타이드와 신경호르몬으로 조합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적인 상태, 즉 분노와 슬픔과 고통에 대한 화학물질,
욕망에 대한 화학물질이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63.우리가 몸이나 뇌에서 경험을 하는 그 순간 시상하부는 즉시 펩타이드를 조합합니다.
그리고 뇌하수체를 통해 혈류 속으로 그것들을 풀어 놓으면 혈류를 통해 펩타이드 조합이 흐르는 순간 몸 속의 다른 중심과 기관으로 향하게 됩니다.


64.몸 속의 개개의 모든 세포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들에 대한 수용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포가 수 천개의 수용체를 가질 수 있습니다.기둥을 세우고 외부를 향해 열려있죠.
그리고 펩타이드가 세포로 들어오면 글자 그대로 열쇠로 자물쇠를 여는 것처럼 수용체의
표면에 앉아 그것에 붙게 되고 수용체를 움직여 대문의 벨이 울리는 것처럼 세포로 신호를 보냅니다.


65.어른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신호가 고장나 감정적으로 동떨어진 곳에서
문제들을 다룹니다. 혹은 오늘 일을 어제와 똑같이 다루기도 합니다.
따로따로 떨어져서 다루기도 하지만 혹은 지나치게 반응하며 다루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앞선 현실을 경험해 오면서 전체를 통합해서 다루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66.세포의 외부를 따라 엄청나게 많은 수용체가 있는 장소가 있습니다.
들어오는 정보들을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는 곳이죠.
펩타이드가 들어있는 수용체는 세포를 다양하게 변화시킵니다.
수용체는 생화학적인 사건으로 핵의 변화까지 유도하며 어떤 수용체는 세포의 핵까지도 실제 변화시킵니다.



67.모든 세포는 분명히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각 세포는 의식을 가지고 있죠.
특히 우리가 의식을 관찰자의 관점에서 규정한다면 ‘세포의 시각(관점)’이라는 것이 항상 존재합니다.
세포는 몸에서 의식을 가지고 있는 가장 작은 단위죠.


68.중독에 대한 저의 정의는 아주 간단합니다. 여러분이 멈출 수 없는 어떤 것이죠.
69.우리는 몸에 있는 세포들이 생화학적으로 욕망을 채우는 쪽으로 스스로를 몰고 갑니다.
화학적인 요구와 일치하는 상황을 창조해 내면서 말이죠. 그리고 중독은 화학적으로
찾고 있는 고지로 돌진하기 위해 항상 더 이상을 필요로 합니다.


70.그래서 제가 내린 중독의 정의가 의미하는 것은, 여러분이 여러분의 감정상태를 조정할
수 없다면 틀림없이 거기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이죠.

71.예를 들어 특정사람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이미 중독되어 있는 감정 안에서 그들이 예상했던 사랑에 빠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다음 중에 성향을 바꿔서 다른 사랑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이 개인적인 요구와 정체성에 대한 예측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닐까요?


72.우리는 감정이고, 감정이 우리입니다.


73.감정들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소화작용이나 괄약근 혹은 영양과 관련된 모든 세포들은 어떤 곳을 치료하거나 치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포들은 모두 감정의 통제를 받습니다. 제 말은 모두 활발히 돌아다닌다는 것입니다.


74.감정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감정은 삶 자체입니다.
감정은 우리의 경험을 풍부하게 색칠해 줍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감정에 중독되는 것이죠.
보통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감정들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심리적인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감정은 생화학적입니다.


75.헤로인은 감정들과 같은 수용체를 사용합니다.
쉽게 말해서 헤로인에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은 신경망의 물질이나
어떤 감정에도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이죠.


76.특정 감정상태를 찾기 위해 관련된 탐색명령이 계속됩니다.
제 말은 심지어 눈을 돌리는 것 조차도 감정적인 면의 충족을 위해서만 일어난다는 것이죠.


77.섹스에 중독된 사람은 어떤 걸까요?


78.우리의 마음은 글자 그대로 우리의 몸을 창조합니다.


79.모든 것은 세포단위에서 시작합니다. 세포는 단백질을 만드는 기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포는 뇌로부터 신호를 받습니다.


80.수용체는 감각에 의해 변화합니다.
만일 어떤 약이나 내부의 분비액이 오랜 기간 동안 강렬하게 자극 받아 나오게 되면
말 그대로 줄어들거나 둔감해지거나 통제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비슷한 양의 화학물질이나 체액이 작은 규모의 반응을 유도해내게 됩니다.


81.세포는 매일 일정하게 반복해서 동일한 태도나 화학물질로 충격을 주게 되면 분열하는
세포들과 더 젊은 세포들은 이러한 감정에 맞는 신경물질을 더 만들어 내게 되고 비타민이
나 미네랄 그리고 분비액의 교환을 위한 수용체는 줄어들게 됩니다.
심지어는 독성이 있는 물질까지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82.모든 노화는 단백질의 부적당한 생산 때문에 일어납니다.
나이가 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피부가 탄력을 잃는데, 그 탄력은 단백질입니다.
효소의 문제는 어떨까요? 소화력이 떨어집니다. 활액낭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부서지기 쉽고 뻣뻣해집니다. 뼈도 역시 약해집니다.
그래서 모든 노화는 단백질이 부적당하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3.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먹는 음식물이 중요한가 입니다.
좋은 영양공급을 한다고 해도 감정적으로 20년 동안 자기학대로 세포가
그 영양분을 흡수하거나 받아들일 수용체를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러한 영양분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84.우리의 모험이 향하는 긴 항로에서 이제 진로를 수정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그 진로수정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주는 우리의 모델 안에 들어오지 않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큽니다.
우주는 우리의 생각보다 항상 더 큽니다.


85.어느 누구도 당신의 아름다운 보석과 내면에서 외부로 향하는 충만한 지혜에 대해서는
다 알지 못합니다. 왜 우리는 중독되는 것일까요? 더 나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꿈을 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구도 여러분에게 더 나은 꿈을 꾸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86.일반적으로 정신의학에서는 사람들의 편에서 사람들의 자유를 충분히 이야기 해 주지 않습니다.
제 말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문제들의 많은 부분들이 정신의학적으로 규정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불쾌한 선택들만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다른 선택들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87.소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는 육체적인 소멸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 안에 우리의 개성과 사람들, 장소들, 시간들, 사건들과 관련 있는 곳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88.우리는 뇌 안의 개성과 관련된 조직 안에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89.일반적인 사람들이 지루하거나 영적으로 감흥이 없는 삶을 사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을 가슴 뛰게 하는 지식이나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90.사람들은 미디어나 텔레비전, 그리고 그들이 되고 싶어하는 우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과,
육체적인 외모나 아름다움, 용기라는 말에 최면이 걸려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환상입니다.


91.결코 그런 것들에 굴복해서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그들의 영혼이나 욕망이
표면으로 결코 떠오르지 못하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되고 그러한 질문이 표면위로 나타나게 되면
더 나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됩니다.


92.나는 왜 존재하는가?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될까?


93.이러한 질문들을 하게 되고 신경망의 도약을 위한 개념들과의 교류의 날개짓을 시작합니다.


94.그리고 현실에서 그들의 세상과 삶을 지배해오던 오래된 개념들이 떨어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95.이러한 변화가 시작될 때, 우리는 뇌라고 하는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어떠한 작업을 하러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뇌의 신경망을 재구성하는 영역에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개념과 재접속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행위들은 내면에서 밖으로의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96.내가 마음을 바꾸면 나의 선택들도 바뀔까요?
내가 선택을 바꾸면 나의 삶이 바뀔까요?
왜 나는 바뀌지 않는 걸까요? 내가 집착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집착하는 사람이나 장소, 사물, 시간 또는 사건들은 내가 그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거기서부터 인간의 삶이란 것이 펼쳐지는 것이죠.


97.은하계에서 종교에 젖어들어 종교의 엄청난 지배아래 있는 행성이 어디일까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옳고 그름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신으로부터 벌을 받는다던가 다르게 행동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들은
정말로 어설픈 설명입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따라야할 지도를 보여주는 것 같지만 결과는 비참합니다.
왜냐하면 선이나 악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들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죄를 지었다거나 방당하다거나 나쁜 짓을 했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단지 이곳에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 당신의 표현과 이해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를 성장시키는 경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악의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이 이러한 행동을 하고 저런 행동을 했다고 해서 당신을 심판하는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98.사람에게 죄를 선고하는 신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신입니다.
동시에 신이라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하는 부분들과 함께하는 어떤 것의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면에서는 초월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장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99.저는 신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신에 대한 경험을 합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에 대해 매우 실제적인 무엇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신을 어떻게 규정하거나 인간이나 사물로 규정할 수는 없습니다.
인류에게 신을 설명하라고 하는 것은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물을 설명하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100.신은 모든 것들에 함께 하는 어떤 정신입니다. 여러분의 신의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정을 걸어가야 하지만 언젠가는 여러분이 집착하는 것들만큼
이러한 추상적 것들을 사랑해야만 할 것입니다.


101.내 자신이 위대해지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102.만일 의식적으로 나의 운명을 계획한다면 그리고 정신적인 관점에서
의식적으로 나의 현실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을 성찰한다면
결국 그러한 현실이 나의 삶이기 때문에 나는 나의 하루를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금도 나는 나의 하루를 창조하고 있고 근본적인 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3.그리고 그 관찰자가 항상 모든 행동을 바라보고 스스로에게
그러한 정신적인 방향이 존재한다면 내가 창조하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보여 줄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일이 전개되고 또 그러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게 될 것입니다.


104.뇌는 무한히 많은 것들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는 얼마나 위대한 존재이고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놀라운 것들을 우리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과
배우고 실제로 변화시키고 적용할 수 있는 수 많은 것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실제 우리의 모습보다 더 나아질 수 있고 서로에게
실제 도움이 되고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105.아마도 존재의 더 높은 단계로 도약하거나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거나
사람들과 사물들의 관계를 더 깊게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뇌 안에 영적인 부분을 찾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누구 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6.우리가 원하는 것을 구체화하고 그것에 완전히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107.우리의 의식을 완전히 집중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자기라고 동일시했던 모습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것입니다.
그러한 스스로를 벗어나고 시간을 벗어나는 그 순간이
진실로 실재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 입니다.


108.그리고 결심을 하고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살아있는 양자물리학이며 분명한 현실이고 진실된 관찰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9.여러분의 의식은 주위의 사람들과 물질적인 특성들,
그리고 미래에 여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은 미래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10.당신이 창조하는 이러한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창조가 이어지고 이러한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심도 없게 될 것입니다.


111.여러분이 이미 ‘그 존재’가 되어서 여러분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잠시 모든 일을 멈추고, 완전한 관찰자의 눈으로 여러분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112.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큽니다.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큽니다.
나는 주위 환경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주 자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나는 미래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있음으로 존재하고 나와 주위는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들은 하나의 일부이고 나는 그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113.우주의 상호연결을 이해하고, 우리가 우주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인 단계에서 우리의 신성을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유의지의 선물을 펼쳐내고 실질적인 창조자가 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입니다.


114.우리는 창조주가 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상과 생각들을 우주에 스며들게 하고,
그러한 삶을 이루기 위해 여기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115.근본적인 나를 인정하고 우리가 그러한 선택권을 가진 자리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음의 존재를 인정할 때 관점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때 깨달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116.양자역학은 자유라고 하는 만질 수 없는 현상을 인간의 본질 속으로 엮어냅니다.


117.양자물리학은 아주 간단히 말하면 가능성에 관한 물리학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을 가지고 선택을 함으로써 실질적인 경험이 일어나게 됩니다.


118.논리적으로나 의미적으로 만족할 만한 단 하나의 정답은
의식이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119.우리는 집착을 떠나 지식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지식이 현실로 나타나고 우리의 몸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마음의 변화와 홀로그램으로 그리고 우리의 흐트러진 꿈들을 넘어
전혀 다른 생각들로 그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120.우리 모두는 아바타의 단계를 넘어 역사를 통해 우리가 알아왔던 예수와 부처를 이룰 것입니다.
신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곳엔 판단도, 증오도, 시험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121.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비활성 물질을 움직이게 하고
혼돈 속으로 끌어 들이는 만질 수 없는 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형태를 갖추면 우리는 그것을 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122.결과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삶의 어떤 시점에서 무엇인가가 변화했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만일 변화했다면 비로소 우리의 존재의 이유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지요.


123.겉만 보고 받아들이지 말고 그게 사실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124.이성적으로 성찰해 보세요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 겠다”

무소유

스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그다지 많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은데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다보니 불행해진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또 소유에 대한 집착은 지구환경을 망가뜨리고, 인간의 가치마저 떨어뜨려 '모든 존재가 도구화'되는 현대의 병폐를 낳는다고 말했다.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경향신문] 2010년 03월 11일(목) 오전 01:40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10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에는 장문의 대자보가 나붙었다.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씨가 쓴 전지 3장의 글에는 끊임없는 불안감과 경쟁만 조장하는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선언이 담겼다. 비싼 등록금과 취업난의 수렁에 빠져 있는 ‘88만원 세대’ 대학생의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김씨는 자신의 세대를 “G(글로벌)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뭔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라고 표현했다.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앞질러 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대학 관문을 뚫고 25년간 트랙을 질주했다는 고백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나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그는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다”며 “더 거세게 채찍질해봐도 다리 힘이 빠지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자보에는 대학과 기업, 국가를 향한 또래 세대의 울분도 실렸다. 그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며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새 자격증도) 10년을 채 써먹을 수 없어 낡아 버려지고 우리들은 또 대학원에 유학에 돌입한다”며 “큰 배움 없는 ‘大學’ 없는 대학에서 우리 20대는 ‘적자세대’가 돼 부모 앞에 죄송하다”고 적었다.

그는 이 선택으로 “길을 잃고 상처받을 것”이며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해도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더 많이 쌓기만 하다가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선택’하겠다”고 밝혔다.

대자보 앞에는 오후 내내 수십명의 학생들이 이어졌고, 대자보 옆에는 ‘당신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두 장의 A4용지와 장미꽃 세 송이가 나붙기도 했다.

김씨는 이날 경영대에 자퇴원을 제출했으나 학교 측은 일단 ‘학부모 동의서가 없다’며 접수하지 않았다.

법정스님 글 모음



http://cafe.daum.net/hmsh1208/FpDy/439


법정(法頂)스님






강원도 산골, 화전민이 살던 주인 없는 오두막을 빌려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의 도와 맑고 향기로운 삶을 실현하고 계신 법정(法頂)스님은 30년이 넘는 침묵과 무소유의 철저함으로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손꼽히고 있다.
1954년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하였고 70년대 후반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홀로 살았다. 그러나 스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수필집 <버리고 떠나기>를 쓴 후 훌쩍 강원도로 들어가 거처를 숨기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저서로는 <무소유> <서있는 사람들> <산방한담> <물소리 바람소리> <텅빈 충만> <버리고 떠나기>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등의 수필집과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산에는 꽃이 피네>가 있고, 역서로는 <깨달음의 거울(禪家龜鑑)> <숫타니파나> <불타 석가모니> <진리의 말씀(法句經)> 등이 있다.

1 무소유
24 세상만사 뿌린대로 거둔다
2 산에서 살아 보면
25 다산 정약용의 근검정신을 되새기며
3 화개동에서 햇차를 맛보다
26 과거에만 얽매일 것인가
4 섬진 윗마을의 매화
27 선진국문턱은 낮지 않다
5 보왕삼매론
28 침묵과 무소유의 달
6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라
29 덜 쓰고 덜 버립시다
7 책 속에 길이 있다
30 죽이지 말자 죽게 하지도 말자
8 여백의 아름다움
31 산천이 통곡한다
9 오리이야기
32 휴거를 기다리는 사람들
10 시은을 두려워 하라
33 보살핌 안에 구원이 있다
11 한덩이 붉은 해가 ...
34 식성이 변하네
12 믿고 따를 수 있게 하라
35 거부하지 말고 받아들이라
13 맑은 물을 위해 숲을 가꾸자
36 따뜻한 가슴으로
14 종교와 국가권력
37 급할수록 순리대로
15 야생동물이 사라져 간다
38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16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39 전 지구적인 재난이 두렵다
17 대통령 지망생들에게
40 이 가을에는 행복해지고 싶다
18 명상으로 일어서기
41 텅 빈 충만
19 언론과 정치에 바란다
42 잊을 수 없는 사람
20 가을 들녘에서
43 물이 흐르고 꽃이 피더라
21 가난의 德을 익히자
44 쥐이야기
22 두려워하지 말자
45 빛과 거울
23 일자리 잃으면 일거리를 찾자
46 법정스님 청와대 비서관들에 法講
47흐르는 물처럼 새롭게
48물흐르고 꽃피어난다.
49 있는 그대로가 좋다
50 한 생각 돌이키니
51 나무 종이보살
52 무 말랭이를 말리며
53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서 오다
54 두타행(頭陀行)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버리고 떠나기] 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오두막 편지] 에서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산방한담] 에서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오두막 편지] 에서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산에는 꽃이피네] 에서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버리고 떠나기] 에서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팔로어